변화의 미덕

스노볼 드라이브를 읽고서

by 젤리

우리는 살면서 많은 변화를 맞닥뜨린다. 하지만 변하는 것을 받아들이기란 참으로 어렵다. 부모님의 눈가에 주름살이 하나씩 늘어가거나, 내가 살던 동네에서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질 때면 마음 한 구석에는 서글픈 감정이 자리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늘 변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왔고, 변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겨울에 눈이 내릴 때면 눈사람을 만들곤 했다. 눈사람은 평범하게 당근 코를 꼽아둔 모습을 하기도 했고 손가락으로 눈코입을 꾹 눌러 만든 모습을 하기도 했다. 눈사람을 다 만들고 난 후엔 나는 그 눈사람을 우리 아파트 입구 옆에 세워두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눈사람은 점점 작아졌고 결국에는 사라졌다. 사라지는 눈사람을 볼 때면 나는 아쉬운 마음에 녹아내리고 있는 눈사람을 아예 부셔 없애버리기도 하였다.

눈은 변하는 것의 대명사다. 하얀빛으로 반짝이며 세상을 밝혀주지만, 하루만 지나도 전날의 반짝거림은 무색하게 흙먼지들과 섞여 회색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눈의 특징은 눈의 존재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즉 눈은 변하기에 아름답다. 이 소설에서는 이러한 눈의 특징으로 변화의 미덕을 말한다.


초여름, 운동장에 아름답게 반짝이는 눈이 내렸다. 27도를 웃도는 날씨에 내린 눈은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외형과는 달리 그 눈은 살에 닿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고 심지어는 시간이 흘러도 녹아 사라지지도 않았다. 일반적인 눈과는 다르게 녹아 사라지지 않는 그 눈은 사람들의 평범하고 소소했던 일상을 모두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닥친 세상의 변화에 사람들은 변화를 받아들이며 일자리를 구하며 살아가기도, 혹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삶을 놓아버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세상의 변화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갔다. 나는 가장 극단적으로 달랐던 모루와 새엄마의 삶의 방식이 기억에 남았다.

모루는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물이다. 길게 재고 따지기보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 그저 하루를 재밌게 사는 것에 집중하며 단순하게 삶을 살아간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눈으로 인해 세상이 변화되었을 때, 모루는 평상시처럼 단순하게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를테면 “자질구레한 모든 것들은 배제하고 조건과 이익만 따진 결과였다.”라던가, 혹은 “집에서 가까운 센터에서 배곯을 걱정 없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게 훨씬 안정적이라는 건 세 살 배기 들도 알 만한 사실이었다.”라는 이유를 들어 모루는 눈으로부터 가장 접촉을 많이 하는 센터에 일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센터에서 일을 할 때에도 그 속에서 나름의 유희를 찾아내며 고등학교, 대학교의 생활을 상상하기도 한다. 모루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변화된 세상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삶 체계를 갖추어간다. 모루는 스스로를 가짜 눈이 내리기 시작한 그 시절에 멈춰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모루는 그 누구보다 변화된 세상에 잘 대처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모루와 정반대의 삶의 방식을 가졌던 이월의 새엄마는 어땠을까? 이월의 새엄마는 늘 계획에 맞추어 사는 사람이었다. 계획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늘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려 대비를 하며 완벽하게 살아가고자 했다. 새엄마에게 시간은 변수와 같은 존재였다. 새엄마는 시간으로 인한 퇴화, 노화, 죽음과 같은 변화를 두려워했으며 그러한 두려움은 스노볼에 대한 애정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변화를 두려워해 변화가 없는 스노볼 세상을 동경했던 새엄마는 오히려 변하지 않는 눈으로 인해 삶을 놓아버린다. 새엄마는 변화를 싫어했기에 변화된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였고 비극을 맞이한 것이다. 배경적으론 새엄마의 삶은 더 풍족하였을지도 모른다. 새엄마는 화학품 제조 사업체의 국내외 공장을 관리했으며, 비행기를 타는 게 지겨워졌을 때쯤 백영 중과 백영고등학교 이사장으로 취임하는 성공적인 삶이었다. 하지만 새엄마는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약점을 가졌고 이는 비극을 낳았다.

변화에 대처하는 방식이 상반된 두 인물은 우리에게 변화의 고정관념에 대해 다시 고찰할 기회를 주었다. 우리는 늘 이사, 이직, 노화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를 맞이한다. 우리 곁에 빛나는 것들은 변화로 인한 끝이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졸업이 있기에 학교생활이 즐거운 것이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소중한 것이고, 저뭄이 있기에 절정이 빛나는 것이다. 만일 내가 만든 눈사람이 아파트 입구 옆에 365일 그대로 있었다면, 나는 눈사람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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