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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아 Feb 13. 2021

#4. 프리랜서도 퇴사를 꿈꾼다

< 보통유튜버 이야기 > Chapter 2. 유튜버 이야기

/ 처음 1년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그리고 처음은 늘 조금 미숙하다. 

미숙함이 더 큰 매력이 되는 곳이

바로 유튜브였다.








프리랜서도 퇴사를 꿈꾼다 //



2015년 가을이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지만, 아직 유럽의 어느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카메라 메모리카드만 컴퓨터에 옮겨야지.'하고 앉았던 책상 앞에서 그대로 쭉 9시간, 날이 밝을 무렵 어쩌다 첫 영상을 완성했다. 3분 정도 길이의 음악 하나를 골라 넣고, 영상 클립을 툭툭 잘라 얹으 뒤, 그때그때의 일정과 감정들을 내레이션으로 넣은 일기 같은 영상이었다. 


요즘은 '유튜브를 시작하겠어!'라며 첫 영상부터 마음먹고 만드는 사람이 많다.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을 참고하기도 하고, 처음부터 촬영이나 편집을 도와줄 사람을 고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2015년엔 유튜버나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당연히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겠다는 생각도, 아니, 영상을 만들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첫 유럽 여행을 앞두고 돈을 모아 카메라를 산 게 시작이었다. 카메라 브랜드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iso니 화각이니 하는 것들도 몰랐던 시절이다. 그때쯤 출시됐던 카메라들 중 몇 개를 골라, 기사와 리뷰를 비교해보며 구매했던 그 카메라에 영상 촬영 기능이 있었다. 여행을 하며 찍은 건 대부분 사진들이었지만, 있는 기능을 썩힐 순 없지, 가끔 동영상도 찍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창밖의 풍경을 좀 더 생생하게 담고 싶을 때, 그리고 가끔, 혼자라 너무 외로울 때 카메라를 향해 한마디. 하지만 이내 머쓱해져서 녹화를 끝냈었다. 


요즘은 하루만 여행을 해도 두 대의 카메라로 각각 20GB 이상을 촬영한다. (찍을 게 대체 뭐가 그리 많은지.) 하지만 이때는 일주일 넘는 여행 동안 촬영한 동영상 클립이 채 100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나는 프리미어 프로(영상 편집 프로그램)를 실행했다. 


아! 하나 짚고 가야 한다. 2006년, 지금은 2021 CC 버전인 프리미어 프로가 2.0 버전이었던 시절, 나는 고등학교 방송부 활동을 하며 영상편집을 해본 적이 있다. 비디어 테이프를 넣어 촬영하고, 변환기를 통해 컴퓨터에 옮겨 학교 축제 때 쓸 영상을 만들었었다. 어쩌면 이 경험 덕분에, 짤막한 내 여행 영상 클립을 모아 편집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만들었던 영상은 지금 보면 꽤 부끄러운 영상이지만, 이때만의 풋풋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여행 중간중간 찍고 싶을 때만 한번씩 찍은 짧은 클립들이기 때문에 요즘의 영상들처럼 '구독자'를 향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전혀 없고, 나만의 감정에 빠져 있는 순간들도 많다. 하지만 그 풋풋함, 정제되어 있지 않은 날것의 느낌이 주는 맛이 있었다. 종종 흔들리고 초점이 나가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거기에서 신선한 재미를 느껴했다.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상 속에 들어가 함께 여행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영상이 인기를 얻으며, 나는 새로운 길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의 선택을 받아야만 하는 나의 직업이 버겁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영상은 나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빛나는 계단 같았다. 


프리랜서 모델로 4-5년, 모델은 다른 사람이 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모델일 수 없다. 촬영이 잡히지 않는 날이 이어진다면 그냥 백수가 된다. 딴우물을 여러 개 파서 아나운서든, 리포터든, 성우든, 다른 일들을 하는 동안에도 늘 누군가 나를 선택해주기를 기다리는 상황은 똑같았다. 그러나 '제작자'에게는 선택은 다음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은 나에 의해,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거니까. 다른 사람이 선택하지 않아도 내가 제작을 하고 있다면 나는 제작자가 되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막연히 영상 제작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물론 지금은 구독자와 시청자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지만.)


본격적으로 퇴사를 꿈꾸며 영상을 공부하고 만들기 시작했다. 모델 촬영을 마치면 새 캐스팅오디션을 돌아다니는 대신, 영상 제작 학원에서 모션그래픽이나 컬러그레이딩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영상을 만들었다. 지금과는 목소리도 다르고 편집 스타일도 달라 10초 이상 보는 게 힘들지만, 해피새아 채널의 동영상 목록을 아래로 내려보면 네덜란드, 파리, 오키나와, 속초 등 3~4년 전에 올렸던 영상들이 있다. 처음부터 여행이 내 영상의 주제이자 목적이었기 때문에, 1년에 한두 번, 여행을 갔을 때 찍어왔던 영상들을 시간이 날 때 조금씩 편집해 올리는 식이었다. 


그렇게 취미처럼 종종 영상을 만들다가 어느날 결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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