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유튜버 이야기 > Chapter 1. 보통유튜버, 그 전의 이야기
유일한 탈출구가 여행이라고 했지만, 사실 여행을 자주 다니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여행 DNA는 늘 꿈틀대고 있었던 것 같다.
수학여행, 여름방학 수련회처럼 집을 떠나 어디 다른 곳에 가서 자고 오는 걸 설레여 했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끔 일부러 잘 가지 않던 골목을 선택해 낯선 기분을 느끼곤 했었다. 중학생 때, 딱 한 번 장래희망을 적는 란에 아나운서 이외의 직업을 적었던 적이 있는데,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자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그린피스 또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같은 일이었다.
어른이 되고 독립을 한 뒤에야 여행을 갈 기회들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돈 없던 대학생 때는 공모전이나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들이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집트처럼 흔하지 않은 여행지에 가보기도 했고, 중국 횡단철도를 타고 몽골에 간 적도 있다. 모델 일을 하면서부터는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갈 때 하루 이틀 더 머물며 짧게나마 여행 느낌을 냈었다.
그러다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계획했던 첫 번째 여행이 스물여섯 때였다. 요즘은 열여섯 나이에도 혼자 한두달씩 세계여행을 다녀오곤 하니까, 그런 친구들에 비하면 의외로 내 여행 경력은 길지 않다. 그나마도 친구가 출장 차 홍콩으로 3개월 정도 가 있는 동안 놀러오라고 해 떠났던 여행이었다. 오전엔 혼자 가고 싶은 곳에 갔다가 저녁 때 친구를 만나는 식으로, 두고두고 기억할 만한 대단한 무언가는 없었던, 딱 초보스러운 여행이었다.
두 번째 여행은 1년 뒤였는데, 이 여행이 내 삶을 바꿨다.
오디션과 미팅만 마치면 마음이 공허해져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무작정 걷던 때였다. 양화대교 위에서 반짝이는 야경을 바라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지를 묻고 또 물었었다. 20대 초반에나, 중반에나, 나는 똑같이 외로웠고 똑같이 막막했다.
그러다 문득, "각박한 서울 대신 초록색 초원이 펼쳐진 곳에 가고 싶어, 하지만 시골 같은 자연은 말고, 역사가 있고 사람이 많은 도시였으면 좋겠어." 막연한 생각을 품고 여행을 떠났다. 풍차와 튤립의 나라, 17세기에 황금기를 맞았던 서유럽의 네덜란드로.
일주일간의 여행에서 나는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느꼈다. 흔히들 말하는 일탈감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느낀 자유는 외로움으로부터의 자유였다.
여행지에서의 모든 순간들은 온전히 나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간이다.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낯선 곳에서 홀로 보내는 하루도,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리다가 초원 한복판에서 소나기를 만났던 순간도, 꼭 가야지! 하고 저장해왔던 맛집이 하필 쉬는 날이라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다른 레스토랑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없는 식사를 20유로나 주고 먹었을 때에도, 모든 게 즐겁고 행복했다. 드디어 마주했던,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든 나의 하루였으니까.
심지어 그렇게 싫어했던 외로움마저 반가웠다. 한국에서 보냈던 혼자의 나날들은 나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던 시간이었지만, 여행지에서의 외로움은 혼자 있기로 결정한 나의 선택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있는 일이 행복했다.
행복한 시간들 속에서 나는 꾸준히 글을 썼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 기쁨을 혼자 누리는 것으로 끝내기가 싫었다. 누군가에게 이 아름다움을, 행복을 공유하고 싶었다.
하나 조금 특별했던 점이 있다면, 큰맘 먹고 샀던 카메라에 동영상 촬영 기능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예쁜 풍경을 마주했을 때, 또는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맛볼 때마다 "와, 진짜 예쁘지 않아?" "와, 진짜 맛있지 않아?" 를 카메라에게 말했다는 것. 조금은 미숙하고, 조금은 어색하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영상을 편집했다. 2015년은 지금처럼 영상이 유행하던 때가 아니었다. 여행 브이로그를 찍는 사람이 없었을 뿐더러, 브이로그라는 말도 없던 때다. 하지만 여행 중간중간 찍었던 클립들을 모아 3-4분짜리 영상 한 편으로 만들어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놀랍게도 수십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 영상을 좋아해주었다.
사실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여행 작가가 되면 어떨까 꿈꾸고 있었다. (많은 여행자들이 그렇듯.) 영상을 만들어본 뒤엔 글이 아닌 영상으로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에 계정을 만들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영상으로 글을 쓰는 여행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계획이었다. 반년에 한 개, 두어 달에 한개씩, 여행을 갈 일이 있을 때마다 한번씩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하듯, 유튜브에도 하나씩 아카이브했던 정도였다.
그러다 2017~2018년, 1인 크리에이터에 대한 관심이 치솟기 시작했다. 유튜브에 올린 영상으로 회사 월급 이상의 수익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에 열광했고, 인터넷 방송이나 유튜브가 하나의 직업 활동으로 인정받게 되면서, 바야흐로 유튜브 시대가 열렸다.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던 나 역시, 이때부터 영상을 만드는 빈도를 높이며 유튜버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게 보통 유튜버, 해피새아의 삶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