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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아 Feb 13. 2021

#2. 직업: n잡러 프리랜서

< 보통유튜버 이야기 > Chapter 1. 보통유튜버, 그 전의 이야기

직업 : n잡러 프리랜서 //




@해피새아 가 된 지 얼마되지 않아 드디어 나에게 직업이 생겼다. 하지만 내가 오랫동안 원해온 그 일은 아니었다. 


구직활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전국 방방곡곡 구석진 곳에 숨겨진,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방송국에도 지원서를 넣는 일상이 한참 이어졌다. 첫차를 타고 지방에 내려가 서너시간씩 대기하다가 자기소개 15초를 하고 돌아오기를 수십 수백 번. 최종 합격은 고사하고 1차 합격만 해도 감사해야 하는 날들이었다. 어쩌다 한두번쯤 방송 기회가 생기긴 해도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일 년을 꼬박 비정규직 방송인이자 아나운서 지망생으로 지내다가 시작했던 일이 모델 일이었다. 누군가에겐 모델이 10년 동안 꿈꿔온 직업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잠깐 아르바이트로 할 생각이었던 일이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포토샵과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다뤄왔던 터라 쇼핑몰 웹디자이너 겸 사진 리터칭 아르바이트를 종종 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나도, 내가 보정하고 있는 모델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업 스터디를 같이 하던 친구가 "넌 아나운서 상보다는 모델 상"이라며 부추기기도 했다. 사진을 전공하던 선배가 찍어준 사진 몇 장을 가지고 모델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인플루언서들이 모델 일을 하던 때가 아니었다. 인터넷 쇼핑몰부터 신문, 잡지, TV 광고의 모델 구인 글이 각종 커뮤니티나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라오곤 했다.


매일 하루에 딱 100개씩, 일주일. 정말 많은 광고 에이전시와 캐스팅디렉터, 브랜드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1-2주 뒤 네 군데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었고, 그 중 두 곳에서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둘 다 딱 하루, 일회성 촬영이었고 시급도 생각만큼 높지 않았지만, 거기서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조금 더 나은 새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또 이메일을 돌리고, 미팅을 가고, 어쩌다 촬영을 하게 되고, 그러면 또 이메일을 돌리고. 그렇게 나는 스물넷에 모델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스터디 친구의 안목이 정확했던 걸까,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주일에 4~5회, 거의 매일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해피새아 유튜브 채널에 올렸던 영상 '8년차 프리랜서가 말하는 프리랜서의 삶과 진실' 편에서, 대체할 수 없는 프리랜서가 되기 위해 챙겨야 할 세 가지 조건을 꼽은 적이 있다. 1) 남들보다 싸거나, 2) 남들보다 착하거나, 3) 남들보다 잘하거나. 당시의 나는 정말 절박했고, 그래서 이 조건들 중 최소한 두 가지는 쉽게 충족할 수 있었다. 


여전히 발성연습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촬영장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신문을 챙겨 읽었으며, 방송국 채용공고가 뜨면 며칠밤을 새워 자기소개서를 썼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떻게 하면 더 멋진 모델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꼬박 4년을 프리랜서 전업 모델로 일했다. 



그동안 친구들 대부분은 회사원이 되었고, 그중 몇은 방송국에 취직하기도 했다. 프리랜서로 불안정하게 지내는 나에게 걱정 아닌 걱정을 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약 3~4년 동안 나에겐 비수기가 따로 없었다. 거의 매일 아침 6시 지하철을 타고 촬영장으로 출근했고, 오후 4시쯤 그날의 일을 마치면 다른 일의 오디션을 보거나 미팅을 한 뒤, 집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귀가하는, 꽤나 안정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여러 개의 우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피새아 채널의 또 다른 영상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8년차의 영업비법 세가지!' 편에서 말했듯, 프리랜서에게는 깊게 판 우물 옆에는 꼭 다른 비상 우물이 필요하다. 


광고 촬영은 보통 2~6월, 9~11월에 많이 진행되기 때문에 연말과 한여름엔 일이 별로 없다. 그럴 때 도움이 됐던 게 아나운서 일을 했던 경험이었다. 나는 방송 리포터, 성우, 행사 진행 일들도 맡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광고 촬영이 줄어드는 시기에는 다른 일들로 일정을 채울 수 있었다. 모델이면서 방송진행도 할 수 있는 사람, 모델이면서 내레이션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두세개의 우물이 하나의 방향을 띄고 있을 때, 그것들은 합쳐지면서 더 깊고 넓은 우물을 이루었다. 그렇게 나는 굶지 않는 n잡러 프리랜서가 될 수 있었다.



프리랜서로 혼자 움직이는 것의 한계를 느꼈을 때, 소속사를 찾고 싶어졌다. 먼저 손을 내밀었던 회사도 몇 군데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장래성이 촉망되는 10대나 20대 초반이 아니었다. 어설픈 실력 때문일 수도, 부족한 매력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다음 스테이지로 가는 문을 찾아줄 조력자를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괜한 상처들만 얻었을 뿐이다.


"못 하겠어, 새아 씨? 그럼 절박하지 않다는 거야. 흔들리는 거야." 청담동 멋지게 꾸며진 사무실에서 스폰을 제안하던 사람. 내 인스타그램은 물론, 블로그의 오래전 글까지 다 읽었다며 예쁜 생각과 열정을 지지해주겠다더니 밤 12시에 우리 집으로 오겠다며 주소를 알려달라고 문자 보내던 사람. 세상엔 '불합격', '탈락'이라는 글자보다 더 잔인한 일이 많았다.



재미가 없어졌다. 괜한 일을 했나 싶었다. 오디션이나 미팅을 마치면 울면서 저녁밥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 제법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절대 녹록지 않다는 걸, 정통으로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모델이라는 직업은 멋지고 반짝이는 직업이지만, 타인의 선택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캐스팅디렉터, 클라이언트, 영상감독, 포토그래퍼... 결정할 수 있는 누군가로부터 선택받지 못한다면, 모델이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모델로서 일을 할 수 없다. 일이 많을 때에도, 일이 적을 때에도, 그래서 나는 늘 불안했다. '선택받기 위해' 애를 쓰는 일이 내 삶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이때 나에게 하나뿐이었던 탈출구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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