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1
교육이라는 말은 맹자의 진심장에 나오는 말이다. 가르치고 기른다는 뜻이며 영어의 'Education'이 뜻하는 이끌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교육이라는 말은 가르치는 스승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이다.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배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배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배움이란 학습이다. 학습은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도 매우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뇌 용량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3배까지 커진 크로마뇽인들에게서 최초의 학습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구석기인들의 도구 사용과 신석기인들의 농경은 학습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전수되지 않았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에 여러 지역에서 발달한 다양한 문화들은 집단적인 학습을 통하여 후대에 전승되었고, 문자가 발명된 이후에는 광범위한 학습으로 인해 인류사에 있어 획기적인 문명의 태동을 촉발했다.
고대 문명으로부터 현대 문명의 첨단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학습과 전승을 통해 위대한 발전과 번영을 누리고 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배움의 노력은 고대인들에게는 필생의 과업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호모 루덴스라는 말처럼 여가를 보내기 위한 놀이에서 문화가 잉태되는 과정에서도 배움은 필수 조건이 아니었을까.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한 역사 시대 이후에는 전문적인 학습을 통해 문화가 전승되어 교육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근대 이전에는 문자를 사용하는 식자층이 극히 제한되어 사실상 대부분의 서민들은 제대로 된 교육의 혜택을 거의 입지 못했다. 19세기 초반 리시움 운동으로 시작한 대중 교육 운동의 영향으로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오늘의 초중등교육이 개시되었고, 20세기 초 제롬스키의 대중 교육 운동을 거쳐 대중 교육이 보편화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서구 대중 교육을 받아들여 오늘의 비약과 발전의 원동력으로 교육의 입지를 굳혀 왔다.
이처럼 교육의 양적 팽창이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우고 있는 가운데 배움의 존재론적 가치는 점차 잊혀져 가는 것 같다. 고대인들의 절실한 배움의 갈망을 잊고 있지는 않는지. 학교 현장에서도 가르침은 있지만 배움은 보이지 않는다는 자조의 말도 들린다. 오늘날의 교육을 얘기하려면 우선 배움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새겨 보아야 한다. 배움의 주체와 과정에 대한 이해와 배움터로서의 학교 공동체의 방향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Dec 27.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