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3
4차 산업혁명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요즘 과연 학교는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을까? 이미 단순한 지식의 전달은 네이버나 유튜브에 자리를 내 준 지 오래다. 아마 학교의 역할이 지식의 전달에 국한된다면 벌써 학교는 문을 닫았을 것이다. 정보의 범람으로 매 시간 아니 매 초마다 엄청난 양의 지식과 정보가 생산되고 있는 초정보화 사회에서 지식의 전달만이 교실 내에서 이루어진다면 아무도 학교를 찾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학교가 교육 공동체의 중심에 서서 제대로의 교육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교육 수요자들은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변혁의 시대에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이 사회가 너무나 거대하고 심층적이기에 매우 다양할 수도 있고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이 한 사람의 전체 인생을 결정짓는 사례들이 실제적으로나 영화상으로 많이 반영되고 있다. 그만큼 성장기에 이루어지는 초창기 교육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인류의 사명이 아닐 수 없다. 초창기 교육이라 함은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까지의 미성년 시절에 행해지는 모든 교육적 활동을 일컫는다. 물론 그 초창기 교육에서 우리 학교가 맡은 역할의 범위는 어느 정도 한정적이긴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전적으로 학교의 역할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심리학자는 영아기 때 처음으로 접하는 거울을 통해 주체와 타자의 분리를 경험한다고 한다. 그 이후로 타자의 반응과 행동이 주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부모들로부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끊임없이 받는 경우라면 그 아이는 훗날 자라서 어긋난 길로 빠질 확률이 매우 희박할 것이다. 그러나 늘 부모로부터 핀잔과 질책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아마도 상당히 부정적인 자아 정체성으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적 역할을 원만하게 수행해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태어나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이루어지는 배움들이 그 아이에게는 평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미 상당할 정도로 자아의 정체성이 굳어져 있는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는 초중등교육은 그 역할에 있어 어느 정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도 학교는 교육공동체의 중심에 서서 인류의 사명인 배움의 길을 학생들에게 열어줘야 할 책무가 있다. 부정적 반응을 받아 배움이 흐트러진 아이들에게는 그 시간만큼의 긍정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한때는 무조건적인 칭찬을 강조한 적도 있지 않았던가. 물론 칭찬이라는 긍정 메시지를 모든 아이에게 획일적으로 제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평하다는 말의 진정한 가치는 각 개인의 수준에 맞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 결과가 다 같이 비슷해지는 데 있지 않을까. 부정적 자아 정체성으로 인해 삐뚤어진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 것이다. 제대로 성장한 긍정적인 아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서 불공평하다고 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출발점은 다 다르지만 모두가 함께 결승점에 다다르는 것이 교육의 이상이 아닐까.
과거에 비해 학교의 위상이 많이 추락하여 그만큼 교육자들의 사기가 위축되어 있는 요즘 학교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해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동안 학생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언제나 훈육을 받는 대상으로만 존재하다가 나름대로의 자율적 존재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도기적 현상이 아닌가 한다. 부모의 인생에 자녀들이 한낱 조연으로 치부되거나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진정한 배움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제대로의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자녀들이나 학생들이 갑을 관계에서의 을이 아니라 다 같이 갑의 관계에서 자율적이며 자기주도적으로 자신의 인생에 있어 빛나는 주인공이 되도록 학교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학교의 역할은 가정에서 제대로 세우지 못한 자존감을 일으켜 주고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움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 가르침을 받기만 하는 단순한 피교육자가 아니라 자기주도적 학습자가 되도록 지원해 주고 잘못된 길에 들어선 아이들에게는 끊임없이 긍정적인 배려와 보살핌을 제공하여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학교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바람은 자존감으로 가득 찬 아이들이 마음껏 운동장에서 뛰노는 밝은 미래의 어느 따뜻한 봄날일 것이다.
[Oct 29.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