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칼럼 5
지난 11월에 대학 입시의 첫 관문인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이 치러졌다. 줄여서 수능이라 부르는 이 시험을 위해 온 나라가 숨을 죽인다. 특히 영어 듣기 평가가 시행되는 시간에는 비행기 이착륙도 연기되고, 시험장 인근을 지나는 철도에서는 열차도 제시간에 달리지 못한다. 더군다나 수능 출제를 위해 차출된 출제자들은 몇 달 동안 격리 생활을 감수해야 하고, 수능 당일 전국의 시험장 학교에서는 엄정한 시험 감독을 위해 교육 기관 전체가 만사를 제쳐 놓고 원만한 시험 관리에 임하고 있다. 감독관의 언행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고 방송실의 잡음 하나가 엄청난 이슈로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입학을 위한 국가 주도의 시험은 1969학년도에 시작된 예비 고사가 처음이 아닌가 한다. 물론 대학별 고사인 본고사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주관하여 시행하였으며, 예비 고사도 시행 초기에는 자격 시험이었으나 1974학년도부터는 일정 부분 본고사에 반영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1학년도에 졸업 정원제와 내신제가 전면 도입되어 1982학년도부터는 예비 고사가 폐지되고 대학 입학 학력 고사라는 이름으로 국가 주도의 시험만이 유일한 대학 입학의 관문이 되고 만다. 서술형 중심의 본고사가 폐지된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입 학력 고사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한다는 명분으로 선다형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른 교육 현장의 파행을 막고자 1994학년도부터 대학 입학 수학 능력 시험으로 명칭을 바꾸고 고등 정신 능력을 측정하고 통합을 도모했으나 암기 위주의 시험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는 없다.
교육 당국에서는 이러한 국가 단위의 수학 능력 시험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입시 사정관제나 수능 등급제, 특별 전형과 수시 전형 등 여러 가지 제도를 곁들여 왔지만 일생에 딱 한 번 치르는 수능 시험으로 수험생의 인생이 결정되는 상황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수능을 치르는 11월은 그야말로 온 나라가 들썩이며 당국과 학교와 가정이 비상 상태에 접어든다. 아마 수능 시험 하나로 발생되는 사회적 비용을 측정해 본다면 이보다 더 많은 고비용이 드는 제도는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이러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그러면 소위 선진국이라는 영미권과 프랑스의 대학 입시 제도는 과연 어떠한지 한번 살펴보자. 먼저 영국은 학제의 핵심인 10~11학년의 GCSE와 12~13학년의 GCE-A 레벨 과정을 거쳐야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데, GCSE는 GCE-A 레벨로 진학하는데 필요한 국가 검정의 중등 교육 자격 시험으로 이전의 GCE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1988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GCE-A 레벨은 1951년에 최초로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대학 입학 자격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어와 수학, 과학이 필수이며 나머지 선택 과목으로 치러지는 GCSE는 주로 과정 평가와 수행 평가로 이루어지지만 일부 사지선다형이 포함되며 성적 결과가 등급으로 발표되고, GCE-A 레벨 시험은 수학을 제외하고는 거의 에세이로 평가하고 있다. 별도의 시험 주관 기관들이 평가를 맡고 있으며 연간 두 차례 이상 시험을 치르고 있어 학생들의 부담이 그리 크지는 않다.
다음으로 미국의 대학 입시 준비를 위한 시험으로는 미국 수능이라 불리는 SAT와 아이엘츠 또는 토플의 두 가지가 대표적이다. 물론 대다수의 대학에서 요구하는 고등학교 내신 성적(GPA)이 대학 입시의 중요한 관건이 되고 있지만, 명문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위의 두 시험을 무시할 수가 없다. 비평적 독해와 대수학, 에세이의 세 영역을 평가하는 SAT 1과 과목별 평가인 SAT 2는 비영리 시험 주관 회사에 의해 연간 7차례 실시되고 있다. 영어 능력 시험인 아이엘츠나 토플도 주관 기관에 의해 연간 수 차례 실시하고 있기에 수험생들의 부담이 분산되어 있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수능이나 미국의 SAT, 영국의 A-레벨과 같은 바칼로레아(BAC)가 거의 필수이다. BAC는 1808년 나폴레옹 시대에 만들어진 중등 과정 졸업 시험으로 만점의 50%를 취득하면 프랑스 국공립 대학의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우리의 수능과 달리 논술형 자격 시험인 BAC는 현직 교사들이 주로 출제하며 매년 6월에 치러지는 절대 평가 시험이라 학생들의 높은 사고력을 측정하는 장점이 있다.
물론 더 많은 나라에서 더 좋은 제도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선진국으로 불리는 영국과 미국, 프랑스의 대학 입시 제도를 살펴보니 우리의 대입 수능 시험의 개선이 더욱 절실해진다. 일 년에 단 한 차례 하루 만에 치러지는 시험으로 인한 사회적 고비용과 수험생들의 엄청난 부담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는 대입 수능 시험의 자격 시험으로의 전환이다. 상대 평가로 치러지는 등급제를 절대 평가의 자격 시험으로 바꾼다면 수험생들의 부담이 상당히 완화될 것이며 별도의 상시적인 비영리 시험 주관 기관이 마련되어 전반적인 시험 관리를 맡게 된다면 해마다 몸살을 겪는 학교 현장의 엄청난 고비용과 부담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대학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한 입시의 다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다양한 대학별 전형을 통해 대학은 학생 선발권을 가지며 대학별로 유능한 인재를 발굴하도록 보장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 입시를 위한 시험의 관리를 일선 중고등학교에 전적으로 부담하게 하는 것은 대학 본연의 임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중등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도 수능 시험이나 대학별 전형의 많은 과정을 더 이상 일선 학교에 맡겨서는 안 된다. 학교 현장에서는 충실한 내신 관리와 교육 과정의 정상화에 매진해야 한다. 해마다 겪는 수능의 몸살을 떨쳐버리는 제도적 개선을 더 이상 미룰 때가 아니다.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고 유관 당국과 교육 기관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지속 가능한 선진 대학 입시를 정착시키는데 온 역량을 다 쏟아야 한다. 교육은 앞으로의 백 년을 좌우하는 큰 계획이 아닌가.
[Dec 6.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