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고위봉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경주 남산 산행길에 올랐다. 오래 전에 남산 금오봉을 올라간 적은 있었지만 남쪽의 고위봉 산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산의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고위봉은 용장계곡을 끼고 있어 산행의 운치가 매우 뛰어났다. 경주 남산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어 정상으로 올라가는 산길이 여러 갈래로 다양하게 흩어져 있다. 동쪽 사면에서 오르는 길은 절골, 탑골, 통일전, 국사골, 염불사터, 백운골 등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있고, 서쪽 사면에서도 틈수골, 용장골, 약수골, 삼릉, 삼불사, 포석정, 남간사지, 상서장 등 산행길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이번 산행은 경주 용장골에서 출발하는 코스로 고위봉 정상을 밟고 관음사 쪽으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달라 산행의 묘미가 더 살아난다. 경주에서 내남으로 가는 구도로를 따라가다가 내남 파출소 직전에 개울을 따라 용장 마을을 지나 산행 안내 초소에 다다르면 조그만 주차장이 하나 나온다. 주말에는 구도로 옆에 있는 대형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안내 초소 왼쪽으로 새로 조성한 산길로 들어서면 산행이 시작된다.
계곡 초입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숲이 우거져 산행하기가 편하고 계곡의 물소리가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한다. 용장계곡을 따라 더 올라가면 두 갈래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설잠교를 건너가면 용장사지 삼층석탑을 거쳐 남산 금오봉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고, 고위봉으로 가려면 오른쪽 길로 올라가서 이영재 입구에서 다시 오른쪽 길로 백운재를 향해 올라가야 한다. 산길이라 해도 상당히 평탄하면서 넓은 편이라 초보자들도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길이 계속된다. 평일이긴 하지만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지 오가는 등산객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설잠교를 지나 1킬로쯤 더 올라가다 보면 산정호수가 눈 앞에 나타난다. 해발 350미터에 위치한 저수지는 언제 조성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일명 하늘호수라 부를 정도로 남산의 고위봉 바로 아래 백운재 밑에서 신비스러운 풍광을 자아낸다. 눈을 즐겁게 해 준 호수를 뒤로 하고 조금만 올라가면 백운재 삼거리가 나온다. 백운재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칠불암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해서 올라가면 오늘 산행의 목적지에 다다른다.
백운재 고개 쉼터에서 600미터 정도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가면 해발 494미터의 고위봉 정상이 나온다. 정상 표지석 앞 가운데 공터에 마치 무덤의 흔적 마냥 불룩한 흙더미가 있어 혹시나 명당을 찾느라 산을 훼손하지나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몇 장 찍고 열반재로 향하는 왼쪽 길로 내려간다. 고위봉에서 오른쪽 길로 내려가면 천우사로 바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고위봉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와는 판이하다. 가파른 암벽과 계단이 많아 조심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한 내리막길이 계속 이어진다. 길이 험하기는 하지만 전망은 아주 좋다. 멀리 우뚝 서 있는 금오봉의 모습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이 길로 올라오는 산행 코스를 잡으면 제대로 등산의 맛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고위봉에서 600미터 정도 내려오면 열반재 삼거리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관음사를 거쳐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길이 나온다. 점심때가 되었기에 식사도 하고 천룡사지 삼층석탑도 볼 겸 왼쪽으로 내려갔다. 녹원정사라는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바로 옆에 있는 천룡사지를 찾았다. 오랜 세월 풍상을 벗 삼아 우뚝 서 있는 삼층석탑이 등산객을 반갑게 맞는다. 천룡사지가 발굴 중이어서 제대로 재건이 된다면 남산의 명당 사찰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한때는 최부자 가문의 개인 사찰이었다는 말도 있지만 지금은 쇠락한 흔적뿐이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천룡사지는 주변 풍광이 좋아 문화 탐방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달빛 기행의 명소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다시 왔던 길로 돌아 나와 열반재를 넘어 관음사로 내려간다. 경사가 있어 내려가는 길도 만만찮다. 관음사 입구까지 내려가야 평지가 나오니 이 길도 오르막 코스로는 녹록지 않다. 웅장한 암벽에 기대듯이 조성된 사찰이 한눈에 위엄을 뿜어낸다. 일명 큰곰바위라는 암벽으로 열반곡의 전설과 함께 기묘한 바위들로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관음사에서 천우사 입구까지는 임도로 되어 있어 거의 평지를 걷듯이 내려오는 길이다.
천우사 입구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용장계곡 안내 초소에 도착하면서 오늘 산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거의 6킬로가 넘는 거리의 산행을 마치며 처음으로 남산 고위봉을 오른 감회를 이어가려고 삼릉에서 유명한 한옥카페 바담을 찾았다. 카페 안마당에 가득한 장독들로 시선을 사로잡는 분위기 속에서 맛과 향기를 즐기며 산행의 여운을 만끽했다.
경주 남산은 그야말로 문화재의 보물 창고다. 단순한 산행의 대상이 아니라 골짜기마다 숨어 있는 숱한 보물과 유적들을 찾아다니는 묘미가 넘치는 경주 남산은 신라 천 년의 불교 성지로 당대에는 부처님이 상주하는 신령스러운 산으로 숭배되기도 했다. 지형의 방향을 따라 동남산과 서남산으로 나누어 부르기도 하며 각각 16개의 계곡과 남쪽의 계곡 2개를 합하여 모두 34개의 계곡이 있어 계곡마다 수많은 절터와 마애불뿐만 아니라 탑이나 암자들도 수없이 세워지고 또 사라지기도 한 천년의 보고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시간 나는 대로 남산의 문화유산들을 제대로 탐방하면서 신라 천년의 향기에 푹 빠지고 싶다.
[Oct 11.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