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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대 Aug 11. 2022

여름이 간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보인다.

잠자리 한 마리가 집 마당 위를 쉼 없이 날아다니고 있다.

사방으로 빠르고 유연하게 방향을 잘도 바꾼다.

날개가 젖지 않게 빗줄기를 피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가오는 가을의 예감에 기분이 덜 떠 저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회색 빛 뿌연 하늘에 검은 새 두 마리가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우체국 택배 차량이 대문 앞에 멈춰 선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린다.

여름이 가고 있다.

앵두나무 잎사귀는 여전히 푸르고 싱싱하지만, 어제 보았던 옥수수의 넓고 긴 잎들은 이미 물기를 빼고 가을 색을 보여주고 있었다.

베어 놓은 마른풀들을 태워보니 하늘을 향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도 진한 가을의 냄새가 아련히 묻어 있었다.     

고추도 빨갛게 익었다.

어제는 고추를 따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밤에 책상에 앉아 노트에 이렇게 적어보았다.

     

                                                     우리 집 꼬추     


다른 집 고추는 몰라도

우리 집 꼬추는 알겠다

왜 빨간지     


그늘 한 뼘 없이 땡삧에 쪼인 지 수개월

수시로 벌레들이 구멍으로

들락날락

거기다가

하늘을 가리고 온 몸통을 간질여대는

풀잎 끝 까시 

   

결국은 화가 난 거지 뭐

밭주인한테

넌 뭐하는 놈이냐고, 날 위해 한 게 있느냐고

얼굴을 빨갛게 붉히면서 너는 나를 쳐다보았어     


오는 널 땄어, 가루로 만들려고

빨간 고추야, 내가 뭐라 할 말이 없다

이 말 밖에는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어제는 빨간 고추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밭 식구들을 찬찬히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참 동안 휴대폰 렌즈를 그 녀석들 얼굴에 들이대었다.

참깨 꽃, 부추 꽃은 작지만 흰색의 꽃잎이 참으로 아름답다.

고구마 꽃은 이파리 사이에 숨어서 살짝 머리를 밖으로 내미는 모습이 세상에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를 보는 듯 귀엽고 반가운 마음이 절로 인다.

활짝 핀 호박꽃도 좋지만 오므린 꽃잎도 뭔가 당당해 보이는 것이 이 녀석들의 매력이다.


참깨 꽃



부추꽃


고구마꽃


지금 비가 그쳤다.

검은 새들도 다시 오지 않고 잠자리도 가고 없다. 

택배 차량도 떠나고 없다.

세상은 흐르고 변하고 머무르지 않는다.

細雨 온 뒤 풍경의 푸르름이 생생하게 마음을 적신다.

창밖으로 보이는 마당의 작은 텃밭에서 가지의 보랏빛이 유난히 눈에 반짝인다.

여름의 빛일 것이다. 가고 있는 여름의 기억이 빚어낸 유년의 반짝였던 빛일 것이다.


가지


가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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