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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대 Sep 28. 2021

난생처음 사귄 고양이 - 장군이

풍요이야기

우리 집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산다. 

좀 더 정확하게는 자주 찾아오는 고양이 한마리가 있다.


이름은 ‘풍요’이다.

글자 그대로 풍성해서 많고 넉넉하다는 뜻이다.


안단테네가 지은 이름인지, 아니면 아내가 지은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강렬한 염원이 고양이 이름까지 쉽고 빠르게 확장되지 않았나 싶다.


안단테네는 우리 집에서 스무 걸음 정도 가까이 있는 친한 이웃집이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아내가 안단테네 보다 몇살 위인데,

행복한 삶에 대한 두 사람의 관점에 공통점이 많아서인지 왕래가 잦은사이다.


안단테네 집에는 고양이 ‘장군이’ 가 산다.

내가 먼저 알게 된 고양이는 풍요가 아니라 장군이다.

이곳으로 이사온 후 처음 한동안은 마당 안에 텃밭을 가꾸고 집 주변을 정리하는 일에

많은 정성을 기울이던 때였다. 



어느 휴일, 우리 집 마당에 웬 고양이 한 마리가 태연하게 걸어 들어왔다. 자기 집인 마냥.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안정되고 자연스러워서 ‘서로 아는 사이인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교류해 본 적이 없는 종류의 동물이 느닷없이 나타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싫어했다. 좀 더 솔직히는 무서워했다. 차분한 걸음걸이, 자신만만하게 빤히 쳐다보는

조용한 시선, 두 눈의 중앙에 날카로운 칼날이 서 있는 듯한 눈동자 등등에서 맹수를 연상하게 하는

사납고 위험한 동물. 고양이는 나에게 이런 동물이었다.


나는 그 녀석을 향해 황급히 오른발을 크게 위로 들어 올린 후 땅바닥을 향해 힘껏 내려치면서 외쳤다.


“저리 가!”


내 오른 손에는 호미가 들려져 있고 목소리는 컸지만 침입을 당하는 자가 두려움에 떠는 기분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녀석은 쭈뼛거리긴 했지만 순순히 울타리 밖으로 나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주었다. 

다행히 “저리 가!”라는 외침이 위력을 발하자 나는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날 저녁 아내에게 낮에 마당에서 만난 고양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 녀석 이름이 장군이고 안단테네에

번듯한 자기 집이 따로 있고, 품질 좋은 음식을 먹으며, 필요시 적절한 의료혜택도 제공받고,

성격도 좋다는 정보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 들이 듯 내 귀에 쏙 들어오는 말이 있었다.

 “집에 고양이가 있으면 뱀이 오지 못하므로 앞으로 장군이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내쫓지 말고 잘 지내세요.”

아내가 당부한 말이다.


지금 이 집으로 이사 온 후 뱀이 현관문 앞까지 기어 올라온 적이 있어 주변 사람들이 추천한 방법대로

집주변에 명반을 뿌리기도 했지만,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어서 불가능한 일인 줄 알지만 좁은 잔디마당에

수탉을 여러 마리 키울까도 심각하게 고심했던 터라 아내의 장군이에 대한 명확한 역할론은 고양이에 대한

내 마음을 나도 믿기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친교를 빌미삼아 상대를 이용하고자 하는, 순수성이 결여된 나의 엉큼한 속내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결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녀석이 우리 집에 자주 오도록 친하게 잘 사귀어야 한다!’


후일 우리 집 창고에 놀러온 장군이


장군이를 두 번째 만난 건 그 다음 주 휴일, 우리 집 마당이었다.

지난주 불편한 첫 만남은 말끔히 잊어버렸는지 여유 있는 걸음으로 나를 향해 곧장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서 차렷자세를 취했다. 

녀석은 나에게 여전히 무서운 존재였지만 친하게 지내야만 했기때문에 공손한 자세로 그 녀석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다른 제스쳐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 녀석이 나를 향해 걸어올 때 '설마 나를 물어 뜯지는 않겠지! 너는 개가 아니잖아. 성격도 좋다며.'라는

생각들이 네온사인 불빛처럼 빠른 속도로 깜빡이며 지나갔다. 내 바로 앞에 다다랐을 때 여차하면 나도 대응할 태세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잔뜩 긴장된 눈으로 녀석의 검은 얼룩무늬가 꿈틀거리는 등과 머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장군다운 훌륭한 무늬였지만 위협적인 문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내 오른쪽 다리에 장군이가 옆구리를 밀착시키면서 쓱~하고 지나가는 것을 뻣뻣하게 서서 눈에 힘을 주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순간적이고 일방적이었지만 녀석의 옆구리 촉감이 다리를 통해 느껴지면서 의도적이고 우호적인 스킨십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두려움을 헤집고 살포시 피어오르는 안도감이 긴장된 두 눈까지 번져왔다.


장군이는 그렇게 나를 향해 우아하고 조용한 동작으로 말을 걸어왔다. 언어 보다 더 명확하게 마음으로

전해지는 살아 움직이는 말이었다. 앞으로 친하게 잘 지내보자고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 녀석은 단 한 번의 사심 없는 스킨십으로 내 마음속 세계에 장군이라는 새로운 친밀한 존재를 홀연히 탄생시켰다. 내가 억지로 친한 척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날 이후.

동네 산책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저만치 앞에있던 장군이가 나를 알아보고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주기도 했고, 우리 집 마당이나 집 뒤편 텃밭에서 둘이 만나게 되면 안아주고, 등을 긁어 주고,

앞발 장난을 치는 등 짧은 시간에 알콩달콩한 사이가 되었다.


장군이의 재롱


아내의 말에 따르면 장군이는 갓난아기 때부터 사람 손길을 타서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내는 모르는 것이 없다. 나의 모든 질문에는 언제나 확신있게 대답하며 근거를 다소 길게 설명하기 때문에 믿을 수밖에 없다.


후일 틀린 답이라는 것이 밝혀진 적도 있지만, 장군이에 관한 것은 대부분 맞는 것이었다.

실제로 먼 도시에 사는 맏딸이나 막내아들을 장군이가 처음 만났을 때도 바로 안겨주고,

옆에도 얌전히 앉아주곤 했던 것이다. 


내가 집 뒤편 텃밭에서 일을 할 때면 장군이는 자주 놀러 왔다.장군이는 평상에 놓여있는 나의 작업복 위에 앉아있는 것을 좋아했다. 

막내아들이 방학을 맞아 우리 집에 다시 왔을 때도 타고 온 승용차를 장군이가 알아보고 자기 집에서 달려 나와 반겨주었고, 방학이 끝날 즈음 우리 집을 떠난 막내아들을 그리워하며 며칠 동안 시무룩하게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마도 장군이는 우리 가족 중에서도 덩치가 제일 큰 막내아들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난생처음 사귄 고양이 장군이를 통해서, 지금껏 나의 관심사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관계하고 싶지도 않았던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이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세상에 저렇게 사랑스럽고 정도 많은 존재를 지금껏 모르고 살았다니!

막내아들 승용차에 올라간 장군이

장군이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고, 아내는 안단테네와 상의해서 우리 집 마당 한 쪽에 장군이 사료 접시를 따로 준비해서 대접하곤 했다.


아내는 뱀으로부터 우리 집을 안전하게 지켜줄 고정된 대안으로서 보다 확실한 조치를 취한 것일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집 식구들은 장군이의 다채로운 애교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고 뱀하고 상관없이 장군이의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작은 포장 상자 안에 몸을 유연하게 구겨넣고는 ‘너희들 봤어? 나, 이렇게도 할 줄알어!’ 하듯 목을 약간 들어 올려 검은 눈동자로 나를 똑바로 응시할 때 그 흔들림 없는 무표정함에서 나는 애교의 새로운 차원을 보았다. 

그것은 하나의 경이로움이었다.


행위를 하면서도 행위를 하지 않은 듯한, 뭔가 표현하면서도 표현하지 않은 듯한, 서로 함께하지 못할 요소들이 자연스레 공존함을 보면서 신비한 감정을 느꼈다. 그때 장군이가‘씨익~’하고 웃었다면 그 애교는 빛이 조금은 바랬을 것이다.

아마도 장군이는 우리에게 애써 포장 박스를 이용한 애교 따위는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위가 아닌 무작위의 바탕에는 존재의 평안과

아름다움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장군이는 박스에 들어가면 저절로 잦아드는 편안함을 그냥 받아들이고 즐겼을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냥 있어도 다 아름답다.

모든 존재는 그냥 있어도 다 애교 덩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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