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이야기
<배운 고양이> 풍요는 대부분 우리 집 울타리 안에서 생활했고 외출은 드물었다. 내가 마당에서 풀을 뽑거나 수돗가에서 흙 묻은 장화를 씻거나 하면 데크 바닥이나 그 위 난간에서 나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조용히 나의 행동을 지켜봤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주면 물끄러미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나는 우리 가족에게 “풍요는 사교적이지는 않지만 참 점잖고 착한 녀석이다”라고 칭찬하곤 했다.
풍요는 울타리 넘어 길손들에게는 절대로 아는 체하는 법이 없었고 우리 집에 손님이 들어오면 낮잠을 자다가도 신속하게 몸을 숨겼다.
내가 보기에 풍요는 자신만의 삶의 리듬이 있었고 그 리듬의 선율은 단조롭지만 평화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장군이가 생불에서 중생으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풍요의 삶의 리듬에도 불협화음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장군이는 자신의 영토에 거주하는 풍요의 존재를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둘째 딸이 퇴근 후 마당에 들어서는데 똑같은 상황을 두 번이나 목격했다는 것이다.
풍요는 마당에 앉아있고 장군이는 거실 앞 베란다에 앉아있었는데 둘째 딸이 대문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이자 장군이는 바로 마당으로 내려가서 둘째 딸을 맞이해 주는 것이 아니라 얌전히 앉아있는 풍요의 머리를 앞발로 쥐어박더라는 것이다.
장군이는 둘째 딸 면전에서 이러한 의도적인 구타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우리 가족으로부터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암묵적인 정당성을 인정받고자 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풍요로부터는 우리 가족이 <너의 편>이 아니라 <나의 편>이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가족 중에서 증인이 필요했고 둘째 딸이 적격자로 낙점되었을 것이다.
장군이 입장에서는 우리 집 마당은 풍요가 거주하기 훨씬 전부터 자신이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든
개척지였고 그곳에 거주하는 우리 가족도 그의 추종자들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무엇을 하든 눈치를 보거나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장군이가 우리 집 본채에 연결된 베란다에 앉고 풍요는 그 아래 낮은 곳에 있는 마당에 앉는다는 것
에서부터 장군이는 이미 그 집의 주인이었으며 풍요는 눈칫밥이나 먹는 식객이었던 것이다.
풍요는 어떠한 기득권도 없었다. 흙수저였다.
어느 날 창고 카페 안까지 고양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밖에 나가보니 장군이 엉덩이가 보였다. 머리는 풍요 집이 있는 계단 밑 작은 공간에 들어가 있었다. 나도 낮은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서 두 눈을 최대한 공간 구석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주시했다. 풍요가 종이상자 안에 없었기 때문이다.
한낮의 강렬한 햇빛이 만들어준 그늘답게 그 어둠의 농도 또한 짙었다. 그 어둠 속에 풍요가 앉아 있었다.
풍요의 오른쪽 얼굴이 보였다. 고개를 살짝 돌려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풍요는 내가 장군이 편이라고 생각했을까? 나에게 도움을 기대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내가 다가가자 장군이는 잠시 싸움을 멈춘 듯했지만, 여전히 공격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장군이에게 나의 출현은 친한 친구의 응원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왜 풍요는 공격 자세를 취하지 못하고 가장 구석진 공간의 짙은 어둠 속에 몸을 쪼그린 채 앉아 있어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풍요에게는 세 갈림길이 있었을 것이다. 첫 번째 길은 마당으로 나와서 장군이와 한판 붙어 보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풍요에게는 승산이 없는 싸움일 것이다.
두 번째 길은 장군이 영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냥 도망가는 것이다. 그럴 경우 식객으로 받아 줄 또
다른 울타리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를 것이다.
마지막 길은 햇빛이 안겨준 짙은 어둠의 공간을 죽을힘을 다해 부여잡고 밖으로 끌려나가지 않는 것이다.
그 공간은 나무 벽을 등지고 있어서 맞아 죽을 수는 있어도 추방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흙수저 풍요에게는 단 한 조각의 어둠이 절실히 필요했고 그 어둠은 풍요를 포근히 감싸 안아 줄 것
이었다. 풍요는 어둠의 공간을 최선을 다해 빼앗기지 않으려는 선택을 했을 것이다.
삶은 매 순간이 선택이다. 그 선택이 쌓여 한 존재의 역사가 된다.
나는 “장군아~ 와 그라노? 풍요하고 잘 지내야지”하면서 장군이에게 내가 도리어 애교를 부렸다.
하지만 장군이는 매일 우리 집에 와서 풍요를 그늘진 작은 공간에서 몰아내려고 했고 풍요는 변함없이 그늘진 작은 공간 속에서도 가장 깊은 어둠을 골라 그 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어느 날 풍요가 거듭된 두려움의 마지막 벼랑 끝에 선듯한 어두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묻는 듯했다.
“아저씨는 나의 편인가요? 아니면 장군이의 편인가요?”
나도 이제는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고 느꼈다. 두 명의 친구 중에서 이제는 한 명만 나의 친구여야 했다.
아내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장군이가 풍요한데 꼭 저렇게 해야 되나? 그냥 풍요 좀 가만히 놔두면 안 되나?”
아내의 답변은 역시 제왕론이었다. 고양이는 제왕의 기질이 있어서 우리 집도 장군이 혼자 독차지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풍요가 어릴 때는 돌봐 주었지만, 이제는 풍요가 좀 크니까 대결 상대로 보는 거예요”라고 덧붙이면서 표정에 근심이 묻어있었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나의 선택은 영토 분할이었다. 장군이의 영토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우선 우리 집과 안단테네를 포함하여 최소한 일곱 가구 이상의 튼튼한 성들이 있었고 그 성들의 주변을 넓은 밭들과 과수원들이 둘러싸면서 사방을 향해 뻗어 있었다. 제왕이라 불릴만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넓은 영지였다.
장군이의 드넓은 영토 중에서 우리 집 작은 마당은 아주 작은 점에 불과했고 나는 그 작은 점이 풍요의 것이어야만 했다. 그래야 만이 “아저씨는 이제부터 너의 편이다”라고 나의 선택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작은 점에 딸린 그늘 진 작은 공간조차도 풍요에게 제공해 줄 수 없다면 나는 풍요의 진정한 친구가 아닐 것이다.
장군이는 그 작은 점이 아니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다.
다음날 장군이가 왔다. 장군이한테는 참으로 미안하기가 그지없었지만 선택은 내려졌고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
“저리 가!”
장군이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저리 가!”라고 소리쳤지만 이번에는 준엄한 명령이었다. 장군이는 급변한 나의 태도에 흠칫 놀라면서 제 자리에 잠시 멈추어 섰지만, 다시 마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영토였다.
나는 이제 그의 추종자가 아니었다.
“저리 안 가나!”, “나가!”라는 소리를 연이어 외쳤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가 나누었던 알콩달콩한 기억에서 순식간에 빠져나와 자신을 적으로 바꿔놓는 나를
보고 장군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장군이는 나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집 마당은 자신의 영토로서 이미 우리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은 지 오래되었고 적절한 때가 되어서 풍요를 영토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는 장군이에게 사실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장군이의 행위에 대한 나의 판단은 단지 나의 기준에서 도출된 나만의 생각일 뿐이지 그것이 장군이에게는
진실일 리가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장군이가 알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정당한 사유는 나를 배신자로 만들었다.
서로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배신감으로부터 지칠 줄 모르고 삐져나오는 찐한 아픔은 무른 나무에 조각칼로
문양을 새기듯 그 자국은 깊고, 그 깊은 자국은 시간을 덧칠해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때가 많다.
그것은 입안에서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맛이 껌처럼 옅어졌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맛이 강해진다는 것을 오랫동안 곱씹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그것을 곱씹지 않았다.
단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것이 스스로 나를 떠날 때까지. 그러나 생각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곱씹는다는 것은 상대로부터 나의 정당성을 드높이려는 얄팍한 관념의 유희일뿐 결국 남는
것은 내 입만 아프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장군이도 나를 곱씹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내가 장군이를 몇 차례 내쫓자 장군이는 눈치가 빤~했고 우리 집 가까이 왔다가 나를 보면 되돌아가곤 했다.
서로 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슬펐지만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현실>이라는 긴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언어의 마술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풍요는 장군이가 오지 않는 낮 동안에도 그 그늘진 어둠 속에서 토끼 눈을 하고 혼자 앉아 있었다. 풍요가 참으로 측은해 보였다.
풍요가 가진 그 불안감은 상대로부터 불어오는 것이었고 그 바람은 언제 어떻게 그칠지 몰랐다.
그 상대는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풍요가 곤경에 빠진 상황은 소설 <데미안>에서 어린 시절 싱클레어를 연상케 했다. 상대로부터 협박에 시달리던 싱클레어를 불안의 늪에서 데미안이 간단히 구해주었지만 나는 데미안처럼 하지 못했다. 장군이는 굳이 낮 동안에만 풍요를 만나야 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잠자리에 든 깊은 밤에도 풍요를 만날 수 있었다.
풍요가 집을 나가기 하루 전날 늦은 밤이었다.
나는 잠을 청하며 누워 있었는데 침실 창문 밖에서 고양이들이 격렬한 소리를 내며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풍요가 계단 밑 작은 공간에서 배수진을 풀고 밀려나서 그곳까지 온 것이지, 아니면 최후의 결전장으로 그곳을 선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장군이와 밖에서 맞서 싸웠고 싸우는 소리의 강도로 보아서는 격렬한 싸움이었다.
풍요는 최선을 다한 것이리라.
나는 싸움을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창문을 열고 “장군아!”하고 소리치자 그 둘은 번개 같은 속도로 울타리 밖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다음 날부터 우리 가족은 풍요를 보지 못했다.
풍요가 우리 집을 나간 지 한 달이 지났다. 아내는 풍요가 꼭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가끔은 “아이고, 내가 풍요한데 정을 주는 게 아닌데”하고 탄식했다. 그리고 다시는 동물들한테 정을 주지 않겠다고도 했다. 물론 풍요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아내의 믿음은 그럴만한 근거는 없었다. 다만 풍요에 대한 애틋한 정이 막연한 희망으로 변했을 것이다.
나도 풍요가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혹여 야생 고양이 무리 속에 있다면 왕따 당하지 않고 잘 적응해서 살아가기를 바랐다.
어느 날 퇴임 전 다니던 직장 동료와의 술자리에서 자꾸만 풍요 생각이 나서 걱정하는 소리를 하게 되었다. 그 동료도 동물들에게 정을 너무 주지 말라고 하면서 결국 서로 헤어지게 되어있고 그러면 마음만 아프다는 이야기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쩌다 정이 들었고 부여잡았던 한 조각의 그늘마저 결국은 놓을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내 마음을 더욱더 애틋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