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이야기
풍요가 집을 나간 후에도 장군이는 순찰차 가끔 우리 집에 들렀고 나는 지난번처럼 내쫓지는 않았지만, 사료는 주지 않았다.
풍요가 돌아온다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돌아올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싶었고 장군이와 예전처럼 살가운 관계로 돌아간다면 그 여지마저도 날려 보낼 것 같아서였다.
둘째 딸은 내가 집에 없을 때 장군이가 오면 사료를 주었다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털어놓았다.
어느 날 저녁 식사 때 둘째 딸이 “아빠. 그때 사실은 장군이한테 저는 사료 줬어요. 아빠가 알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씀 안 드렸어요”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허, 허” 웃었는데 우리 집에 찾아온 장군이한테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식사대접을 한 둘째 딸이 좋았다.
사실 장군이는 누구한테나 다정다감한 열린 녀석이었다. 막내아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이런저런 장래 걱정으로 잠 못 이루고 늦은 밤에 우리 집 뒤편 텃밭 의자에 혼자 앉아 있을 때 장군이가 어디선가 나타나 무릎에 앉아주었는데 그 순간에 느꼈던 위로감과 평온함에 대해서도 막내아들과 같이 소주 한잔하면서 들은 적이 있었다.
어쨌든 나는 장군이와 풍요라 불리었던 멋진 이름의 친구 둘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그 무렵 장군이는 나와는 사이가 벌어졌지만, 그것은 장군이에게는 별난 사건이 아니었고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장군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고픈 여인이 생겼고 그것은 삶의 새로운 활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 여인은 온몸을 무늬 없는 단색의 깜장 털로 감쌌으며 두 눈은 노란빛으로 반짝였다.
그녀의 이름은 <나비>이다.
나와는 동네 산책길에서 한두 번 마주친 적이 있어 그녀를 나도 알고 있었다. 걸음걸이는 민첩했고 두 눈은
영민함이 느껴졌다. 속된 말로는 눈치가 빨라 보였다.
나비는 재준이네 집에 산다.
우리 집 주변에 있는 이웃집들에 대해서는 우리 가족들에게만 통용되는 이름이 정해져 있다. 한옥집, 할머니 집, 시청집, 울 집, 앞집, 세한도집, 재준이네 등이다. 안단테네는 영어로 <Andante>라는 글자를 멋있게 적은 작은 나무판 표식을 집 진입로 입구에 달아 놓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안단테네라고 불렀다. 안단테네는 글자 그대로 느린 삶을 살기 위해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재준이네는 젊은 부부와 초등학생 아들 두 명이 있다. 민준이는 재준이 동생이고 둘이서 인근 초등학교에 다닌다. 어느 날 그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가 정문 옆에 세워진 현수막을 보고 “역시 시골 학교만의 운치가 있어!”하고 혼자 웃었다.
<ㅇㅇㅇ, ㅁㅁㅁ, ㅇ민준! 입학하는 거여? 축하합니다!>라는 글귀였다. 그해는 세 명의 신입생이 있었나 보다. 그 학교는 전교생이 20여 명 정도이다.
장군이가 사는 안단테네에서 재준이네까지 어른 걸음으로 5분 정도 거리이다. 장군이는 나비를 만나기 위해 자주 재준이네에 다녀온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나는 ‘장군이는 좋겠네’라는 조금은 비아냥거리는 감정이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느꼈으나 더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추방당한 풍요가 더욱 측은하게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장군이의 연애 사업이 잘되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물론 이 이야기들은 아내에게서 들은 소문이다.
그때도 나는 “아~ 그렇구나’하고는 무심히 그런 소문들을 듣고만 넘겼다. 그 후 장군이의 상사병 상태가 심각하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안단테네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아내가 강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부터 <카사노바>라는 고양이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나비가 카사노바를 좋아해서 장군이에게는 마음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군이는 나비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단히 재준이네 집에 출입하며 자신이 얼마나 나비를 사랑하는지 애써 표현했지만, 나비의 사랑은 오직 카사노바에게로 향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장군이한테는 심각한 일일 것이라고 나는 비로소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날 집 뒤편 텃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장군이가 할머니집 담장 밑을 따라 자기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걷는 모습을 보니 측은하기 그지없었다.
몸은 많이 야위었고 기운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밑으로 축 쳐져 보였는데 머리는 땅을 향해 수그린 채 혼자서 무슨 소리를 중얼거리다가 중간에 비틀거리기까지 하는 것 같았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꺼이, 꺼이”하면서 우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마 나비를 만나고 오는 길일 것이다.
“어이~ 장군아!”하고 큰 소리로 몇 번 불러보았지만 못 들은 건지 아니면 못 들은 체하는 건지는 몰라도 그냥 그 자세로 힘없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소문을 종합해 보면 나비 외에는 만사가 귀찮았을 것이다.
나는 장군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그 모습을 보고 심각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안단테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장군이가 실의에 빠져 입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료를 잘 먹지 않아 몰골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잘못하면 사랑하는 장군이를 저세상으로 보낼 지경이었던 것이다.
둘째 딸이 안단테네에 놀러 갔을 때도 장군이가 힘없이 누워있다가 고개를 겨우 조금 들고 멍한 눈으로 한번 쳐다보고는 만사가 귀찮은데 왜 자기 앞에 나타나서 어른거리느냐는 듯이 바로 고개를 돌려 바닥에 떨구더라는 것이다. 둘째 딸도 정말 장군이 상태가 안 좋아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는 것이다.
아내 말에 의하면 결국 안단테네가 장군이를 위해 뭔가 조치를 하기 위해 재준이네 집에 가보니 나비가
카사노바에게 안기듯이 머리를 기대려고 하더라는 것이다.
나비가 카사노바를 좋아하니까 그것까지는 눈 뜨고 봐준다고 쳐도 그다음 장면이 안단테네 마음을 찢어질 만큼 상하게 했으리라는 것이다.
나비가 머리를 기대려고 하자 카사노바가 나비 머리를 앞발로 휙~하고 밀쳐내더라는 것이다.
<카사노바가 밀쳐내 버리는 나비의 마음을 왜 우리 장군이는 얻어내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은 안단테네에게는 고상한 철학적 질문이 아니라 눈앞에 마주한 생생한 현실의 분노였고 그것은 질타의 화살이 카사노바에서부터 방향을 바꿔 장군이 가슴에 꽂히는 것을 의미했다.
하루는 둘째 딸이 퇴근길에 집 앞에서 안단테네를 만났는데 “야! 임마! 니는 목소리가 작아서 안 되잖아. <에옹~, 에옹!> 하지 말고 큰소리로 <야웅! 야웅!>해야 뭐라도 될꺼 아니가?”하고 장군이에게 화살을 쏘더라는 것이다. 장군이는 설상가상의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장군이 목소리가 정말로 작은 게 맞나?”하고 물었더니 풍요는 <야옹! 야옹!>했고 장군이는 정말로 <에옹~> 거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장군이나 풍요 목소리는 똑같이 들렸었다.
나는 장군이의 경쟁자인 카사노바를 본 적이 없다.
아내의 표현으로는 덩치가 크고 걸음도 느긋하게 걷는 것이 좀 건방지면서도 위엄이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나비는 그런 스타일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아내로부터 처음 카사노바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심결에 ‘이름이 좀 재미있네’하고 지나쳤는데 장군이의 피골을 상접하게 하고 목숨까지 위태롭게 한 그놈에 대해서 어느 날 호기심이 생겨서 아내에게 묻게 되었다.
“그 녀석 이름이 진짜로 카사노바 맞나?”
나는 그 녀석을 길러주는 주인이 있다면 설마 무슨 특별한 사연이 있지 않고서야 자기 집 고양이 이름을
<카사노바>라고까지 짓기야 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그때 아내는 눈빛이 살짝 흔들렸고 조금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걔는 나비 말고 부인이 두 명 더 있어요” 하면서 “안단테네와 둘이서 그렇게 지어서 불러요”하는 것이다.
장군이한테는 한 명도 없는 부인을 그 녀석은 셋이나 거느리고 있는 데서 오는 질시와 적의에 찬 작명임이 분명했지만 그냥 웃음이 나왔다.
카사노바는 재준이네 출입이 자유로운 야생 고양이였다.
재준이네가 붙여준 이름은 “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었다.
후일 나비는 예쁜 새끼들을 많이 낳았고 그 녀석들은 단체로 우리 동네까지 나들이를 와서 집집마다 들리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저녁 무렵에는 재준이네 부부가 집에 돌아온 새끼 숫자가 모자란다고 찾으러 다니는 것을 보았다.
안단테네도 같이 찾으러 다녔다.
천지도 모르고 꼬물꼬물거리면서 우리 동네를 무작정 돌아다녔던 고 예쁜 녀석들은 온몸이 깜장 털에다가 노란색의 빛나는 눈을 가진 자기 엄마를 빼닮았지만 카사노바의 아들, 딸들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