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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ebomy Dec 20. 2022

일을 그만두어야 할 때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정말 다양한 배경의 학습자와 만나게 된다. 이 일이 그래서 좋을 때도 있었고, 그래서 싫을 때도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회복 중이다.


오래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피곤한 상태에서 수업에 들어갔다가도 오히려 힘을 얻고 나오곤 했다. 수업이 끝나면 몸이 바스러질 것처럼 피곤한데 정신적으로는 알 수 없는 뭔가가 꽉 찬 느낌이라 이 일을 해야만 한다고 착각했다. (아마 '착각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일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그 흔한 매너리즘에 나도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숙제도 안 해오고 수업 태도도 썩 좋지 않은 학습자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평소와 달리 그 학생들이 그렇게나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 학생들보다 더 심한 학생들도 만난 적이 있었지만 그때만큼은 정말 한 인간으로서 '꼴도 보기 싫었다'. 아, 드디어 일을 쉬어야 하는 때가 왔구나. 그 학기를 마지막으로 바람같이 그만두었다.


새로 일을 시작한 곳에서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요즘은 학생들이 그렇게나 예쁘고 기특해 보일 수가 없다. 물론 언제나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성실하지 않은 학생들도 있지만 싫지 않다. 성실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넘어간다.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 와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겨우 살아 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배움의 속도가 같은 것은 아니니까.


배우는 사람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문제는 결국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살면서 또 학습자들이 싫어지는 때가 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다만 싫은 상태가 더 심해지기 전에 내 상태가 어떤지 자주 돌아볼 것. 그렇지 않으면 영영 이 일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발 그런 일은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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