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뿐만 아니라 몸 상태도요
혼자서 일을 해도 종종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날이 있다. 타인의 행동이 딱히 나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기분이 처질 수 있다는 사실에 종종 놀라곤 한다.
기분이 안 좋은 이유 중 십중팔구는 몸이 피곤해서였다. 몸에 일어난 어떤 변화 때문인 경우도 많았다. 오늘 쬐어야 할 햇빛을 쬐지 못하면 기분이 가라앉는다. 호르몬의 변화로 기분이 바뀐다. 몸 어딘가가 아픈데 인지를 잘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엔 기분이 안 좋으면 외부에서 원인을 찾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외부와 내부 사이에서 일어난 일종의 소통 오류에서 일어나는 불쾌함이 '기분이 좋지 않다'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는 눈이 뻑뻑해서 집중이 안 됐는데, 생각에만 몰입하다 보니 눈이 뻑뻑한 줄도 모르고 참느라 짜증 난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나를 포함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분이 안 좋으면 대부분 '짜증 나'라고 말하는데 짜증이라는 감정으로 표현하는 대신 현재 일어나는 일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다. 이 상황에서의 내가 느낀 것은 짜증보다도 '눈이 뻑뻑해서 불편한 것을 견디기가 힘들다'에 가깝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나 자신에게 물으니 뻑뻑한 것만 해결이 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 목표는 일에 집중하는 것인데 그러지 못한 것이 짜증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인공 눈물을 넣어주고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착용하여 일처리를 하니 바로 문제가 해결되었다.
나는 온도나 소리에도 꽤나 예민한 편이다.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과의 전쟁이다. 카디건은 두께 별로 갖고 있고 후드티도 기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그렇게 구비를 하고 다녀도 오랜 시간 온도 변화에 적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나 시끄러운 곳에 장시간 노출이 되면 더 이상 머무르기가 힘든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그럴 때는 그 장소를 잠시 벗어나서 조용한 곳으로 잠시 쉬다가 다시 찾아가는 것이 좋았다. 아니면 나에게 최적화된 환경으로 옮기거나.
일단 기분이 안 좋으면 어딘가 몸이 불편한 곳은 없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잠은 잘 잤는지, 머리는 아프지 않은지. 머리가 아플 땐 혈액 순환에 좋다는 혈자리를 눌러보기도 한다. 스트레칭도 해보고. 매일 감정을 기록하는 앱으로 감정을 기록하다 보면 놀라우리 만큼 내 감정은 호르몬의 변화와 일치한다.
그와 별도로 건강 앱으로 생리 주기를 기록해 호르몬의 변화를 추적한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혹시 오늘 호르몬의 변화가 발생하는 날인지 의심을 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 생리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 갑작스레 불쾌함을 느끼면서 평소에 참을 수 있는 일도 참을 수 없게 된다. 배란일에도 하루 정도는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럴 때는 가급적 업무량을 조금 줄이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위주로 구성한다.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에도 기분이 처질 수 있다. 햇빛은 비타민D를 주지만 비가 오는 날은 비타민D를 얻기 어려우니까. 그럴 때에는 일단 청명한 하늘 사진을 찾아서 본다. 충분히 맑은 날의 분위기를 즐겼으면, 지금 들려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비 구경을 하고, 비와 관련된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비가 주는 매력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외부 소음은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으로 공간 분리를 한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으로 빌 에반스와 같은 재즈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나처럼 예민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면 헤드폰을 장시간 착용하는 것도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럴 경우엔 조용한 나만의 공간을 어느 정도 확보하는 것을 추천한다. 아무런 소리도 듣지 않는 시간도 필요하다. 하루에 30분 정도, 안 되면 하루에 5분이라도. 사람들은 그걸 명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는 '멍 때리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별 다른 자극 없이 가만히 있는 시간.
나는 HSP(남들보다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신경 써줘야 할 것들이 많다. 사람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나 자신과도 평화롭게 지내려면 다양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몰랐는데, 검사를 해보니 매우 예민한 사람으로 나오더라.
예민함이 부정적인 단어처럼 들려서 눈에 보여도 참고 아파도 참고 불편해도 참다 보니 오히려 엉뚱한 문제가 생기기도 하더라. 그래서 나만의 대처법을 찾아 '이럴 땐 이렇게 할 것'이라고 정해두니 마음이 편하다.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보면 뭘 그렇게 어렵게 사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평화를 위한 나름의 노하우다. 예민한 사람은 자극에 대한 역치가 낮으니.
자극에 예민한 것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제 아침에는 화장실에서 양치하는 데 까치 소리가 크게 들리길래 '우리 집 창문 앞에 까치가 앉아있기라도 하나 보군', 이라고 생각하고 거실로 나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까치가 창문 앞에 가까이 와 앉아있었다. 소리에 예민하지 않으면 몰랐을 것이다. 상대방은 자기 가방에 넣어둔 전화가 온 줄도 모르는데 진동 소리 듣고 전화 왔는지 알려줄 때도 있으니까.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길가에 핀 꽃을 발견하기도 하고, 미묘한 빛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하다고 볼 수는 없다. 작품 감상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게 눈에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타인에게 피해 주는 것이 싫어서, 무조건 참기만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참는 것은 능사가 아니었다. 모두의 평화를 위해서는 내 감각이 진짜로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파악하고, 내가 지금 원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머리로 생각하여 절충안을 마련해서 대응하는 것만이 방법이더라.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정말 소크라테스가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나 자신을 잘 알아야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