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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별 Oct 06. 2020

현실이 아닌 내 생각 속에서 산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많이 안다고 착각하는 우리들 - 가족, 엄마에 대해

# 1, 나라는 사람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누구나 자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느껴지고 모든 것이 나의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내가 아프면 온 세상이 아픈 것만 같고, 내가 우울할 땐 매일 보던 하늘의 빛깔도 우울하게 느껴진다.


# 2, 그 일이 내 일이 되었을 때의 크기와 무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에는 사실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나의 일이 되면 문제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내가 경험해 보는 것은 아마 우주의 먼지 정도밖에 안될 것이다. 경제 수준, 직업, 성별, 나이, 학력 등등 시작하면 끝도 없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았을 땐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내 일이 되면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내가 함부로 그 일에 대해서 말했구나, 아차 싶을 때도 있다. 내 일이 되면 무슨 일이든 크게 보이고, 무겁게 느껴진다. 특히 그게 낯설고 처음 하는 일일 경우에는 더욱.

 때문에,  거꾸로 말하자면 내가 하는 일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해서 우리는 함부로 말할 자격이 없다. 나는 그래서 다른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한 발언 모두를 통틀어서 '평가'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나 성격이 좋다는 표현도, 나이가 들었다는 표현도, 생김새가 누구와 닮았다는 것도 굉장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다수가 그렇게 표현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지 그게 사실이 될 순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흔히 보편적인 의견과 사실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 다른 사람의 일을 온전히 다른 사람에게 이입해서 이해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해본 적도 없고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상대방도 이 사람이 그런 자세로 이야기를 듣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 3, 착각은 가족과 연인 같은 사이에서 발생하기 쉽다 

 문제는 가족과 연인, 친한 친구와 같은 관계에서다. 가족은 사실 착각을 하기가 쉽다. 오랜 시간 함께해왔고, 유전적인 요인으로 인해 성격이나 생김새가 닮아서 서로에 대해서 잘 안다고 착각을 하기가 쉽다. 나는 너를 안다고. 하지만, 가족도 타인과 마찬가지로 "나는 당신이 아니니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도, 자꾸 그 사실을 망각해서 서로를 상처 입힐 때가 많다. 

 그리고 가족은 사실은 서로가 뜻하지 않게 상황적인 이유로 상처 입히게 된 경우가 아주 많은데도 불구하고 책임을 질 누군가가 없어서 그 사람에게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가 더욱 많다. 더욱 슬픈 건, 한국은 역사적으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하는 바람에 생기게 된 문제들이 많다. 그리고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인지 몰라도 그 누구도 제대로 된 소통 방법을 잘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 서로 대해야 할지 모르고, 서로를 위하는 감정은 있고. 사실 애정만 있는 관계보다는 애증의 관계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 4, 상처를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너무나 아프다

 나도 가족들에게 상처를 많이 줬고 상처를 많이 받았다. 제일 안타깝다고 느껴지는 건 가난한 가정은 감정적으로도 가난하기가 쉽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점이다. (경제적으로 유복한 가정이 힘들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난한 가정은 정말 절대적으로 뛰어넘어야 할 벽이 너무 많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극복해야 하고, 감정적인 극복도 어렵다. 돈이 있으면 쇼핑이라도 해서 스트레스를 풀겠지만 돈이 없으면 이걸 살까 말까도 고민이 되니까.) 

 만약에 우리 엄마가 유복한 가정에서 많이 사랑을 받고 자랐더라면 더욱 자신감이 넘쳤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참 많다. 엄마가 우리에게 미안해하는 이유가, 가난 때문일 때에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나도 부모님이 돈이 많았으면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았다고 느껴지는 한편, 엄마도 또한 부모님이(할머니, 할아버지) 유복했더라면, 엄마의 부모님이 더욱 따뜻하고 애정 넘치는 사람들이었다면이라고 바라는 건 마찬가지 일터이니 할 말이 없어진다. 늘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과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하곤 한다. 때론, 내 마음의 그릇이 더욱 넓어서 엄마가 말하는 걸 다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내 상처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날에는 나의 상처로 엄마의 상처를 찌르게 된다. 그렇게 화를 내고 나면 이상하게 너무도 마음이 아프다. 상처는 내가 주고도 말이다. 엄마가 했던 말이 다 맞는 것만 같고, 나도 이 나이 먹어서 왜 이러나 싶고, 어린 날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나를 채찍질한다. 


 한편으로 엄마가 할머니 때문에 받은 상처에 대해서 아직도 이야기하는 걸 보면, 어렸을 때 상처라는 건 아물기가 어려운 녀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상처 받은 일이 없었다면 더욱 좋았을 테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독립이라는 걸 하고, 서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너무 사랑하지만, 이제 더 이상 상처를 줄 수 없으니까. 


 엄마한테 효도하는 방법은, 빚도 갚고 용돈을 주는 일일까? 무엇일까? 지금은 엄마가 아플 테니까 그냥 엄마를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는 방법밖에 없다. 내가 사실 가장 아쉽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가지고 있는 상처는 내가 너무 어려서 말하지 못했던 상처가 많다는 것이다. 내가 어리니까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엄마가 너무너무 필요하다고 매일 외치고 싶었고, 엄마가 집에 오는지 안 오는지 꼭 문자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랑 같이 밥 먹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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