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간 북한에선 '절대 신' 남한에서는 '절대 악'으로 여겨져 오던 김일성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그 해에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학교는 집에서 가까운 사립고에 배정받았다.
나는 입학을 하고 1개월 동안 '서울 5대 사립고' 라는 자부심을 강요당했는데,
고교 평준화 정책 혜택 받아 너희들이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등학교에 들어왔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학교가 아니라며 정말 귀에 피가 나도록 세뇌시키더라.
그만큼 면학분위기가 좋았음은 인정한다.
교사들은 열정적으로 지도했고 우리는 신뢰하며 따랐으니 말이다.
남고였지만 크게 문제 일으키는 사람 없이 학업에 집중했고 나름 건전하게 지냈던 것 같다.
중학교가 야생의 약육강식 세계였다면 여기는 잘 길들여진 동물원 같은 곳이랄까?
공부에 관심 없는 애들은 말썽 부리지 않고 조용히 뒤에서 잠만 잤을 뿐이다.
[뭐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하키채의 물리적 역할이 크긴 했다만...]
강남 8학군을 경험해보진 못했으나 부모들이 기를 쓰고 면학분위기 좋은 곳으로 이사 가려는 이유가 이건가?
가끔 그들의 너무나 확고한 신념에 야릇한 저항감마저 생기지만 이런 학교를 경험해 본 나는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 너는 수업태도 괜찮고 끈기도 있는데 심지어 샌님처럼 생겨먹은 놈이 왜 점수는 항상 이 모양이야? "
고교 3년 내내 교사에게 들었던 말이다.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 있기는 했지만 원체 머리가 나쁜 탓인지, 공부 방법을 모르는 건지 점수는 늘 처참했다.
나름 암기하는 것은 자신 있었는데 공부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무지성 암기'라는 게 문제였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모든 문장을 통째로 외우려고만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수학까지도 말이다....]
중학교까지는 학원을 참 많이 다녔다.
하지만 그곳에서 안 좋은 기억이 많다 보니 학원을 거부했고 무엇이든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형도 학원 안 다니고 혼자 잘하는데 나도 못할 거 없지'라고 생각했었다.
이때는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자위했지만 이런 공부 방법이 크게 잘못됐다는 것을 너무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나름 교우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최소한 왕따는 아니었으니 중학교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인셈이다.
이렇게 표면적으로는 같은 반 동기들과 문제없어 보였지만 나는 혼자일 때가 많았다.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친구라던데 나는 그런 맘을 나눌 진정한 친구가 없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어떻게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건지 나에겐 늘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이제 교회에서도 고등부가 되었다.
인간관계와 사회성이 떨어진 만큼 신앙은 깊어졌다.
그만큼 신을 더욱 의지했고 그가 나의 비루한 삶을 구원해 주길 바랐다.
" 기독교는 선포의 종교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생각으로만 창조되지 않았어요.
'빛이 있으라'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으로 빛이 생겨났습니다.
또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에게 '일어나라! 나사로야' 말씀하시니 그는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보여주듯 말을 선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속으로만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입을 열어 고백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금방 지치고 할 말이 없어지면서 얼마못가 끝나고 맙니다.
우리는 기도했다고 하지만 실상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방언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비록 입에서 나온 말들이 우리가 알 수 없는 매우 이상한 말로 들릴지라도
방언은 성령이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하는 것으로 사람도 천사도 못 알아듣고 오직 하나님만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방언은 우리들이 알지 못하고 또 미처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성령의 인도받아 마음속 아주 비밀스러운 문제까지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목사는 늘 우리에게 방언으로 기도하라고 권면했다.
마음만 간절했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나는 방언의 은사를 받으면 하나님과 직접 만날 수[그땐 그렇게 이해했다] 있다는 목사의 말에 방언을 받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학생 때 이런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수련회에 가는 방법 밖에 없었는데
'성령기도회'라 불리는 저녁 집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통성으로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예배를 누군가는 으스스하고 기괴하다며 거부감들 수 있겠지만
당시 나에겐 무릎 꿇고 손뼉 치며 내 속에 있는 것을 토해낼 수 있는 귀한 시간이라 수련회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었다.
학생회 수련회는 겨울엔 '한얼산 기도원, 광주 기도원' 같은 대형 기도원에서 다른 교회와 연합으로 진행하고
여름에는 산 좋고 물 좋은 시골교회를 섭외하여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특히 여름 수련회는 중고등부를 '4조'로 나눠 몇 주간 조이름 구호 짓기를 시작으로 콩트, 조별 찬양, 장기 자랑을 조원들과 합심하여 준비한다.
다른 조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신앙과 결속을 다지는 것이 목표인데 통상 수련회 조장은 고1이 맡았다.
여기서 두각을 보인 조장이 고2 때 임원으로 선출되어 학생회를 이끌어 간다.
4명의 조장 중 내가 포함이 되었다.
이번 조장을 통해서 나의 소극적인 성격을 극복하고 나도 타인과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우리 조는 나로 인하여 꼴등이 되었다.
대체 나라는 사람은 잘할 수 있는 게 어쩜 단 하나도 없을까?
다들 내 말을 잘 따라주고 부족한 나를 응원해 줬지만
멍청함으로 도배된 어수룩함만 만천하에 보여주고 말았다.
사람들 앞에서 실수를 연발하니 더욱 긴장이 되고 내 주위 공기만 밀도가 높아진 듯 입을 벌리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이렇게 얼어붙은 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초조해하는 마음은 곧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비롯된다.
나부터 이런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니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결국 내가 너무 못하니까 나의 역할을 다른 사람들이 나눠서 맡게 되었다.
물론 그들은 순전히 나를 도와주려는 호의였겠지만
구석에서 찌그러져있던 나의 자격지심이 불쑥 머리를 들이밀더라.
상대의 호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내 결핍에 대한 반발심일 텐데
패잔병 같이 너덜너덜해진 나에게 아직도 이런 감정이 남아있었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땅바닥을 노려보며 애꿎은 신발만 거칠게 문질러댈 뿐이다.
한편으론 조장이 나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아... 이건 다른 차원의 속상함이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요동하면서 가슴이 먹먹해 왔다
그렇게 난 화장실 가는 척 몰래 숨어서 끝내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