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개미오락실 집단폭행 [1/3]

by 새치곱슬

8-90년대 동네 골목마다 하나씩 있던 전자오락실.


우리 시대 오락실은 '콤퓨타' '두뇌계발'과는 전혀 거리가 먼 불량스런 느낌이 있었는데 확실히 양지의 놀이공간은 아니었다.


어두침침한 분위기와 자욱하게 피어오른 담배 연기로 비행과 탈선의 온상으로 지목됐을 만큼

오락실은 비행청소년 탈선의 장소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팽배했었다.


이렇게 오락실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미묘한 죄의식을 갖게 했는데 랬던 탓인지 옛날 오락실들은 죄다 이런 구석에 숨어 있었던 것 같다


가끔 마주치는 불량배들이 무섭고 담배 때문에 목도 따갑지만 컴퓨터나 개인 게임기가 귀했던 시대라 게임을 하고 싶은 우리들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살짝 두근거리는 맘으로 오락실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입장하면 마치 희뿌연 안갯속으로 들어가는 던전 같았지만 게임을 할 때만큼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뭐 가끔 엄마들에게 뒷덜미 잡혀 끌려가는 애들도 많았...


우리 집에서는 내가 오락실 가는 것을 그렇게 크게 반대하지 않아서 오락실 출입이 잦다 보니 나름 게임을 잘하게 되었다.


특히 '스트리트파이터' 1대 1 대전게임을 즐겨했는데 단돈 100원으로 상대를 누를 수 있는 짜릿함이 있었다


학교에서는 '찐따'지만 오락실에서 만큼은 '일진'이었다.


나의 무자비한 플레이에 동네 게이머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이렇게 게임으로 현실에선 맞볼 수 없는 자신감을 얻으니 오락실에만 오면 기가 살고 목소리가 커졌다.



나와 겨룰 상대자는 반대편에서 게임을 하고 있기에 별다른 신경 쓰지 않고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었는데 이번 상대는 룰도 모르는 초보자 같았다.


거의 한대도 안 맞고 두 판을 연속으로 이겨버렸다.


아무것도 못해보고 쥐어터진 상대는 열받았는지 바로 동전을 넣어 복수전을 펼쳤다.


'넌 아직 멀었다, 실력을 더 갖춰서와라 애송이~'


속으로 비웃으면서 상대를 조소했지만

난 여기서 멈춰야 했다.


기본적인 파훼법도 모르는 초보자를 더 이상 도발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승리에 취한 나는 자비함도 없이 뉴비를 농락하고 말았으니...



- *발새끼가 졸라 얍삽하게 게임하네



반대편에서 욕설이 날아왔다.

욕을 들은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게임 속에서 현란하게 날아다녔던 내가, 욕 한마디에 덜덜 떠는 현실 찐따로 돌아왔다.


여기서 더 최악인 것은 이 기분 나쁜 욕소리가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다는 것,


'혹시 우리 반 일진? 설마....'


그렇게 나는 포식자의 시선을 피해 다니는 가젤 마냥 고개를 푹 숙였지만

그는 나를 한눈에 알아봤다.


- 하... 새치곱슬 너였냐? 미친 새끼!!


- 뭐야? 너 얘 알아?


녀석과 함께 게임을 하고 있던 밝은 갈색 염색한 놈이 히죽거리며 되묻는다.


- 그럼~ 우리 반 찐따~


녀석은 묘한 미소를 짓고는 나에게 한 손가락으로 손짓을 하며 말했다.


- 너 이 새끼 밖으로 따라와!


나는 두려움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그들에게 끌려나갔다.

그리고 나를 어두운 구석진 골목으로 몰아붙였다.


이미 그곳에 침을 뱉으며 담배 피는 두 명이 더 있었는데 눈썹을 가운데로 찡그리고 어른처럼 아주 능숙하게 담배를 빨고 있더라.


- 뭐야~ 오늘은 이 새끼야?


말에 씹혀 나온 담배연기는 놈의 입술 가에서 뒤엉키다가 내 얼굴로 향해 흩어졌다.


그는 타고 남은 담배를 내게 '퉷' 뱄더니 얇은 입술을 비틀고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잔인해 보이는 관상이다.


-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게임비는 돌려줄 테니까 보내줘...


벌벌 떠는 손으로 호주머니를 까뒤집어 나온 동전을 그들에게 내밀었다.


찰싹!


순간 내 왼뺨에 불꽃이 튀고 매섭게 후끈해짐을 느꼈다.


- 이 새끼가 누굴 거지로아나


내 뺨을 때린 놈은 얼굴을 이죽거리며 성큼 다가왔는데

한껏 올라간 입꼬리와는 다르게 살기가 깃든 그의 눈은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다.


그렇게 나는 4명에게 둘러싸여 집단 폭행을 당했다.


그들이 무엇에 이렇게 분노가 차있는지 모르겠지만 날 때리고 욕하는 소리는 의미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잘하게 분해되고 길게 늘어졌다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의식을 잃은 것처럼 귀에서는 '삐~' 소리가 나면서 더 이상 아픔이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고 온몸이 마비된 느낌만 남아있을 때쯤


뻑!!


상당히 기분 나쁜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끈적한 무언가가 계속 입으로 들어왔다.

결국 코를 정통으로 맞았나 보다

코피가 봇물 터지듯 멈추지 않고 줄줄 흘렀다.


그제야 녀석들은 무자비한 폭행을 멈췄다

그들은 멈추지 않는 코피를 보고 주춤했지만 나로서는 폭행을 멈추게 한 코피가 너무 고마웠다


내 상태가 꽤 심각해지니 오히려 우리 반 녀석이 당황해서 날 회유하더라.


- 얘네가 술 마셔서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네가 좀 이해해라! 근데 말이야....


방금까지 회유를 종용하던 놈의 눈이 순식간에 뒤집어지더니


- 여기 있었던 일 누구에게든 말하면 넌 진짜 뒤질 줄 알아! 내가 너 끝까지 지켜본다.


협박의 눈빛으로 변했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와중에도 코피는 대책 없이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겨울날 이미 해가 져서 어둑 해질 때쯤 나는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집에 가는 동안 코피를 옷소매로 닦으려 코를 스칠 때마다 강한 전류가 흐른 것처럼 찌릿하는 아린 통증이 느껴졌다


지금 내 몸이 온전하지 않지만 그 녀석들이 내 뒤를 밟아서 우리 집을 알아낼까 봐 전력을 다해 집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헐떡거리며 집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면서도 끊임없이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뒤에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나는 폐에 고인 숨을 급하게 토해냈다


드디어 집 문이 열리고 나는 긴장이 풀리며 현관 앞에서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 대체 무슨 일이야! 누가 그랬어!!


문을 열어준 엄마는 나의 몰골을 보고는 거의 기절할 뻔하셨다.

쓰러진 나를 붙들어준 엄마는 나보다 손을 더 벌벌 떠시고 목소리 마저 흔들리는 게 보였다.


가족의 부축으로 내 방으로 들어왔지만 몸에 떨림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한기를 느끼며 침대에 눕는데 맞은 감촉이 온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더라.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내 몸을 엄마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르는 듯 한숨을 내쉬며 약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자리를 고쳐 앉고는 어떻게 된 일인지 소상히 알기 원하셨다.


길을 가다가 불량배에게 맞았다고 대충 둘러댔다.

누군지도 모른다고 했다


- 그래도 얼굴은 봤을 거 아니야?


엄마는 얼버부리는 나의 대답이 답답한 듯 더욱 집요하게 다그쳤다.


- 엄마 나 많이 아파! 제발 날 좀 쉬게 해 주란 말이야!!


내 목소리가 일그러지게 방안을 울렸다.


마치 엄마에게 분풀이하듯 내가 더 흥분하니까 엄마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을 안 하셨다.


부모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봤자 괜히 일만 커질 것 같고 이 사실을 알게 될 그놈들의 더 큰 괴롭힘이 두려웠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졸업이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그날 밤부터 비릿한 냄새와 기분 나쁜 끈쩍한 무언가가 한동안 내 방에 떠다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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