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장례식
코뼈가 골절되어 코가 상당히 부어올랐다.
게다가 눈가가 찢어지고 핏줄도 터져 충혈되었며 온몸이 멍투성이다
학교에서 괴롭힘은 늘 당해왔어도 이런 무지막지한 집단 폭행은 처음이었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비중격이 영구적으로 휘어져 왼쪽 코로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현재 졸업식을 앞둔 봄방학이라서 학교를 안 가도 된다는 것,
당분간 병원 다니면서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 꼼짝없이 누워있어야만 하는 하루하루가 곤욕이었으니,
며칠 동안 다른 현실이 그때까지 있었던 나의 삶을 밀어내고 그대로 눌러앉은 듯한 위화감이 있었다
이때 당시 엄마는 아버지 사업장에서 함께 일을 하시느라 할머니가 우리 형제를 케어하셨다.
밖에서 얻어터지고 집에 들어온 날 할머니가 너무 많은 걱정을 하셨다.
내가 누워있는 동안 이것저것 신경 써주시며 분주해하셨는데 나는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할머니에게 짜증 내고 툴툴거렸다.
그렇게 며칠을 집에만 있으니 너무 답답해서 외출을 하려고 주섬주섬 옷을 입으니 할머니께서 걱정을 하시며 나를 말렸다.
- 할머니 잠깐 동네 한 바퀴만 돌고올께
하지만 나는 고집을 부렸고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하시며
- 언능 댕겨오니라, 푹 쉬어야 나슨께
걱정하는 맘으로 당부하셨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응' 이라고 짧게 대답하고 밖으로 나왔다.....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지만 코에는 붕대를 눈알은 시뻘건 채로 막상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
춥기도 하고 괜히 나왔나 후회가 들 때쯤 오락실 간판이 눈에 보였다.
순간 오락실에서 폭행당한 기억이 떠올라 멈칫했지만
'그냥 구경하면서 몸만 좀 녹이고 갈까?'
오락실에 가고 싶다는 욕망이 불안을 누르고 타협이라는 눈속임으로 나를 합리화시켰다.
[지금 글 쓰며 다시 생각해 봐도 참 어이없는 행동이다. 다시 거기로 기어 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처음에는 구경을 그리고 다음에는 딱 한판만 할 생각이었는데 며칠 게임을 못한 '한' 이었을까 시간 가는 줄 모르도록 오락에 빠져버렸다.
한참을 열내며 게임에 집중하고 있을 때 옆집 사는 동생이 오락실로 들어와 나를 발견하고는 말을 건다.
- 형! 눈 하고 코가 왜 그래? 다쳤어?
-...............
대답하기 짜증 나서 대꾸를 안 했다.
- 근데 형네 집 앞에 경찰차와 병원차가 있던데? 무슨 일 있어?
- 그건 나도 모르지~ 말 시키지 마라, 게임에 집중 안되니까.
벌건 눈을 게임에 집중한 채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땅거미가 질 때쯤 오락실에서 나왔다.
'으이구~ 할머니에게 또 혼나겠네'
늦게 들어왔다고 잔소리 들을 생각에 짜증이 나더라.
'오락실에서 옷에밴 담배냄새를 털어내야 그나마 덜 혼나겠지' 머리를 굴리며 집에 도착했는데 무슨 일인지 대문부터 현관문이 모두 활짝 열려있었다.
게다가 회사에 계셔야 할 아버지가 집에 홀로 계셨다.
'아버지가 왜 이 시간에?'
멍하게 주저앉아있던 아버지는 날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신다.
- 곱슬아 어쩌냐! 어쩌냐!!
할머니는 어디 가시고 눈물이라곤 전혀 없어 보였던 아버지가 날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우셨다.
- 할머니가 우리 곱슬이를 얼마나 사랑하셨는데 이렇게 가시면 안 되는데....
아니 진정으로 엄마 잃은 아이처럼 엉엉 울고 계셨다.
방학 동안 외할머니 집에서 지낼 때 소가 우는 것을 보았다
개가 낑낑 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울음이다
세상 설움 다 제 것인 마냥 소리 내어 서럽게 울더라
그 큰 눈망울을 지켜보는 사람이 더 가슴 아플 정도로...
한참을 우시던 아버지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되셨는지
'어서 할머니에게 가자' 말을 하며 서둘러 옷을 갈아입으셨다.
이쯤 되니 나도 알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런데 나는 이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몇 시간 전까지 내 밥을 챙겨주고 또 배웅까지 해주셨는데 이 사태를 대체 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눈물도 안나더라
가족들은 이미 다 급하게 마련한 장례식장에 갔고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며 날 데려오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할머니의 이름이 적힌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니 그제야 할머니가 진정 돌아가셨단 사실에 실감하고 눈물이 터졌다.
형이 집에 왔을 때 복층 계단 밑에서 쓰러져 계신 할머니를 보고 부모님께 연락했다고 들었다.
[내 어릴 적 기억이라 지병 때문인지 혹은 사고사인지 부모님께 다시 확인해 보았다.
부모님 말씀으로는 당시 할머니께서 평소 많이 아프셔서 병원에 자주 다니셨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집이 복층 구조였는데 할머니는 옥탑방 난간 없는 계단에서 실족하신 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
어찌 됐건 내가 집을 나가고 얼마 안 돼서 일어난 일이다.
그때 내가 할머니 말씀대로 그냥 집에 있었다면 이런 불행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까?
할머니 말대로 나가지 말걸, 외출하고 금방 돌아올걸, 그것도 아니면 나갈 때 할머니에게 제대로 인사라도 했었어야 했는데...
할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이 할머니의 말씀을 어기는 대화였다는 게 날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나는 왜 쓸데없이 밖에서 처맞고 들어와서 할머니와의 마지막을 그런 식으로 망쳐놨는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에 또 자책을 했었다.
한동안 장례식장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사람이 뜸한 새벽 방구석에 누워 할머니와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되뇌면 되뇔수록 할머니에게 잘못했던 일만 떠올라 너무 괴로웠다.
유난히 입이 짧았던 나를 위해 어르고 달래 가며 밥을 먹이느라 늘 고생이 많았던 우리 할머니
얼마 전 할머니가 아픈 몸을 이끌고 짜파게티를 만들어 주셨는데 깜빡하시고 그것을 라면처럼 끓여주셨다.
국물이 있는 짜파게티라니, 나는 버럭 화를 내며 안 먹는다 소리쳤다.
정신 나간 놈처럼....
잠도 안 오고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와 찬공기를 들이켜본다.
저기 전봇대 밑에서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였다.
처음 봤다, 아버지의 이런 낯선 모습을
'울 아버지 담배 안 피우시는데...'
정말 아버지가 맞는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았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달리 이미 한대를 다 피셨는지 담뱃갑에서 또 하나를 꺼내 불을 붙이는데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나를 더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효자셨던 아버지도 나처럼 후회되는 일만 가득한 것인가
이렇게 담배를 태우면 당신 마음속에 있는 후회가 연기 따라 폴폴 날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셨는지도...
평생 아버지의 마지막 담배는 이날 피우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할머니를 떠올리면 후각이 먼저 반응을 한다.
난 아기였을 때부터 우리 할머니의 '꼬순내'를 맡고 자랐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늘 아침 일찍 일어나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참빗으로 곱게 빗어 동그랗게 틀어 올려서 은비녀를 꽂으셨다.
할머니의 체취와 동백기름이 섞여서 풍기는 냄새가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꼬순내 같다.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한방을 쓰고 살았을 때는 자다가 할머니의 꼬순내가 사라지면 불안해서 할머니를 찾아다니곤 했다.
꼬순내는 나의 안정애착이었나 보다.
나는 할머니께서 바느질하실 때마다 눈이 침침한 할머니를 대신해 바늘구멍에 실을 넣어드렸다.
실에 침을 한번 발라 한번에 쑥 집어넣는 내 모습이 그리도 대견했는지
'아이고 내 갱아지~' 하시며 흐뭇하게 바라보셨는데
지금 '내 엄마'가 '내 새끼'를 바라보는 그 모습이 담겨있다.
손자들이 뭐가 그리 좋은지 그냥 보기만 해도 좋으시단다.
할머니에게 손자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이 참 신비하면서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