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개미오락실 집단폭행 [3/3]

이제야 중학교 앨범을 제대로 펼쳐본다

by 새치곱슬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후 중학교 졸업식이 다가왔다.


드디어 오늘 3년 간의 왕따와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나는 날이다.

지옥 같았던 그 시간 그 공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


이 학교가 너무 괴로워서 전학이나 심지어 자퇴까지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개근했다는 부분이 쓴웃음을 짓게 한다.


그래도 오늘은 졸업식인 만큼 분주하게 마지막 등교준비를 해본다.


내가 먼저 학교에 가고 엄마는 졸업식 시간에 맞춰 오시기로 했다.


할머니께서도 졸업식 때마다 오셔서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오늘 할머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 같다



학교에 도착해 교문에 걸려있는 졸업식 플래카드를 바라보니 그토록 가기 싫었던 중학교도 이제 끝이라는 실감이 들면서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잠시 쓰라린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지만 빨리 엄마를 만나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얼굴에 상처를 가리느라 마스크를 쓰고 등교했다.


'차라리 내가 그 누구에도 안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주눅 든 채 다른 사람을 의식했지만

다행히도 졸업생들은 친한 친구들끼리 사진 찍고 또 누구는 밀가루 가지고 장난치느라 나에게 별 관심도 없는 듯하다.


희뿌연 가루가 날리는 계단을 올라 반으로 들어가려는데 폭행당한 코끝이 순간 찌릿해지며 내 발걸음이 멈춰졌다.


'그 놈들이다.....'


심장이 롯데월드 자이로드롭 마냥 철렁하며 내려앉는다.

나의 졸업식과 전혀 상관없는 그 녀석들이 눈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놈들이 여기를 어떻게 알고 저기에 있는 거지?'


심장이 다시 제자리로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건지 잠깐 멘붕이 왔다


'아... 날 알고 있는 놈이 이미 말했겠구나'


과한 액션으로 우리 반 일진들과 거친 잡담 나누는 모습을 보고 판단했다.


- 이 새끼 왜 이렇게 안 와? 짜증 나게


'날 기다리고 있는 건가....'


놈들의 선명한 악의가 보이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다행히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날 알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날 폭행하던 그날 이 녀석들에게 나는 단지 하나의 유희였을 뿐,

지금 놈들의 웃고 떠드는 모습에서 전혀 죄의식은 없어 보였다.


그날 누굴 괴롭혔던 기억은 뇌 속에 없고 그냥 한 명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하겠지.

이놈들에게 그때 그 정도로는 아직도 부족했던 걸까?


다시 씹어 삼키려고 날 찾아왔다.

나는 또다시 그들의 먹잇감이 될 처지에 놓였다.


쓸데없는 무력한 분노가 잠시 일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 눈에 뜨이지 않는 것, 즉 도망치는 것뿐이다


내 머릿속이 고장 났는지 이 방법 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졸업식도 못하고 스스로 만든 망령에 쫓기듯 중학교를 뛰쳐나갔다.



몇 시간 후 졸업식에 가셨던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한껏 꾸민 엄마 두 손에 주인 없는 꽃다발, 졸업장과 개근상을 든 채로 말이다


방안에 있는 날 발견하고는 좀처럼 큰소리를 내시지 않던 엄마가 정말 불같이 화를 냈다.


- 아들! 학교는 안 오고 선생님도 계속 기다리시는데 졸업식날 어디에 있었어?

- .........

- 너 말 안 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대꾸 없는 내 모습에 엄마는 답답해하며 채근하셨다


이런 감정적 대응은 서로에게 반목과 후회만 남길 것이다.


- 그 녀석들 때문이야... 실은 나...


엄마와 갈등을 원치 않았으므로 내가 누구에게 맞았는지 어떤 괴롭힘을 당했는지 사실대로 말씀드렸다.


- 뭐라고?


엄마는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다시 되물으셨다.


- 날 이렇게 만든 놈들이 반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이 말을 힘겹게 뱉어내고는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 그런 일이 있으면 엄마를 기다리거나 담임 선생님에게 말을 했어야지


내 울음에 당황한 엄마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 모르겠어... 그 녀석들을 보는 순간 얼어붙어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냥 도망쳤으니까

- 하.....


엄마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복잡해진 마음을 가다듬는 듯 보였다.


그놈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싶고 당장 학교에 찾아가고 싶지만 무너져버린 아들의 마음을 주워 담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하신 걸까

이내 날 바라보는 눈빛에 힘이 풀리고 두 손 꼭 쥐고 있던 졸업장과 개근상을 내려놓으셨다.


- 그동안 우리 아들 참... 힘들었겠다....


엄마는 고개 숙여 울고 있는 날 그렇게 위로해 주셨다.


바닥에 버려진 구멍 난 내 자존감을 주어서 먼지 털고 꼬매주듯이....




폭력의 상처는 맞은 당일 그 시간 그 순간에는 표현하기 힘들죠

하지만 머릿속에 숨어있다가 찾아와서

스스로를 정리하고 변호할 수 있게 될 때

호소라는 형태로 표현하게 되죠

그걸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없다면 죽기 전까지 그 고통이 따르겠죠


[유튜브] 학교 폭력 영상 댓글 중에서



지금은 재건축으로 없어져버린 오락실 뒷골목길, 침이 섞인 담배, 그리고 비릿한 피냄새까지 강렬한 잔상으로 남아있는 그날 그 시간 그 장소

나의 심연에서 아직까지 꿈틀대는 기억이다.


'그 시절 그때는 그랬지' 인정하고 치유되었으면 하는데

그날의 기억은 치료되지 않는 암세포처럼 의식 속에 단단히 뿌리내려있다.


또한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중학교 앨범을 제대로 넘겨 본 적이 없다


창고에 처박아두었지만 이사 갈 때마다 눈에 걸리는 중학교 앨범을 볼 때마다 시간을 거슬러 처음 따돌림받았던 때로 퇴행하기 때문에 성숙한 이해에 접근 힘들었다


글을 쓰면서도 두려움의 단단한 모서리가 나를 짓누르고 자기 안으로 침잠해서 끝내는 암흑 속으로 꺼져가는 기분,

스스로 감옥을 만들어서 여전히 그 안에 갇혀있는 것처럼...


얼마 전 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보았다.

아마 난 졸업이 아니었으면 중학교 남은 시절 내내 '문동은'이 되었겠지


솔직히 첫 프롤로그를 쓸 때만 해도 그들의 사진을 뿌려서 '멋지다, 연진아!' 손뼉 치고 박제시켜버리려 했는데

[사실적시 명예훼손이고 지랄이고 상관없이...]


글을 썼다 지웠다 하면서 내 과거의 두려움을 감추지 않고 직시하고 부딪히니 침잠했던 마음이 조금씩 정화되더라.


두려움이라는 정서는 그 느낌을 피하려는 전략에 의해 지속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그 두려움과 직면하려 한다.

어두운 곳에서 켜켜이 먼지가 쌓인 중학교 앨범을 꺼낼 것이다.


이제야 중학교 앨범을 제대로 펼쳐서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직시해 본다.

뇌에 각인이 될 정도로 상당히 잔인하게 생긴 악마 같은 놈들이라 생각했는데

30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다시 보니 그냥 다들 어린 중학생들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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