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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새치곱슬
Oct 01. 2024
11. 잘난 형과 그렇지 못한 나
- 네가 동진이 동생? 우와~ 너 기대된다
- 얘가 동진오빠 동생이래~ 그럼 너도 공부 잘하겠네 부럽다
교회 안에서 나는 단지 형의 친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배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형은 학생회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선한 인상을 가진 그의 곁에는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나에게 형이란 존재는 어떤 의미였을까?
일단 우리 가족은 굉장히 무뚝뚝한 집안이었다.
가정교육을 중시하고 예절을 강조하는 아버지 밑에 조용한 두 형제만 있어서 그런지 사랑이 넘치고 살가운 가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누나나 여동생이 있는 밝은 분위기의 친척들이 늘 부러웠다.
세 살 터울인 우리 형제는 서로 재밌게 놀았던 추억이 어릴 적엔 많았지만 형이 중학생 된 이후로 너무나 달라졌다.
형은 하루종일 공부만 하느라 나와 더 이상 놀아주지 않았고 점점 어른스러워
지며
서먹한 느낌
마저
들었다.
이런 나의 당황스러움과
달리 형은 어린 나이에도 진중하고 믿음직스럽다는 말을 자주 들었
고
특히 부모님이 형을 대단히 자랑스러워했다.
부모 말에 순종하고 공부도 정말 잘해서 하는 행동마다 대견한 형에겐 물심양면 아낌없이 지원을 했으니
투입 대비 산출 효율성이 굉장히 좋았을 것,
한마디로 자식 키우는 맛이 났을 것이다.
형제는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운명적 인연인 존재지만,
역설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관계다.
하지만 형제간에 흔히 있는 호승심 같은 것도 내겐 없었다.
그만큼 형은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으니까...
또, 나는 형이 하는 것을 굳이 따라 하지 않았다.
내가 하면
어설퍼지거나
더
엉성해질 뿐
이고
형을 따라 할수록 모든 면에서 형보다 열등한 인간이란 걸 일일이 증명하는 꼴이 됐으니 말이다.
그나마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형과 같이 있을 때만 핀조명이 우릴 비춰 잠시 밝아지고 형이 퇴장하면 핀조명은 어김없이 형을 따라가 버렸다.
어둠 속에 남겨진 나는 뭐 별수 있나... 그냥 암순응이 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는 수밖에....
그렇다면 이토록 잘난 형을 질투한 적이 있었을까?
물론 어느 정도는 있었을 것이나 본디 질투란 '나와의 유사성'이 있는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형을 나와는 아예 다른 종[
種]
이라 생각했기에 그렇게 큰 질투는 없었다.
오히려
난 형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매사 융통성 없는 꼬장꼬장한 선비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항상 바른말만 하는 고지식한 형과
도무지 대화가 통하는 느낌이 없었다.
그렇게 우린 남들에게 '얘네 둘 형제 맞아?'라는 말을 들으며 데면데면 지냈다
부모님의 양육 방식에
나는 큰 불만은 없었다.
형이 워낙 부모 기대의 부합하는 자식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난 부모님의 기대치가 제로라 더 마음이 편했다
형과 비교해서 모든 것이 엉성한 날 구박하시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방목하셨다
내 결정을 존중해 주셨고 내가 뭔가를 해보려 하면 내 의지를 거절하지 않고 오히려 격려해 주셨다.
그래서 뛰어난 형제를 둔 못난 동생 심연에 흔히 깔려있는 피해의식 같은 건
나에게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은 거의 다 해주셨는데
생각해 보니 난 부모
에게
잘 부탁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중학생 때부터는 뭔가 부모에게 해달라고 조르는 게 불편했달까?
오히려 내가 쭈뼛거리며 부탁하면 부모는 반색하며 내 기대보다 더 크게 도와주셨다.
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의논하는 것에 좀 불편해했다.
결코 자존심이 세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냥 어떤 것이든 혼자 천천히 하는 게 편했을 뿐이다.
얼마 전 추석, 부모와 대화 중에 우리 어렸을 때 형에게만 신경 쓴 것 같다 굉장히 미안해하셨는데
엄마
가
말
하시길
어렸을 때 형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끝까지 졸라서 손에 얻었고 나는 조금 조르다가 포기했다는 것이다.
그때 당신이 생각하기에 형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끝내 손에 넣는 자여서 어디서든 제 몫 잘 챙기며 살 것이고
나는 시도 조금 해보고 안되면 그냥 포기할 것 같은 불안감을 느껴서
일단 내가 다 하고픈대로 하도록 지켜보셨단다.
아마 내가 포기할 땐 하더라도 스스로 무언갈 찾아가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확실히 내가 형과 다른 점이 있다.
형은 곧게 뻗은 레일 위에서 다른 곳을 보지 않고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끈기 있게 가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런저런 주체적인 경험을 통해 나만의 레일을 개척하는 자이다.
형은 형의 길이 있고 나는 나의 길이 있다...
이렇게 잘난 형 그림자의 눌리지 않게 된 것은 순전히 부모님 덕분이다.
부모의 이런 관심이 마중물이 되어 나는 나의 삶을 스스로 돌보게 되었고 어느 순간 형의 모습도 편견 없이 보게 되었다.
신앙의 선배로서 믿음의 본이 되었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했으며 천성적으로 선한 사람이다.
장남으로서 부모말씀에 순종하느라 나름 스트레스도 많았겠지.
그래도 형은 평생 엇나감 없이 착실하게 크고 부모님의 기대를 늘 충족시켜 주는 아들이었다.
그리고 마음도 꽤 따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국민학생 때 학교 앞 문방구에서 병아리를 사 온 적이 있었다.
병아리가 하루는 그럭저럭 버티더니 그 다음날
시름시름 앓으며 그대로 쓰러져 버리더라.
'삐약' 소리마저 희미해진 병아리는 오늘 밤을 버티기 힘들어 보였다.
다음날 나는 병아리가 걱정돼 아침 일찍 일어나 병아리 상태부터 살폈다.
그런데 방에 있어야 할 병아리가 보이지 않았다.
깜짝 놀라서 병아리를 찾으러 거실로 나갔는데 형이 소파 위에서 손을 내밀고 자고 있더라.
형 손을 살펴보니 그 안에 있던 병아리와 눈이 마주쳤다.
형이 병아리를 가제 손수건 위에 놓고 밤새 품어주었나 보다.
형의 온기를 받고 기력을 회복한 병아리는 언제 아팠냐는 듯
아침부터 삐약거리며 온 집안 구석구석 헤집고 다녔다.
우리 가족은 부활한 [?] 병아리를 보고 얼마나 놀라고 기뻐했는지 모른다.
언젠가 같은 곱슬머리인 형에게 내 고민을 말해볼까 했었다.
형은 학교에서 곱슬머리 때문에 놀림받지 않느냐고....
그런데 '어 나도 그래'라는 말이 형입에서 툭 튀어나올까 봐 겁이 났다.
내가 가족이라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형이 '나도 놀림받아서 괴로워'라고 말한다면 내가 너무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가족애 같은 그런 거창한 맘은 아니지만
한가족으로서, 또 괴롭힘 당하는 그 아픔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직접 물어보기가 좀 두려웠다.
형이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아닌지는 내 의지에 따라 질문함과 동시에 결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런 질문을 평생 하지 않으면 형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가 되는 거겠지.
뭐
이런 식으로 고통받는 건 집안에 한 명이면 족하다...
이런저런 심란한 생각들을 가지고 교회에 도착했는데
여자들과도 스스럼없이 웃고 있는 형을 보니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다.
애당초 형은 자연스런 반 곱슬머리고 나만 왕! 꼽슬머리였으니까
그리고 공부 잘하는 사람은 학교에서 절대 괴롭힘 당하지 않는다.
[이건 우리 때 일종의 룰같은 것이다]
하~ 참...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두뇌 외모는 왜 형에게 다 몰빵 하셨는지....
이 정도면
조금은 부모
님께 서운해도 되는 거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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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 형과의 대화
- 형 우리 암사동 살 때 병아리 사건[?] 혹시 기억나?
- 그럼~ 그 무뚝뚝한 아버지께서 '허~ 참! 신통하네' 이 말만 반복하고 병아리가 살아난 것에 엄청 기뻐하신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 걸
- 당시 형도 국민학생이었을 텐데 참 대단했어. 어떻게 그렇게 했던 거야?
- 글쎄 뭐 병아리가 다시 살 거라는 생각은 못했고 어미가 새끼 품어주듯이 그냥 손수건 위에다 품었을 뿐이지
지금은
부화기
사서
애들과
병아리
키우고
있는데
세상
참
좋아졌어~ ㅎㅎ
-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슬픈 일이 일어나고 말았지.
- 음... 그랬지...
더 이상 형이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끝.
바쁜 아침 등교시간에 형을 졸졸 쫓아다니던 병아리를 형이 뒷걸음치다 밟아버려 하늘로 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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