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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치곱슬 Aug 26. 2024

10. 외톨이도 친구가 필요하다[2/2]

교회 친구 편

우리 가족은 88년 성내동으로 이사 갔음에도 교회를 옮기지 않았다.


심지어 매년 반복되던 풍납동, 성내동 수해피해를 당한 일요일에도 물길을 헤치고 암사동 교회까지 걸어갔다.


일요일마다 일찍 일어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게 참 귀찮은 일이지만 교회가 암사동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행여나 교회가 학교 근처였다면 날 놀리던 녀석이 언젠가 올 것 같은 불안감에 아마 잠도 제대로 못 잤을 터이니...


이렇게 나는 교회를 꾸준히 오래 다녔지만 이곳에서도 제대로 된 친구하나 없었다.


암사동 살 때부터 항상 붙어 다니던 단짝 친구 영욱이가 6학년 때 지방으로 이사 간  늘 혼자였다.


물론 교회 안에 동기들이 꽤 많았지만 자격지심,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나는 그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나는 같이 오래 있을수록 밑천이 드러나는 사람이라 어찌어찌 친해진다 해도 내 어둠을 들키는 순간 이들에게까지 놀림을 당할까 스스로 관계를 차단했다.


그렇게 몇 년을 피하고 다니니 동기들 사이에서 점점 스스러운 놈으로 인식되더라...




나는 교회에서 아무런 존재감도 없는 그런 놈이지만 동기 중에 정말 잘생긴 친구 있었다. 


매끄럽게 찰랑거리는 생머리에 쌍꺼풀 있는 똘망똘망한 큰 눈, 오뚝한 콧날, 선홍빛 감도는 정갈한 입술까지...


준수는 순정만화를 찢고 나온 비주얼에 만약 얘가 여자였어도 진심 예뻤을 거 같다.


'저 생머리를 찰랑찰랑 거리고 다니는 느낌은 과연 어떨까?  간지럽지는 않을까?  내려온 긴 머리가 눈을 찌르지나 않을까? ' 나와 전혀 상관없는 상상을 하고


'나는 이 모양 이 꼴인데 쟤는 어쩜 저렇게 멋질 수가 있을까....'  질투와 자기혐오로 열등감을 드러냈다.


음악과 운동을 잘하던 준수는 여자들은 물론이고 남자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중학교 때 슬램덩크 일본 만화가 유행했는데 그는 상양의 '김수겸' 그 자체였다.



심지어 신앙심이 깊고 성품도 돈후하여 주위 사람을 포용하는 힘이 있었다.


이 정도면 성격은 지랄 맞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차라리 나쁜 녀석이라면 마음껏 싫어할 수 있는데 준수는 누가 봐도 참 괜찮은 사람이라서 더 괴로웠다.


그렇다고 친해질 수도 없었다.


난 일상적 농담을 주고받는 데 끼지 못하고 개복치 마냥 얼어붙는다


모든 사람과 재미있게 장난치고 자신감 있게 어울리는 준수가 너무 부러우면서 미워지기까지 했다.


항상 밝은 그는 내 어두운 그림자를 비추는 그런 존재이다.


밝고 멋진 그의 모습을 부러워하며 내가 가진 초라함의 그림자가 더 길게 늘어져 보였다



그럼 준수의 자신감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당연히 그것은 저 찰랑거리는 머릿결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도 저런 매력적인 머리를 가졌으면 준수처럼 될 수 있었을까?



글쎄.....



중3 때 학교에서 예쁘다고 소문난 여자애를 그윽하게 쳐다봤단 이유로


- 너 이 새끼 혹시 지수 좋아하냐? 지수야~ 새치곱슬이 너 사랑한데~

- 미쳤나봐! ㅈㄴ 싫어!!  


그렇게 난 흉측한 벌레가 되었고 그날 이후로 여자 눈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다....


동성친구도 없는 내게 이성이란 구구단도 못 외는 초딩이 방정식 풀려하는 그 뜬구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자존감의 박살로 인해 친교를 담당하는 기능이 완전히 상실되어 이제 더 이상 내 머리카락에게 책임전가를 할 수 없을 지경까지 왔다


하지만 이런 나도 누군가와 친구가 되어 마음을 나누고 싶은 갈망이 왜 없겠는가?


물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안될 것을 바라면 바랄수록 나만 더 괴로워질 뿐이니까....




그렇게 1년 후쯤 교회에 새로운 동급생이 들어왔다.


깡마르고 순해 보이는 인상에 조용한 녀석


뉴페이스를 여러 날 관찰한 결과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임을 느꼈다


지금 나에게는 친구가 간절했기에 나를 전혀 모르는 새로운 사람에게는 다가갈 용기가 조금 생기더라


이 친구도 누군가와 얼른 친해져 불안하게 떠 있는 자신을 어떻게든 연착륙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린 서로 손에 닿을 수 있게 거리를 좁혔고 마침내 친구가 되었다.


우리가 만나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꽤 친한 사이가 되었고 서로의 집을 오고 가며 놀기도 했다.


대영이와 친해지면서 굳건히 닫혀있던 마음에 미세한 균열이 생겨 그 틈으로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나에게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기다니 마치 꿈만 같았다.


하지만 교회모임에 소극적인 나와 달리 대영이가 점점 교회활동에 적극적이 될수록 우리 사이는 조금씩 멀어져 갔다.


대영이는 찬양팀에 들어가 기타를 쳤고 그곳에서 드럼을 두들기던 준수와 어느덧 가장 친한 친구 사이가 되어 있었지.


물론 우린 여전히 교회에서 친한 친구였지만 더 이상 내가 '최애'가 아니었을 뿐...


나와 닮았던 친구의 새로운 만남을 마주 보는 게 솔직히 좀 괴로웠다


이런 내 맘과 달리 대영이와 준수는 절친을 넘어선 소울메이트가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둘의 우정은 더욱 진해졌다.



이제 혼자 남아버린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나에게 남은 것은 공부뿐이다.


나름 책상머리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자신 있었는데


원체 머리가 나쁜 탓인지, 공부 방법을 모르는 건지 점수는 늘 처참했다.


그렇게 집에서 시무룩하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린다.


띵동~!


- 엄마 나왔어~  


바티칸 미술관에 걸릴듯한 성화 후광 아우라에 얼굴이 빛나는 엄친아!!

[ 들]


하... 우리 잘난 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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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내가 교회를 옮긴 후에도 대영이와는 가끔 길가며 만났다.


- 대웅이[동생]에게 들었어. 새로운 교회에서는 청년회 활동 열심히 한다고 말이야

짜식~ 진작 효정교회에서도 그렇게 잘해보지 그랬냐^^

그러고 보면 내가 처음 교회에 와서 너랑 제일 친했는데, 넌 집도 멀고 또 항상 예배가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쁘니 그런 널 볼 때마다 많이 아쉬웠어.  



강산이 두 번 변할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야 글을 쓰기 위해 효정교회 학생회 근황을 여기저기 쑤시고 다닐 때 나는 충격적인 비보를 들었다.


- 몇 년 전 대영이가 사고로....



대영아... 내가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


잠시 어릴 때로 돌아가 대영이가 좋아하던 양지스낵코너에서 돈까스를 같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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