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치곱슬 Mar 14. 2024

9. 외톨이도 친구가 필요하다 [1/2]

학교 친구 편

새 학년 새 학기 주말을 보낸 월요일


1교시가 끝나자마자 친구들끼리 모여


서태지와 아이들이 토요일 출연한 'MBC 특종 TV연예' 얘기로 다들 난리다.

어제 방송도 아니고 엊그제 토요일 이슈인데도 뭔가 대단하긴 했나 보다


실은 나도 TV 보면서 세련되고 강렬한 인트로에 마음이 홀렸으니

[레전드 데뷔무대를 토요일 생방으로 본 일인!!]


남자애들은


- 야! 너 토요일에 그 춤 봤어?  

  이거[오른손] 이거[왼손을 가르며] 이렇게 하는 거 맞지?


방송 본 애들이 허공에 주먹질하며 '회오리춤'을 추는데

마치 태권도 처음 배우는 사람이 흐느적거리며 주먹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애들은


- 그래서 그 사람들이 태지오빠에게 뭐라고 얘기한 거야?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말이야


벌써 서태지는 여자들에게 '오빠'가 되었다.


- 몰라~ 그냥 오빠에게 좋은 감정은 아니었어,

  참나~ 지들이 뭘 안다고!!


멀찍이서 그들의 대화를 훔쳐 듣던 나는


'그치 그치~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  


하마터면 속말이 튀어나올뻔했다


패널로 나온 기성세대가 시답잖은 황당무계한 음악에 당황하고 있을 때 새로운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10대들은 그들의 현란한 랩과 댄스, 유니크한 패션에 열광했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와도 이런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물론 나도 새로운 학년이 되면 새로운 친구들과 다시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


- 하~ 새치곱슬 이 새끼 또 나랑 같은 반됐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도 날 지독히 놀리던 애들이 꼭 같은 반에 껴있어서

본인 서열을 굳히기 위한 도구로 날 써먹었다.


이때를 경계로 내 주위의 흐름이 전혀 친숙하지 않은 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친구들도 슬슬 나를 피하거나 같이 놀리는 낙인찍힌 악순환이 반복


그들의 얕잡아보는 말투와 선명한 적의는 나를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다.

[학습된 두려움의 정서는 괴롭힘 당했던 기억과 자극이 유지되는 한 지속되기에....]


요즘 학생들 '카톡지옥'에 못 이겨 피난 가듯 전학을 갔는데 거기까지 악의적인 소문이 퍼져 또 다른 왕따 당했다는 뉴스를 볼 때면 중학교 때 나의 모습과 감정이입이 되어 온몸이 부르르 떨리곤 한다.



나도 물론 친구들은 있었다.


- 뭐 해!!  공 넘어갔잖아~ 빨리 안 주어와?

- 아... [허둥지둥] 쫌만 기다려줘


손해를 보거나 좀 비굴하게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관계가 유지되는 찐따였지만...

 

나는 안전한[?] 상태를 보전받기 위해 입을 다물고 그들의 행위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하였더니

어느덧 나는 교실에서 전혀 존재감 없는 그런 놈이 되었다.

아니 차라리 보이지 않는 존재였으면 정말 행복했겠다.


하지만 나의 그런 바람과 달리 수업을 마친 10분의 쉬는 시간은 나에겐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다.


새치와 곱슬머리로 튀는 모양새를 장착한 나는 어디서든 눈에 띄어 그들의 먹잇감이 되었으니...





 

난 머리만 빼면 엄마를 닮아 얼굴이 작고 피부가 좋아 유난히 하얗게 보였다.


게다가 몸상태와 키도 적당했다.


하지만 이놈의 새치곱슬이 날 망쳐놓았다.


아무리 외모에 신경 써도 전혀 멋져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외모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해 버렸다.


'나는 못생겼다'를 받아들이고 열등감의 낭비를 스스로 차단했다.



이제 그쯤 되니 별말 아닌 말도 확대하고 오해해서 날 쏘는 화살로 인식됐다  


피해의식에 쩔어 자발적으로 과녁을 넓혀 빗나간 화살도 스스로 맞고 있다


삶을 망치고 있는 자신의 한 부분을 너무나도 미워해서

무모하게 내 몸과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있었다.



이런 나의 피해의식 부작용으로 애먼 가족에게 화풀이를 해댔다.


학교에서 기를 못 펴고 지내는 만큼 집에서는 '방구석 여포'가 되어 신경질적으로 가족들을 대했으니 아마 부모는 얘가 단순히 사춘기 시절이겠거니 생각하셨을 것 같다.



그리고 국민학생 때는 싸움과 도벽이 가장 큰 문젯거리였는데 [지난 회 5,6화 참조요망]


중학교에 들어가 싸움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멈춰지니 상대적으로 도벽이 더 심하게 되었다.  


두 가지 문제가 양립했을 때는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 사고 쳤는데 이젠 나에게 남은 건 도벽뿐이다.


황금색 제도 샤프, 수정 화이트, 필통 등 없어지면 좀 짜증날만 한 것들만 훔쳐서 소각장에 버리곤 했다.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는 돈이나 고가의 물건들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 치밀함은 필수다.


그렇게 나는 그들에게 복수라도 하는 듯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들의 물건을 훔치고 다녔다.



사람들 눈을 피하면서 훔칠만한 물건이 있는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바닥만 보고 걷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와~ 댕기동자다!!


MBC 화제의 드라마 '댕기동자'가 1년 선배였는데

연예인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우리들과 다르게

이제 사춘기가 된 여드름 투성이의 댕기동자는 항상 혼자 다니고 고개만 푹 숙인 채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아무리 드라마가 끝났다고 해도 당시 인기가 어마어마했을 텐데 저렇게 혼자 소심하게 다녔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때 뒤에서 그를 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TV에서는 엄청 귀여웠는데 실제로 보니 전혀 그렇지 않네~

- 그러게 여드름도 많고, 크니까 쫌 징그럽다~


이제야 조심스레 그때를 회상해 보니 그도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건 아닌지....


그래, 그러고 보니 이 친구도 생각이 난다.


동남아 계열 혼혈 친구가 있었는데 왕따인 나조차도 그와 친해지기 싫었다.



다른데 모르고, 모르니까 피하고, 피하다 만만해지면 구분짓고 차별하며 끝내는 배척 한다.



새치곱슬인 나 , 댕기동자 선배, 동남아 혼혈 친구
이렇게 다름을 배척하는 프로세스는 인간의 본질인가? 라는 씁쓸한 생각을 해본다...


[음... 지금 와서야 드는 생각은 어린 우리들 잘못이라기보단 다름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한참 부족했던 건 아니었을지...]



어떻게 보면 강제적으로 구석에 찌그러져 숨죽인 채 지냈지만 난 원래 조용한 사람이 아니다.

   

내 욕망의 배출구는 명절에 친척들을 만났을 때인데


그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였고 모두 다 곱슬머리이기 때문이다.


곱슬머리 세계관에서의 나는 밝고 장난도 잘 치고 항상 즐거웠다.


난 그들과 함께 뛰어놀 생각에 명절이 다가오면 늘 가슴이 설레었다.


아마 친척들은 이런 나의 이중적 생활을 절대 이해 못 하겠지...



부모님께서 형제들과 의가 좋아 그 자식들인 우리는 자주 왕래하며 평생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비슷한 성격, 신해철[NEXT]을 좋아하는 음악 성향, 오락실 게임, 그리고 야동도 이들과 처음...


참... 지금에서야 그들에게 정말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부에서 계속....



[cookie]


처음 NEXT 2집을 친척집에서 들었을 때 심장을 옥죄는 날카롭고 강렬한 사운드에 한동안 정신줄을 놓았던 기억이 있다.


평소 메탈 락은 사탄의 음악이라 전혀 나의 관심사가 아닌데 친척 집을 갈 때마다 이 음악이 틀어져있으니

나도 모르게 빠져버렸다.


집에 돌아와 며칠을 끙끙거리다 대중음악을 싫어하는 가족 몰래 앨범을 구매하였는데 당시 기독교에 심취해 있던 나는 앨범 재킷에 이집트 우상[?]인 '호로스의 눈' 처럼 생긴 것도 굉장히 두려워했다.

[디자이너가 신해철의 눈을 이미지화 한 것이라 해명]


그래서 앨범 사자마자 불길했던 재킷을 버리고 테이프 앞뒤 스티커도 제거해 죄의식을 감경시켰다.


또, 가사가 반 기독교적이어서 노래 한곡 듣고 회개하고 또 노래 듣고 회개를 벌벌 떨며 반복해 왔으니 ㅋㅋ


이런 쌩쇼를 감당할 만큼 넥스트가 너무 좋아 내 10대 시절은 신해철의 음악으로 채워졌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의 진가는 여행과 고전문학에 미쳤던 30대가 되어서야 빛을 발했는데


The Dreamer는  00여행을 다녀와서 000 00를 읽고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 는 00를 읽고 나서야 다시금 깊게 빠져들 수 있었다.


['00' 표시는 다 쓰고 다시 읽어보니 뭔가 오글거리게 잘난 척 재수없어 보여서 자체 블러처리 ㅠ]

                    


                    




                    












                     



이전 08화 8. 암사동 효정중앙교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