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10살쯤 옆집 아줌마를 통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며 당신을 괴롭히던 우울증상이 호전되었고
신앙을 키워온 엄마는 우리 가족을 열성적으로 전도했다.
얼마 후 우리 가족은 갑자기[?] 기독교 집안이 되었는데,
우리 집에서 엄마의 말은 곧 법이다.
집행자는 아버지이시고...
[3편 '우울증 엄마와 추앙하는 아버지' 참고요망]
그렇게 우리 가족은 암사동에 있는 '효정중앙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신앙의 정통과 금욕적 순결 유지를 표방하는 보수 장로회 교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 문화'를 터부시 하고 세상 즐거움은 땅의 것[세속]이므로 우리는 순결하게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신도들은 서로 도와가며 신앙을 권면하고
주일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을 본인 집에서 밥까지 먹여가며 돌봐주었다. [황영란 선생님...]
내가 소속된 중고등부 학생회는 선후배 간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여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노력하며 선배는 사랑을 후배는 존경을 보이는 참 이상적인 집단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중고등학생이었지만 당시 우리는 꽤 심각하고 진지했던 것 같다. ]
학교가 어두운 곳이라면 교회는 밝은 곳이다.
학교에서 따돌림받던 나에게 교회는 유일한 피난처였다.
엄마가 그러했듯 신앙생활이 자기혐오에 빠진 날 지탱해 주었고 스스로의 결정을 부정하며 내 삶의 모든 주도권을 신에게 내어 바쳤다.
나의 좌절과 욕망을 '초월자'에게 떠넘긴 채
더욱더 지독히 내세적 신앙에 경도되어 이제 내 구원은 교회에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와도 깊은 대화를 하지 않고 스스로 고립되어 오직 교회 예배와 기도에만 집중했다.
내 정체가 드러날까 무섭고 여기서도 놀림과 무시를 당하면 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진다.
반드시 나는 내 살길을 모색해야만 했다.
학생회 예배에는 '싱어롱'이란 찬양 시간이 있었는데
뇌성마비 시인인 송명희 님의 곡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됐다.
나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다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선배들은 신앙만 열심내고 교제에는 소극적인 나를 보며 매우 안타까워했다.
- 곱슬아~ 예배 마치고 우리 조별 모임 할 건데 같이 하자!
- 죄송해요... 가 볼 데가 있어서...
- 음 그래, 그럼 다음에는 꼭 같이 하는 거다? 형이 맛있는 것도 사줄게^^
예배가 끝나면 누가 내게 말을 붙일까 무서워 바로 집으로 도망치곤 했으니....
비록 몸이 교회를 떠나고 있지만 마음은 그대로 교회에 남아 서로 교제를 나누며 행복해하는 그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나 혼자만 외딴섬에 유리되어 고독을 감수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날 원하고 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진심으로 말이다.
또 다른 선배는 진심 어린 쓴소리를 하며 채근하기도..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권면해 준 선배들은 어두운 곳에 혼자 있지 말고 얼른 이쪽 세계로 건너오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이 모양 이 꼴로 어찌 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난 도저히 그들에게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밝음에서는 희미한 어둠도 잘 들키기에
스스로 내 어둠을 차일로 꽁꽁 둘러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 아마 이 차일을 평생 벗지 못하겠지
자기혐오의 고통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나에게 잔인하고 몰인정한 메시지를 보낸다.
그냥 널 숨기고 아무것도 하지 마!!
괜히 한 발짝이라도 나왔다간 날 위로하고 권면하던 목소리가 날 놀리고 비웃는 목소리로 바뀔 테니까...
그렇게 나를 숨겨주던 그 차일은 내게 겨우 비집고 들어오려던 밝은 빛도 야속하게 튕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