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치곱슬 Feb 08. 2024

7. 90's 중학교 따돌림의 기억

삐쩍 마른 새치곱슬 SAGA

90년 초반 강동구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송파구 중학교로 배정되었다.


국민학교 바로 옆에 성내중학교가 버젓이 있는데


대체 왜 송파구로 배정되었는지, 나는 이 사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한 친구들은 거의 다 성내중이고 나처럼 몇몇 저주받은 애들만 버스 타고 학교 다니게 생겼다.



그런데 이 중학교...  


등교 길이 참으로 가관이다...


이른 아침 거리에 낯 뜨거운 유흥 전단지들이 널브러져 있고 취객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사물과 깨진 유리병을 피하느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학교 코 앞에 유흥 환락시절이 활개치고 있다는 게 믿어지는가?


심지어 학교 초입에 '미성년자 출입불가' 현수막이 너무나 당연하게[?] 걸려 있었는데 이 골목을 지나야 학교에 갈 수 있는 우리는 진심 어이없어 했다.


학교 꼬라지도 싫고 버스 타고 힘들게 가는 것도 정말 싫었지만 내가 중학교를 증오게 된 것은 내 외형이 이상하게 변해갔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후...


내 머리는 푸석푸석한 곱슬머리로 변해갔고,


심지어 새치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해 내 머리는 통제 불가능한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아버지의 새치, 곱슬머리 유전자가 고스란히 나에게 발현된 것이다.


마마로 인한 곰보는 물려받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하지만 사춘기인 나에겐 두 가지 재앙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웠다.



이런 생김새를 장착한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꽤 심각한 따돌림을 받았다.  


처음에는 곱슬머리를 놀리더니 이젠 꼬불꼬불 엉켜있는 내 머리가 불결해 보였나 보다.



- 야! 너에게서 이상한 냄새까지 나~ 



점차 그들은 내 머리 자체에서 냄새가 난다고 말하며 날 피하더라...


하지만 내가 미친 듯이 병적으로 목욕하고 관리를 해도 결국 나는 냄새나는 곱슬머리로 낙인찍혔다.


그들은 내 앞에서 항상 엄지와 검지로 코를 집으며 지나갔고


심지어 나와 짝꿍이 됐다며 대놓고 운 여자애도 있었으니...


그러다 가끔 날 부를 일이 생기면 마치 병균 옮기는 바이러스 숙주를 건드리는 것처럼 긴 자나 막대기 같은 것으로 꾹꾹 눌러 나의 인간성을 짓밟고 무너뜨렸다.



또, 국민학교 때는 감히[?] 없던 요상한 별명까지 생겼다.


내가 그만큼 만만해졌다는 뜻이다.  


힘이 강하거나 공부 잘하는 애들은 별명이 없다.


전자와 후자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나는 새치곱슬로 불리게 되었다.




별명이 생기고 얼마 후 나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맞아봤다.   


삼손은 머리카락이 잘려 힘을 잃었고 나는 머리가 자라며 힘을 잃었나 보다.


서로가 고만고만한 국민학교 때는 항상 상대를 먼저 때려서 울리니까 싸움이 항상 싱겁게 끝났는데 이제 나에겐 주먹을 뻗을 수 있는 기세가 사라졌다.


시비를 거는 상대에게 주먹이 나가는 응전應戰도 실은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했다.


객기조차 퇴조하여 더 이상 선빵이 나가지 않으니 이제는 처맞는 것이다.  



'이렇게 주먹으로 맞는다는 것은 굉장히 아픈 거였구나'



국민학교 때 함부로 주먹을 놀렸던 것에 대한 벌을 맨몸으로 때우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일시불로 말이다....


한참 동안 후회와 고통이 뒤엉켜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2000년대 TV에서는 양동근이 곱슬머리에 빗 꼽고 또 다른 뭔가도 집어넣어 웃음을 주려할 때 나만 웃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철수세미 같은 내 곱슬머리에 지우개, 연필 따위를 꽂으려고 음흉한 미소를 띠며 다가왔던 기억 때문이다


내 흰머리를 강제로 뽑아준다며 다가오는 놈,


또, 내 곱슬머리를 한올 뽑아 자기 음모와 비교하며

반 애들에게 '야! 이 새끼 머리털이랑 내 ** 털 중 어떤 게 더 꼬불거리는 거 같냐? ' 으스대던 놈...  


그때 이런 상황이 현재 sns 조리돌림 당하는 영상 같은 것으로 찍혔다면 아마 나는 생포된 살쾡이 마냥 그 자리에 얼어붙어 눈알만 굴렸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작은 김형사가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이 모든 원흉이 다 부모 때문이라고 투사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느 정도 내 유전자를 원망했지만 투사는 없었다.


이건 정말 나를 위해서라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진짜.....


투사라는 방어기제가 한번 발동하면 그 효과는 너무 대단해서 내 모든 안 좋은 상황을 다 남 탓이라고 전가하는 피동적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집에서는 학교에서의 내 상태를 부모에게 숨기고   


그냥 그저 그런 보통의 중학생으로 살아가는 척했다.


아니,


이런 나의 열등감을 부모에게라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cookie]


최근 어떤 모임에서 사춘기 때는 어땠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음... 난 사춘기 없었는데?

그냥 있는 듯, 없는 듯한 그저 그런 학생이었어요.'


단지 조용하고 엇나가지 않았단 이유로 사춘기가 없었다 생각한 걸까?

잊은 척 살아온 건지 아님 진짜 기억에서 휘발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글쓰기 위해 며칠 동안 중학교 때를 회상하니

 참 많이 외로웠었네.....  
















                    

이전 06화 6. 동네 바보 김형사와 작은 도둑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