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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새치곱슬
Feb 05. 2024
6. 동네 바보 김형사와 작은 도둑놈
삐쩍 마른 새치곱슬 SAGA
국민학교 고학년 때 남의 물건이나 돈을 훔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 봐도 꽤 심한 도벽이었다.
반 친구들 지우개나 샤프 훔치는 것을 시작으로
슈퍼에서 몰래 껌이나 초콜릿을 옷 속에 품고 나왔다.
그것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훔칠 때 쾌감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힌다 했던가?
평소 내 행동을 수상히 여긴 슈퍼주인이 우악스럽게 내 몸속을 뒤지자 '아몬드 초코볼'이 아무런 저항 없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 순간... 바닥 대리석처럼 하얗게 질린 내 뺨에 불꽃이 튀어오르고
양 볼이 원숭이 엉덩이가 될 정도로 맞았다.
하지만 난 절도의 대한 반성은커녕 다음 날부터 그 슈퍼는 피해 다니고 다른 슈퍼에서 훔치기 시작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이젠
친구들과 자전거도 훔치고 다녔다.
그렇게 타고 다니다 버리고 또 자전거가 필요할 때 아무런 죄책감 없이 훔쳐버렸다....
심지어 나는 할머니 쌈짓돈에 손대기까지 했었는데
몰래 할머니 방에 들어가 서랍을 열어 처음에는 동전,
그다음엔 간이 커져 지폐까지 훔쳤다.
할머니는 나이가 있으셔서 돈계산이 느릴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훔친 돈으로 전자 오락실에서 탕진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부터 지갑은 사라지고 100원짜리 3개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그다음 날도 여전히 할머니 지갑은 없었다.
'아씨! 또 없네~' 투덜거리며 동전이라도 가져가려 하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오셨다.
나는 깜짝 놀라 훔치던 손을 뒤로 숨기고 할머니 눈을 피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나지막이 말하셨다.
아빠에게 말 안 할 테니
천 원짜리 말고 그렇게 올려둔 동전만 가져가라고....
순간 나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나 안 훔쳤다고!!'
할머니에게 싸가지 없게 쏘아붙이고는
문을 쾅 닫고 도망쳐버렸다.
할머니에게 걸린 것보다 더 이상 돈을 훔치지 못함에 더 화가 났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 안 하신 것 같았다.
이제껏 도벽으로 아버지에게 야단맞은 기억이 없었으니까.
그 당시 난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을 제일 두려워했는데
할머니는 손자를 정말 사랑하셨다면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씀하셨어야 했다....
이렇게 나는 훔치는 것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채 국민학교를 마쳤다.
80년대에는 각 동네마다 바보들이 꼭 한 명씩 있었는데
암사동에는 김형사라 불리는 20대 초반[?] 남자가 존재했다.
[혹시나 해서 구글링을 해보니 같은 경험을 한 우리 동네 사람들이 꽤 있음]
그는 빡빡이 머리에 사시사철 검은 가죽잠바 입고 다리가 조금 불편한지 절뚝거리며 다녔다.
그의 행색이 마치 도둑 잡는 형사의 모습 같다 하여 김형사라 불리게 되었다.
[
진짜 김씨인지는 아무도 모름...
]
하지만 어느 동네 건 바보들에게는 입으로 전해진 전설 같은 풍문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어느 어두운 밤 김형사는 범인을 잡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바보가 되었다는데
범인 쫓던 기억만은 또렷해서 가죽잠바 입고 그때 그 범인을 아직도 쫓고 있다고...
그래서였을까 그의 불안한 걸음은 무언가를 찾는 듯 늘 분주해 보이기까지 했다.
[왜 동네 바보들은 꼭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걸까? feat. 감나무]
'바보형사다!!!!!!'
어디선가 그가 나타나 모습을 보일때 누구 한 명이 저~ 멀리서 신호를 보내면
그 외침을 들은 동네 아이들은 놀던 거 다 제쳐두고 그를 가까이 보기 위해 벌때같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그는 순식간에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놀림을 당했는데
머리가 좀 큰 애들은 과감히 그의 옷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발로 툭툭~ 건드리기도 했다.
곤궁해진 그는 이 상황을 피하려 하지만 절뚝거리는 다리로는 얼마 못 가
또 다른 아이들에게 잡히곤 했다.
가끔 김형사가 뻥튀기나 어떤 조잡한 물건들을 팔러 나올 때가 있다.
그러면 동네 어른들은 안쓰러운 마음에 하나씩 사주었는데
짓궂은 아이들에게는 이마저도 놀이의 대상이다.
뻥튀기를 한 움큼 집어가는 놈,
물건 판 동전이 담긴 깡통에 손대는 놈들이 있었다.
진심으로 부끄럽지만 나도 그의 물건마저 훔친 적이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나이 30대 후반에 해태놀이터 일월 한의원을 지나고 있는데
저 멀리서 고개를 약간 숙이고 오른쪽 어깨를 내밀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남자가 보인다.
와... 김형사다....
머리만 약간 희어졌을 뿐 얼굴은 전혀 늙어 보이지가 않았다.
어디서 들은 얘기인데 동네 바보들은 시간이 흘러도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 했다.
과연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나이 먹은 건 그 자리에 멈춰서 얼떨떨하게 김형사를 쳐다보는 나뿐이고
그는 혼자만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그렇게 난 깜짝 놀라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는 날 살짝 쳐다보곤 너무 자연스럽게 특유의 걸음걸이로 쓱~ 지나갔다.
이미 이런 눈빛을 여러 번 받아본 사람처럼 내 눈빛을 살짝 튕기는 게 절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그랬겠지...
아마 그는 나처럼 깜짝 놀라는 사람을 여럿 상대 했을 것이다
암사동에 오래 산 사람이라면 거의 변하지 않은 김형사를 보고 흠칫 놀라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냐고~
하지만 이제 김형사는 동네 사람들의 얼떨떨한 시선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의 모든 행동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럼 이제 그는 바보가 아닌 걸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게 스쳐 지나친 그는 걸음걸이만 어색할 뿐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일단 그의 눈빛이 살아있어 보였다..
예전 그의 눈은 분명 바보 눈빛이었다.
그건 확실하다.
만약 당신이 바보라고 놀림을 당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동네 사람들에게 주눅 든 바보 눈빛을 누구나, 바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뭇사람들은 항상 쉽게
바보를 찾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김형사는 더 이상 바보 눈빛 따위를 장착하지 않았다.
혹시 예전에 그가 바보였던 시절은
조금 다른 그를 보고
'바보 바보 넌 바보야, 우리가 널 그렇게 만들거니까!!' 라는 온 동네 사람들의 집단 최면으로
잠시 바보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는 점점 바보 눈빛이 되어 쉽게 먹잇감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부를 사람이 없다.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는 이제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세상 사람 중 집단 린치에 무릎 꿇지 않을 사람은 많지 않다.
나와 모습이, 생각이, 심지어 말투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다구리를 당하는 것이다.
그렇게 무릎 꿇린 사람은 점점 바보가 되어
자신이 바보가 아니었던 시절을 시나브로 잊을 것이다.
그리고 하.....
이제... 다음 바보는 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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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시절 환상의 콤비로 자전거를 훔치고 다닌 아삼륙 중에 훗날 영화배우가 된 친구 있더라.
양동근 주연 '와일드 카드'란 영화에 악당으로 출연해서 진짜 깜짝 놀랐다는.....
영화 보는 내내 '어~어~ 이 녀석 혹시...?' 혼잣말하다가
엔딩 크레딧에서 이름보고 국민학교 졸업앨범까지 뒤져서 알아봄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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