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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치곱슬 Feb 01. 2024

5. 비겁한 국민학교 싸움꾼

그때 그 시절 무서웠던 선생님...

암사동 주택으로 이사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88 올림픽 그해 가을쯤 성내동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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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사동에서만 살다가 친구 하나 없는 낯선 동네로 이사 가는 게 정말 싫었다.


형은 학교를 옮기지 않고 암사동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겠다고 했다.


나도 그러겠다고 때를 써봤지만 결국 형만 허락하고 내 주장은 씨알도 안 먹혔다.



그렇게 성내동 국민학교로 전학 가고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싸움이 붙었다.


어떤 이유에서 싸우게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암튼 이 녀석이 반에서 싸움 3위란다.


수컷들은 다툼이 있을 때 이놈이 상대할만한 놈인지 먼저 혀로 간을 보는 경우가 있다.


국민학교 애들 싸움이라고 별반 다른 것은 아니었으니,



- 이 미친 전학생 새끼가~  뒤질라고 환장했냐?

- ..........



싸우기 전 시비가 생기면 열에 아홉은 꼭 욕을 뱉음으로써 이 다툼의 우위를 점하려고 했다.


나는 싸움에서 이 방식이 늘 불만이었다.


싸움을 할 거면 물리적으로 싸워야지  항상 말싸움 후에 시작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상대가 주절주절 거릴 때 주먹을 날리곤 했다. 



일명 '선빵' 친다고 하는데,  



방심한 상대는 그 선빵에 백발백중 얻어터진다.


그러다 운 좋게[?] 코피라도 터져주면 싱겁게 싸움이 끝나곤 했다.


우리 때는 울거나 코피가 나면 지는 거였으니 말이다.



어느 날 나이가 들어 곰 다큐를 봤는데 얘네들도 싸우기 전에 서로 아가리를 벌리며 신경전 하더라.


마치 입 벌려 입냄새로 공격하기 대회 같은 느낌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하더니 갑자기 싱겁게 서로 뒤를 돌아 각자 갈 길을 가는 것이었다.


해설자는 곰들이 싸움 벌어지기 전 최대한 싸움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전술이라고 설명하더라.


그러고 보니 개들도 낯선 이를 만나면 바로 물지 않고 으르렁 거리네~


물기 전에 어서 꺼지라고.



어떻게 보면 싸움 전 욕배틀도 서로 싸움을 미루거나 피하기 위한 유보적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욕으로 싸움이 끝나버리면 다치지도 않고 서로의 자존심은 챙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지구상 생태계는 자기 보전을 위해서 그 종족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싸움을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DNA에 새겨진 각축의 룰을 무시하고


얍삽한 수법으로 마치 싸움을 잘하게 보이는 그런 아이였다  



싸움을 잘할수록 친구들이 늘어갔다.


어른에게는 사근사근 잘하고 뒤로는 동급생들과 비겁한 알력 다툼으로 내 위치를 쟁취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어른 그 누구도, 심지어 내 부모까지도 내가 그런 짓을 하고 다닐 거라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학교 교사는 주로 중년여성이었는데 이 시절 선생 특히 여교사는 까칠하기가 그지없었다.


당시 교실바닥은 나무재질이라서 물왁스를 직접 구입해 책상을 앞으로 쭉 밀어 밀착시키고 아이들이 일렬로 쪼그려 앉아 닦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정신없이 닦다 보면 틈이 벌어진 나무 바닥에 손이 긁혀 가시가 박히기도 했다.


먼지 날리는 걸 유난히 싫어했던 교사는 신경질적으로 청소를 시켰고


물왁스 안 가져온 날에는 30cm 자로 손바닥을 때렸다.



하나! 둘! 셋!   감사합니다.



우리는 한대씩 맞을 때마다 자기 입으로 맞은 숫자를 뱉고 마지막에는 꼭 고개 숙여 인사까지 해야만 했다.


만약 때린 교사에게 인사를 안 했을 경우 다시 손 내밀어야 했으니....


그렇게 맞은 아이는 아픈 감정까지도 교사에게 헌납했다.


특히 육성회비, 크리스마스씰 구입 등 돈을 내야  


돈을 못 내는 친구가 있으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6학년 졸업앨범을 구입해야 하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자꾸 앨범비를 가져오지 않으니까 교사가 어찌나 닦달을 하던지.


 

다음날도 교사는 그 친구를 또 일으켜 세우면서 앨범비 재촉을 해대니


친구는 결국 눈물을 보이며



- 엄마가 그거 사지 말고 누나앨범 같이 보래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더 크게 울어버렸다.


교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잠시 보이더니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 아무리 너희 부모가 못 배웠어도 그렇지 앨범을 같이 보라는 게 말이나 되니?

  당장 엄마 학교에 오라고 해. 


당시 '엄마 학교에 오시라 그래'  엄마 호출은 교사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공포였다.


차라리 손바닥 10대 맞는 게 낫지.



 시절 내가 보았던 대부분의 교사는


공부 잘하는 애와 못하는 애


 잘 사는 애와  못 사는 애를  구분 짓고


전자에겐 미소를 후자에겐 냉담을 보이며


'그라데이션' 하게 표정 변화를 일으켰다




그렇게 싸움질로 학교 생활을 이어가다 종국에는 부반장이었던 친구의 얼굴을 때려 안경이 깨지고 말았다.



- 너 엄마 학교 오라고 말할래? 아님 부반장 집에 가서 안경값 물어주고 올래?



교사는 잦바듬하게 앉아 발끝으로 슬리퍼를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로 나에게 양자택일을 명했다.


당연히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나았다.


역시 교사는 애들이 뭘 두려워하는지 귀신같이 안다.



집으로 돌아가 그동안 모았던 빨간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라 동전을 수렴하여 헤아려보았다.


안경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이 동전으로 해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


농협에 가서 동전을 만원 짜리로 바꾸어 부반장 집에 찾아갔다.


올림픽 공원 인근에 있는 미주아파트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심란한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엘베 타고 올라가는데


오랜만에 엘베 타서인 건지 아님 벌 받으러 가는 길이라 그런 건지


8층에 도착하기 전인데도 현기증이 살짝 났다



드디어 오고 싶지 않던 8층에 도착했다.


긴 한숨과 함께 초인종을 누르니 홈 드레스를 입은 예쁜 아줌마가 문 열어주었고 그렇게 열린 문틈 사이로 쓱 훔쳐본 집안은 너무 화려해 보였다.


학급 비품이나 장학사가 왔을 때 미화 할 화분을 다 준비하는 부반장이었으니


평소 학생 싸움질에 무관심했던 교사가 이렇게 재빨리 수습에 나선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죄송합니다...   


난 고개 푹 숙이고 돈 만원 쥔 손을 벌벌 떨며 내밀었다



아주머니께서 날 처음 맞닥뜨렸을 땐 무척 당황하셨지만 내 얘기 듣고 '아들 안경 깬 그 녀석이구나' 딱 아시는 느낌


- 아줌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우리 민수랑 집에서 놀다 갈래?


그때 자기 방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고개 떨군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부반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얼굴이 벌게질 정도록 창피했지만


아줌마가 돈을 쥔 내 손을 잡고 집안으로 이끌어주셨다.



와~ 무슨 거실에 크리스털 보석 같은 게 주렁주렁 달려있네~


나중에서야 그게 '샹들리에'라는 것을 알았지...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부반장과 일제 닌텐도 게임을 하고 놀다 아줌마 만들어준 맛있는 음식을 델몬트 주스와 함께 먹었다.



이렇게 마무리가 되어서 참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다음날 교사가 날 불러 책임의 대한 결과를 추궁했다



- 너 부반장 안경값 물어줬어?

- 네 어제 부반장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놀고 왔어요.

- 하~ 참!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한 교사는 본인 말에 토를 달고 똑바로 답하지 않은 것에만 답답해하며


- 그거 말고 돈 주고 왔냐고!!

- 돈을 내밀었는데 아줌마가 안 받으셨는데요...


- 그으래?


교사는 서슬 퍼런 뿔테안경을 습관적으로 추켜올리고


- 너 내가 확인해 봐서 거짓말이면 제대로 혼날 줄 알아


여전히 찜찜한 표정으로 내 말을 못 믿고 날 째려보는 중년의 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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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 요즘에도 학교 선생님이 때리는 경우가 있어?

- 왜 때려?  우리 선생님 되게 착해~


자기의 교사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 눈빛이다



'체벌 없는 학교 수업이라니....'


 

파쇼적 80년대 국민학교를 다녔던 나는 도저히 상상이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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