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치곱슬 Jan 29. 2024

4. 누구에게나 인기 만점인 까불이

그때 그 시절 미용실과 이발소 그리고 대통령 선거

나는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세상에 잘 적응했다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나와 친구들의 행동반경은 늘어가고

그동안 금지되었던 지역에도 살짝 발을 담그며 나의 유년시절은 더욱 풍성해졌다.


유난히 극성맞게 활발했던 나는 학교에서 까불이로 통했다.


공부는 못했지만 같은 반 모든 친구들과 어울리며 하루하루가 축제 같은 날이었다.


성적순으로 뽑히는 반장, 부반장은 못돼도

손가락 투표로 얻어지는 마치 인기상 같은 줄반장은 항상 내 차지였으니 말이다.


내가 3학년 때 사우디에서 돈을 벌어오신 아버지,

그걸 살뜰히 모아 오신 어머니는 2.5층 주택을 구입해 이사했다


우리 집은 맨 구석에 있었지만 대문 초인종을 누르면 집안 인터폰으로 연결이 되어 무전기처럼 말도 나눌 수 있고 무려 원격으로 문까지 열어줄 수 있는 최첨단[?] 시스템이 갖춰진 집이었다.


초인종 소리는 한가로운 오후 카나리아가 내는 '삐이이~ 삐삐삐' 소리를 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일주일간 형과 대문-인터폰을 오가며 놀았다.


이사를 했으니 기존 학교가 멀어져 전학을 가기 위해 엄마가 학교에 왔다.


평소 화장 안 하시던 엄마가 쌔빨간 립스틱을 칠하고 뭔가 어색하게 화장하고 오셨는데

더욱 심하게 꼬불거리는 머리와 뻘건 입술이 굉장히 언발란스해 보였다.


실은 어제 엄마는 학교에 오기 위해 미용실까지 다녀오는 사전 의식을 경건하게 치렀다.

그런데 미용실을 다녀온 엄마가 머리에 요상한 수건을 덮어쓰고 있네??


월간조선 : 아낙네의 동네 사랑방, 유진 미용실


- 엄마 머리에 그거 뭐야?  

- 응~ 엄마 예뻐지려고 파마하고 왔지



저렇게 수건만 뒤집어쓰고 있으면 파마라는 게 완성되는 건가? 


나는 이발소만 다녀서 당최 파마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이발소는 뭔가 '간질간질한 긴장'이 깃든 곳이었는데     


당시 이발소에는 어린이용 의자가 따로 없어서 위에 사진처럼 나무판자를 의자에 올리고 키를 맞췄다.


그렇게 딱딱한 나무에 걸터앉으면 아저씨가 머리 깎기 전 부드러운 솔로 정체 모를 흰 가루를 머리 테두리에 바른다.


부드러운 솔이 귀와 목덜미에 자연스레 닿을 때면 그 간질간질함에 움찔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아저씨의 호통이 시작된다.


- 어허~ 움직이지 마라! 그러다 귀 잘린다.

  이 가위가 얼마나 잘 드는 줄 아나? 

  니 여물지 않은 풋고추도 한방에 싹둑!!  알았제?


내가 갈 때마다 이발소 아저씨는 음담패설을 하며 겁주고 만족했는지 씩 웃곤 했다.


아... 하필 오늘따라 이발가위가 형광등 빛을 받아 유난히 더 날카로워 보이는 걸까 ㄷㄷㄷ


특히 나는 면도할 때 그 '쓱싹' 거리는 가려움을 참지 못했는데 다행히 보조 아줌마가 내 머리를 두 손으로 꽉 잡아주셨다.


이제 마무리는 머리 감기다.


항상 머리는 아줌마가 감겨주셨는데 이 또한 간질 거렸지만 굉장히 기분 좋은 극락의 간질거림이었다. 


참... 아줌마 손가락 놀림이 예술의 경지였는데 말이지. 


이제 화분 물조리개로 머리를 헹구면 이발 끝이다.  

이발비 내고 아줌마가 주는 요구르트까지 쪽 빨고 나오면 그제야 모든 긴장이 쑥 풀리더라고~


 

- 으잉?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  

  엄마 머리 마무리하고 올게



드디어 미용실에 다녀온 엄마!


그렇게 인고의 시간이 지나 수건을 벗어던지면


허물을 벗은 나비처럼 더 예뻐질 줄 알았는데


엄마는 영락없는 시골 할머니로 변해 있었다.


엄마 머리가 배배 꼬인 검은색 꽈배기 30개를 얹은 것같이 보였달까.  


나는 좀 창피했다.


엄마나 할머니는 왜 꼬불거리기만 하면 치장했다 생각하는 걸까?



이런 치장으로 학교에 오신 엄마의 표정은 굉장히 초조해 보였다.


아~ 이때는 왜 애나 부모나 교사 앞에만 서면 오금이 절었는지....


당시 교사의 권위, 기세는 하늘을 찌르듯 높았고 불려 온 부모는 죄진 사람 마냥 주눅 들어있었다.


하지만 이 날만은 달랐다. 


교사의 이 한마디로 엄마는 더 이상 자식 가진 죄인이 아니었다. 



"우리 곱슬이 공부도 잘하고 얼마나 착한 어린이인데 이렇게 전학 가서 정말 아쉬워요."



여교사의 칭찬으로 그날 우리 엄마는 날았다..


생전 비행기를 타보지 못했지만 엄마 얼굴을 보니 진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애가 평소에 공부도 못하고 까불기만 한 것 같아 학교에서 미움받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 했는데 엄마는 집에 가는 내내 환하게 웃으며 칭찬을 해 주었다.


나는 '에이~ 그게 뭘~' 이라며 멋쩍어했지만 엄마가 오랜만에 웃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그 이후 상장 하나 못 받은 나에게 그 말은 교사에게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칭찬이었다




나는 13대 대통령 선거 해에 전학을 갔다.


전학 간 학교에서는 대통령 선거로 말들이 많았다.


- 김영삼이가 될 거라는데~

- 아니지, 김대중이가 왓따지.  

- 니들 김종필이 무시하냐?


또, 어떤 놈은 구석에서 누군갈 흉내도 낸다.  


- 나는 보~통 사람입니더!


[지금 생각하니 신기하네, 이제 겨우 국민학교 3학년들이 대세를 논하다니....]


여기저기서 '김영삼이, 김대중이' 라고 계속 들먹이니까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책상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 야야~~  김대중이 니들 친구냐? 싸가지 없게 대중이 대중이 해 쌓고 말이야!! "



내 한마디 말로 시선이 모이고 정확히 3초 정적이 흐르더니...

까르륵~ 웃는 소리가 난다.


선생님도 풋~! 하고 웃는 거 봤다.


뭐야? 겨우 이런 걸로 웃냐?  



난 아버지가 평소 하던 말을 그대로 했을 뿐인데 반 친구들은 내 말에 자지러지게 웃고 있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아이들을 웃기게 해 줄 재미난 것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 숭그리당당은 한물갔고 이제 담다디 춤이나 연습해야 하나~ "



그렇게 난 전학 가고 며칠 만에 웃기는 놈이 되어 반 친구들과 쌍쌍바를 나눠먹을 정도로 사이가 돈독해졌다.


하지만 잘 나가던 '3김'은 헛발차고 결국 '보통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아버지가 불같이 화내셨던 기억이 있다.


뭐~ 나와는 상관없는 어른들의 사정이라 별 관심은 없었지만.



이렇게 집에서나 학교에서 밝은 면을 뒤로하고 


나는 싸움질과 도벽을 주체하지 못한 어두운 소년이기도 하였다....



[cookie] 


작년 추석 정말 오랜만에 엄마와 얘기 중


- 엄마~ 그때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내내 나 계속 칭찬해 주면서 등 토닥해준거 기억나? 

- 무슨 어릴 때 기억이 그렇게 생생하니? 더 해봐라~

   엄마 아들 얘기 더 듣고 싶어. 


그렇게 엄마와 추억을 더듬으려 하는데


"흠흠... 갑자기 생각나는데 나도 옛날에 말이야~ "


방에 누워계시던 아버지 등장.

안에서 엄마와 내 얘기를 다 듣고 계셨다 ㄷㄷㄷ

  

"우씨~ 나도 할 말 많다고!!"


뒤늦게 본가에 도착한 형까지...

내 글쓰기로 인해 조용하던 우리 집에 대화의 꽃이 피고 있다.

                    





                    


                    





이전 03화 3. 우울증 엄마와 추앙하는 아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