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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치곱슬 Jan 25. 2024

3. 우울증 엄마와 추앙하는 아버지

아버지가 사우디에 가기 전 어떤 모임의 후원으로 우리 가족은 세모 유람선을 타고 최근 완공된 63 빌딩에 갈 기회가 생겼다.


우와~ 빌딩이 무려 63층이라니!!  


엘리베이터를 탔음에도 한참을 올라가더라 

[기압차이로 귀가 먹먹해졌을때 침을 삼켜 뻥 뚫은 경험은 정말이지 너무 신기했음]


기념품으로 63빌딩 저금통도 사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돼지저금통과 달리 바닥면에 뚜껑이 장착되어 있어 저금을 아무리 해도 돈이 모이지 않던 저금통이었지 아마? ㅎㅎ


재미있고 애틋한 시간은 금방 흘러


아버지가 사우디에 가시고 엄마는 꽤 심한 우울증을 겪으셨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우리 엄마는 태훈이 엄마와 다르게 잘 웃지 않았다.


아버지와 같이 살 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 기억하는 엄마와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선~

엄마는 엄마라 불러도 아무 부담 없고 오히려 친근하기까지 한데

아빠는 이 나이에 아빠라 부르기엔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든다.


된소리가 있어서 그런지 아빠라 부르기엔 영 버릇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내겐 엄마는 엄마고 아버지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굉장히 엄하셨지만 엄마에게는 다정다감을 넘어 추앙까지 하시던 분이시다.


일생 동안 고집 쌘 엄마를 거의 떠받들고 사셨다.


우리 형제들에게 살갑지 않은 아버지가 엄마에게는 그렇게 스윗한 사람이라니...


그때 한창 TV에 나오는 외화 '두 얼굴의 사나이'가 바로 우리 아버지이다.



하지만 엄마의 말에 한 번도 토 달지 않고 순종하는 아버지 모습이 안타까워 보일 때가 종종 있었다.


평소에는 가부장적이고 한 고집하시던 분이

엄마 앞에서 늘 순한 양이 되는데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난 '결혼해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쓸데없는 다짐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모습과 순종하는 모습 사이에서 우리 형제는 늘 혼란스러웠다.


우리에게는 정말 무서운 분이셨으니까.....


이렇게 아버지는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아버지는 외할머니의 적극적인 중매로 엄마와 결혼하셨단다.


그런데 엄마는 아버지가 너무 못생겨서 결혼하기 싫다고 했다


아버지의 곱슬머리와 곰보자국이 딱 보기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


그리고 또 한 가지,


부양해야 할 가족이 너무 많다는 것.



아무리 차남이라고는 했지만 아직 결혼 안 한 동생들이 줄줄이라 고생길이 훤히 보였다고.


하지만 아버지의 예의 바르고 성실함을 보신 외할머니의


'앨굴이 밥 맥여주는 거 아닝께' 라는 훈계를 바로 받아들이고 결혼을 결심했다



얼마 후 결혼하고 보니 이미 결혼했다던 장남은 결혼을 못했고 한량이라는 사실에 한번, 

이제부터 온갖 집안 대소사는 내 몫이라는 현실에 엄마는 두 번을 울었다고...


그렇게 상경한 아버지 동생들과 한집에서 살며 하나씩 결혼시키고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단다


몇 년이 흘러 형들?을 임신하게 되었는데 무려 쌍둥이였다.

[나는 이 사실을 15년 전 이모에게 우연히 들음]


하지만 쌍둥이 중 한 아이는 분만 도중 잘못되어 제왕절개로 시도하다 사산되었다고 했다.


축복된 한날 한시에 세 명이 함께 울었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 엄마의 마음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었을까?


두 아이를 양팔에 끼고 안아보는 상상을 수천번 했었으리라.



설상가상으로 보험도 안되어 큰돈을 지출하게 되었는데.


아기를 어떻게든 살리려 대형병원에서 시키는 것 다 해보니 그 비용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아이 잃은 슬픔보다 지금 당장 내야 하는 큰돈 빌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자신이 너무 싫었단다.


그렇게 엄마는 산후 우울증에 걸리셨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의 모습은 늘 마르고 메말라 보였는데

엄마의 처녀, 신혼 때 사진에는 보기 좋게 살집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다행히 또 다른 아들을 낳았고 잘 자라주는 아들과 내 편이 되어주는 남편

그리고 아파트까지 장만해서 이제는 행복할 일만 생겼다 했는데 아버지가 사우디에 가게 되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아버지가 언제 사우디에 가셨는지 기억이 없다.  


어느 순간 우리 가족은 할머니, 엄마, 형만 존재했고


정기적으로 아버지가 보내준 아랍 홀로그램 엽서만이 '아~ 나도 아빠가 계시지' 상기할 뿐이었다.


이 두꺼운 엽서는 아티스 운동화에 붙어있는 홀로그램보다 월등하게 컸는데


왼쪽으로 기울면 오아시스에서 낙타가 물 마시는 낮이 되고

오른쪽으로 기울면 별이 보이면서 밤으로 변하는 신통기묘한 엽서였다.


선물상자에는 엽서와 함께 아랍 과자 같은 것도 들어있었는데 우리 형제는 신났고 엄마는 더 외로워지셨다.



이 시기 엄마는 뭔가 집중할 것이 필요했던지 각종 부업을 하기 시작했다.


구슬꿰기, 귀걸이 붙이기 같은 자잘한 것을 집안에 펼쳐놓고 하루종일 그것만 하셨다.


우리들 밥은 할머니가 거의 해주셨던 것 같다.


엄마가 살갑지 않은 며느리라


아마 고부 갈등 같은 것은 피할 수 없었으리라


난 그 어린 나이에도 엄마와 할머니의 미묘한 신경전을 느낄 수 있었다.


아빠가 있을 때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긴장감이었으니....





그런 엄마에게는 고통이었을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사우디에서 돌아오셨다.


가실 때에 기억은 없지만 돌아오셨을 때는 확실히 기억이 난다.


가족 다 같이 김포공항으로 마중 나갔기 때문이다.


저 멀리 어색하게 귀국 단체 양복을 입고


얼굴이 다 타서 검게 그을린 남자가 보이는데


우리 아버지가 맞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보다 못한 엄마가 '아빠에게 인사해야지~'


날 귀국 환영단상으로 툭 밀어 넣었다


난 쭈뼛쭈뼛 아버지로 추정되는 남자 앞으로 가 손에 들고 있던 풍선껌을 어색하게 내밀자 아버지는 날 번쩍 안으시며 내 볼을 맞대고 비비셨다.


그때 까칠까칠했던 수염 감촉이 지금까지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귀국환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평소대로 엄마와 함께 자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엄청 야단을 치시며 형과 나를 작은방으로 밀어 넣는 게 아닌가~


평소에는 안방에 엄마 형 나, 작은방에 할머니 이렇게 자는데 할머니가 평소와 다르게 혼을 내셨다.


그때 이미 안방에 아버지와 누워 계셨던 엄마는 굉장히 수줍어하며 얼굴을 붉힌 채 내 시선을 피하셨다.  


뭐, 그때는 이해를 못 했다.


사우디 다녀오신 후 두 분의 애틋함은 더욱 진해졌는데 왜 셋째가 없는지 그게 의문이다.



아버지와의 어떤 살가운 추억이 별로 없어서

이렇게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언젠가 아버지와 엄마에 대한 썰을 더 풀어도 될 듯하다.



[맛보기]


어떤 중대한 일을 가족 간 상의해서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함

대충 [남자 3 VS 엄마] 구도가 됨

엄마만 우리 남자 세명과 의견이 달랐음 

하지만 누가 봐도 엄마가 억지 쓰는 걸로 밖에 안 보임

아버지도 이때만큼은 소극적 저항 중  

하지만 엄마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한 옥타브 올라가니까

아버지는 그제야 '허~참...' 소리와 함께

엄마 말에 바로 수긍...  

그렇게 아버지는 재빠른 태세전환 후

우리들에게 강권적[?] 가스라이팅 시전


'니 엄마가 틀린 거 봤냐?  엄마 말대로 해'   


우리 형제  어이없음....


며칠 지나 엄마판단이 옳았다는 게 밝혀짐.

정작 엄마는 당연하다는 듯 무덤덤한데

아버지는 '거봐라 거봐라~ 너희 엄마 말은 항상 정확하다니까!!'

선홍빛 잇몸을 활짝 개하고 혼자 신나 하심...



훗날 아내가 아버지를 유심히 쳐다보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보는 아버님 눈빛에서 꿀이 떨어진다나?


와~ 여자들은 이렇게 느끼는구나~


나는 이런 광경을 늘 봐서 아버지가 좀 안쓰럽던데....



[cookie]


작년 추석 글쓰기 위해 며칠간 과거의 기억을 들쑤시고 다닐 때 잘 정리되지 않던 엄마에 대한 기억을 직접 엄마에게 물어봤다.


- 엄마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늘 우울한 표정이었던 것 같아 왜 그랬을까?  

  무엇이 엄마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했을까?


엄마와 이런저런 얘기 도중 갑자기 뭔가가 생각나신 듯,


"맞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도 있었네~ 참...

내가 교회 안 다닐 때 형 임신하고 언니랑 점을 보러 갔는데 그 점쟁이가 나보고 넌 쌍둥이를 낳을 거래.  

그런데 그 쌍둥이가 여자면 괜찮은데

만약 남자애들이면 넌 고생을 심하게 할 거라고

또, 남들에게 행복하지 않은 여자로 보일 수 있다고 했어. "

 

얼이 빠지게 엄마의 얘기 듣고 있던 우리 가족...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서로 입을 맞춘 듯 동시에


와~ 용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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