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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치곱슬 Jan 17. 2024

삐쩍 마른 남자 이야기


마른 사람을 표현할 때 늘 '삐쩍 말랐다, 삐쩍 곯았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삐쩍'의 사전적 정의를 알아보니


'볼품없이 매우 마른 모양'이라는 부사라고 한다.


이렇게 볼품없는 나는 40대 후반의 매우 마른 남자이다.


게다가 직업은 주차 관리원이다.


직업에 귀천이 어딨냐고 흔히들 얘기하지만


진정 귀천이 없다면 이런 말 자체가 없지 않았을까?



이제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다른 친구 아빠와 비교하여


자기 아빠란 사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아는 나이이다


나를 참 많이 닮은 아들은 정작 아빠 닮았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이렇게 아빠 닮아서 자기 모양이 이 꼴이라고 투사할 때면 난 너무 가슴이 아파온다.



몇 달 전 주차관리하는 업장이 폐업하여 실업자가 되었던 적이 있다.


설상가상으로 업무를 보다가 본의 아니게 내 무지로 인해


자동차 관리법을 위반하게 되면서


실업자 신분으로 경찰서와 법원을 들락거렸다.


실업상태 아니었다면 이 상황을 견디기가 좀 더 수월했을 텐데...


그 당시에 심신이 꽤 많이 고달팠다



음... 이 때문이었을까?


어느 순간 몸무게가 갑자기 50kg까지 떨어졌다.


30대부터 체중이 조금씩 빠지긴 했지만


이렇게 급격하게 감소한 것은 처음이었다.


키 176cm에 몸무게 50kg이라니....  


마치 내 몰골이 걸어 다니는 시체 같았다.


급격한 체중 감소는 모든 암의 공통적인 위험 신호라고 하던데,



설마...

최근 소화가 잘 안 되고 속이 더부룩한 것도... 혹시?


이후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전부 공포로 잠식되어 있었다.


특히 명치 뒤쪽 등통증이 뻐근하게 느껴질 때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머리카락이 쭈뼜서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으니...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해왔던 걸까?


이제껏 내가 추구했던 건 대체 뭐였단 말인가?


아니, 지금 이 시간에 빨리 병원 가지 않고 뭐 하고 있는 걸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질문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혹... 내 인생의 한 부분을 뚝 떼어 바친 종교를 배신해서 신이 주는 벌인가?



만약 내가 형벌과도 같은 몹쓸 병에 걸렸다면


생각조차 하기 버겁지만 나에게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


참... 가족들이 내 걱정을 얼마나 할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노령의 부모에게 심려 끼쳐 건강을 해치지나 않을는지.


또, 아이들은 이제 중학생인데 잘 견뎌줄 수 있을까?


하.... 못난 날 유일하게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아내는...


아마 우리 가족의 평범한 일상은 박살 날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의 이런 염려와는 별개로


곧 나에게 재앙 같은 참사가 벌어질 텐데,


우선 날 위한 걱정을 담보 삼아 내 삶의 모든 주도권은 가족에게 저당 잡힐 것이다.


내 부모는 아들 살리기 위해 나를 당장 종교시설로 보낼 것이고

아내는 신을 떠난 나에게 회심을 촉구하겠지...


같은 신앙을 가진 가족들은 결속하여 배교한 나에게 교조적 강요를 쏟아낼 것임은 자명하다.


이렇게 회심하기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테니...


우리 가족은 날 너무 사랑하기에 내가 다시 종교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런 짓을 서슴지 않고 내게 가할 것이다.


오직 하나의 진리만을 추구하는 신앙은 구원받기 위한 다른 타협점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가족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나는 남겨질 가족의 안녕을 위해 최소한 '척'이라도 해서 그들을 안심시켜야겠지.


결국 이 형벌 같은 병으로 내 삶은 '내가 거부할 수 없는 것'에 예속될 것이다.



그렇게 밤이 되고 심란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좌 뒹굴 우 뒹굴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글을 쓰고 싶단 충동이 제 맘대로 달싹이더라.


이 쓸개 빠진 놈은 이 판국에 글쓰기라니??


정말 어이없는 시추에이션[?]에 나조차 깜짝 놀랐다



왜 난 15년 전, 글을 쓰다 말았을까...



갑자기 후회가 텍사스 소 때처럼 밀려오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


실은 글 쓰는 재미가 상당히 좋았다.


일을 마치고 밤새워가며 글 쓰던 때도 있었으니.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품에 비해 어떤 보상[정신적, 물질적]이 적었달까?


그래,

완곡 표현은 집어치우고 톡 까놓고 내뱉자면


글로 유명해지지 않았고 돈이 생기지도 않았다.



그렇게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으며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언젠가 글을 써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았다.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없던 죽음에 근접해 보니

그때 꾸준히 글을 안 썼던 것이 너무 후회스러워지더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


한국식으로 오역한 '버나드쇼' 묘비문을 보고 있자니


딱 내 꼬라지가 이렇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죽음은 육체와 정신과 감정의 해체라고 했던가...


하지만 이대로 해체되기엔 뭔가 미련이 남은 듯 계속 두리번거리겠지.


뭐~ 수많은 미련이 있겠지만 지금 가장 내 맘을 쥐고 흔드는 건 글쓰기에 대한 열망이다.





이제 더 이상 글쓰기를 미룰 수 없다.


그럼 어떤 내용으로 글을 쓸까?


참... 머리에 딱 꽂히는 모티브가 없네....



그렇게 난 몇 주 간 글감을 구상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니, 글은 고사하고 어렸을 때부터 현재까지의 삶을 더듬는 것조차 버거웠다.



- 내 기억의 실타래를 모조리 끄집어내어

  이리저리 엉켜있는 매듭을 풀어내야 한다.

  그것뿐 아니라 기억의 사각지대에 있는

  부서진 조각까지 샅샅이 긁어모아야겠지. -



그렇게 한 달을 쥐어짜도 병아리 오줌 정도밖에 안 나오던 기억이


어느 순간 회억回憶이 되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점점 차고 흘러넘치던 회억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 시절 그때 끈적했던 감촉과 함께 대뇌 피질을 뚫고 나와 금세 눅진한 늪을 만들어 나를 잠식하더라.


이 와중에 어떤 한 가지 기억이 튀어나오면 고구마 줄기 마냥 넝쿨째 다른 기억들까지 소환당하는데  

온갖 시시콜콜한 기억까지 쏟아져 나와 너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기억 대부분은 맥락 없는 토막 난 사고의 단편들이 주를 이룬다.


또, 시간적인 배열도 뒤죽박죽인 데다

나에겐 의미 있을지라도 글로 쓰기엔 뭔가 사소하거나

체화되지 못한 삶의 찌꺼기 같은 것들뿐이다.



이렇게 기억의 편린을 어거지로 모으고 모아 글 쓰게 된다면 개인적인 추억 보정이 자연스레 스며들 것이고


최악으로는 기억의 왜곡으로 곡필하여 실제 일어난 사실과 전혀 다른 양상의 글이 될까 심히 두려워진다.


또 이런 글을 쓰다 보면


살아온 인생에 대해 뭔가 변명하는 글만 난무할 것이고

종국에 나는 구질구질하게 면죄부를 받는 사람으로 비치겠지.



과연 이딴 글에 무슨 유익이 있을까?


아무런 왜곡 없는 100% 사실의 글이 아니라면

[99%의 사실, 1%의 허구일지라도]


에세이가 아니라 차라리 픽션이 될 가능성이 다분해 보이기까지 하는데...



하지만 이번 글은 철저히 날 위해서 쓰겠다


비겁한 부분에서는 기억의 왜곡이란 핑계로 최대한 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기적인 글을 쓸 것이다


이렇게 난 과거의 희로애락을 배설하고 해방감을 느끼며


 '그래도 이 정도면 썩 괜찮은 인생이었다' 회고할 테지...


뭐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피카레스크만 아니면 되지 않을까?  



기왕 시작한 김에 좀 더 멋들어진 글을 쓰고 싶지만


내가 전문작가도 아니고 배움이 짧아 그럴 깜냥도 안되기에 시간의 흐름 순으로 성장 에세이를 써보려 한다.


100화가 넘는 상당히 긴 호흡의 글이라


부디 끝까지 계속 연재되길 바란다.


나를 위해서...



이제 마지막으로 필명은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반드시 나에겐 두렵고 떨리는 이 감정을 글로 써서 반추하고 치유했어야 할 질곡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행복했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라는 거장들의 말에 통감하며...]

 


난 중학교 시절부터 따돌림과 집단 폭행을 당해 왔다.



내 머리가 할아버지 같은 흰머리가 되고 철수세미 같은 곱슬머리로 변해 갔을 때부터이다.


이제 필명을 그토록 증오스러웠던 '새치곱슬'로 정하고

쳐다보기도 두려웠던 어두운 그 기억 속으로 직접 걸어서 들어가 보려 한다.


나는 이렇게 뒤틀린 감정을 글이라는 수단으로 체계화하여 자가 치유를 모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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