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말은 인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축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말은 뛰어난 체력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기계문명의 발달 이전까지 인류 문화의 발전에 상당 부분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말은 인간의 생계에 가장 기본이 되는 육축六畜의 일종으로 여겨졌으며, 문화권을 막론하고 오신장午神將으로서 십이지신의 반열에 들어 숭배되기도 하였다. 고대 중국에서 말은 제사의 필수 갖춤인 희생犧牲의 하나였으며, 마한에서는 장례 풍습의 일환으로 말을 순생殉牲(동물을 순장하는 것)하였다. 뿐만 아니라 부여에서는 최고 관직인 가加의 이름으로 쓰이기도 했고, 한국 윷놀이에서 가장 큰 끗수가 모 즉 말이라는 사실은 상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경주 김유신묘의 호석에 새겨진 오신장상 탁본
고대사회에서 말은 전쟁과 수송, 교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물질문화에서 마구Harness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의 이용이 사회의 전 성원에게 보편적·필수적이었던 이른바 '기마민족'과 다르게, 농경문화를 영위하던 동아시아의 많은 사회들에게 말은 그다지 필수요소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울러 말은 생활에서의 편의와 함께 군사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으므로, 자연스럽게 특수 계층만이 영위할 수 있는 재화가 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말을 제어하는 마구 역시도 상류층의 물질문화였을 것이다. 농경이 주요 생계 방식이었던 한반도의 고대 사회 역시 사정은 같았을 것이다. 금은으로 치장되었던 삼국시대의 화려한 마구는 물론이거니와, 철과 청동으로 제작되어 그다지 비싸게 보이지는 않는 철기시대의 마구 역시 그 자체가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물건들을 고고학에서는 위신재威信財라고 한다.
하지만 마구가 위신재로 기능한다고 해도, 그 기본은 어쨌든 '말을 다루기' 위해 '말에 장착하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마구는 말의 몸에 적합하고 잘 접촉할 수 있어야 하며, 말의 운동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말을 효과적으로 괴롭게 하는(!) 형태로 제작되어야 했다. 여기에 말의 힘이 워낙 강하고 운신이 거칠기 때문에 내구도가 좋아야 했을 것이고, 거기다 기동성을 살려야 하니 가벼워야 했을 것이다. 입고 벗기기도 쉬워야 했음은 물론이다.(李基萬 1984) 이런 저런 조건들을 모두 만족하면서도 힘을 받는 부분은 대개 금속으로 제작되어야 했기 때문에, 고대 사회에서 마구는 당대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였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나니 마구가 고급품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 마구는 서기전에 마차와 관련한 장구로 즉 거마용 마구 위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에 대응하는 동시기 마차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사용되었을지는 의문이다. 이 경우 대부분은 '물 건너 온 명품' 정도로 용도와 상관 없이 그 자체로 소유자의 권위를 살려주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이 글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것은 위세품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실제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기승용 마구이다. 마구는 용도에 따라 몇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장 기본적으로 앞서 언급한 거마용 마구와 기승용 마구로 나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제부터 이 둘을 거마구車馬具와 기마구騎馬具로 일컬을 것이다. 거마구는 위만조선의 기마문화를 다루는 3장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질 것이므로, 여기서는 주력하는 기마구의 분류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기마구는 말의 어디에 장착하며 어떻게 사용 혹은 기능하는지에 따라 크게 제어용 마구·안정용 마구·장식용 마구·방어용 마구 네 가지로 분류된다. 이와 같은 명칭은 학계에서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이 글에서는 마구 전공자인 쑨루孫璐가 설정한 명칭(孫璐 2012)에 따라 간단하게 제어구制御具·안정구安定具·장식구裝飾具·방어구防禦具라 명명한다. 마구는 쇠와 구리 등의 무기물과 가죽·나무·뼈 등의 유기물이 복합적으로 사용되는 물건이지만, 이 글에서는 대체로 출토 사례가 많은 무기물을 위주로 서술될 것이다.
이 글의 구성은 이 장을 포함하여 크게 여덟 장으로 계획하고 있다.
1. 들어가며: 마구의 의미와 종류
2. 인류 최초의 기마문화
3. 한반도 초기 목마와 이른바 '조선계 마구' 논란
4. 신라와 가야의 제어구
5. 신라와 가야의 안정구
6. 신라와 가야의 장식구
7. 신라와 가야의 방어구
8. 맺으며: 신라·가야 마구의 성격과 특징
이 중 본론에 해당하는 4~7장은 마구 각종에 따라 다시 세분되어 절이 나뉠 것이다. 제어구는 재갈 한 종류 밖에 없지만, 워낙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종류별로 나누어서 살펴본다. 안정구의 경우 안장과 등자로 나누어 이야기한다. 장식구는 분량에 따라 삼계三繫장식구와 행엽杏葉·방울·사행상철기蛇行狀鐵器 두 절로 분절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방어구는 말이 착용하는 갑주 뿐이므로 한 장에서 모두 다뤄진다. 전제에 해당하는 앞의 2~3장은 최초의 목마와 승마를 이야기하게 된다. 내용이 꽤 어렵지만, 최대한 쉽게 풀어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