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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긴믈 Nov 17. 2019

권위와 편의, 그 사이 어딘가 2

말과 사람의 첫 만남

기마문화의 시작에 대해서는 일찍이 우크라이나Україна의 데레이프카Деріївка유적이 조명을 받았다. 데레이프카유적은 서기전 4,200~3,700년경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David W. Anthony·Dorcas R. Brown 2011)되는데, 여기서 사슴의 뼈로 만든 재갈멈치와 말 유골이 출토(류창환 2015)했던 것이다. 재갈멈치는 재갈 양 끝에 달려 말의 입 가장자리에 대는 막대 모양의 기구이다. 한쪽에 고삐를 매어 잡아당길 때 재갈이 빠지지 않게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데레이프카의 재갈멈치가 발견되면서 학자들은 최초의 말 사육과 기마문화가 서기전 50~40세기경에 이른바 근동지방이라 불리는 서아시아 일대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 추정하게 된다.


[그림 1] 데레이프카유적 출토 재갈멈치


하지만, 최근의 조사를 통해서 데레이프카유적이 형성된 시점이 기존의 편년보다 내려간 스키타이시대(이평래 2014)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여기서 청동제 유물과 청동슬래그가 출토되면서 그 연대가 모호해지게 된 것이다. 최근의 견해를 수용한다면, 데레이프카유적과 인류 기마문화의 시작점은 서기전 10세기까지 내려가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최초의 기마문화에 대한 논의는 데레이프카유적에서 카자흐스탄Қазақстан에 위치한 보타이Ботай유적으로 넘어가게 된다.


보타이유적은 서기전 3,600~3,100년경에 형성(David W. Anthony·Dorcas R. Brown 2011)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거지에서는 유골을 비롯하여 말이 머물렀던 흔적과 마유가 묻은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야생마의 젖을 짜서 마유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주거지에서 확인된 말의 배설물을 검토했을 때 말이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렀다는 흔적이 검출되기 때문에 당대 보타이인들은 분명 말을 사육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이 유적의 편년에 대한 기존의 견해에는 아직 별다른 이견이 없으므로, 기마문화의 시작점은 서기전 40세기까지는 올라갈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보타이유적에서 출토한 말의 유골과 배설물, 마유가 담겼던 토기 등은 어디까지나 말 사육에 관련한 흔적들일 뿐이다. 그러니까 이것들을 가지고 기마문화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말의 유골 중에서 치아에 남은 독특한 흔적으로부터 인류가 말을 부렸던 증거를 찾고자 한 시도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데이비드 안소니David W. Anthony와 도르카스 브라운Dorcas R. Brown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들은 현대 승마용 말의 치아와 보타이유적 출토 말 유골의 치아를 비교하여 인간이 말을 사육했던 흔적을 찾아내었다.


[그림 2] 말의 구강구조


말의 구강구조를 살펴보면, 앞니와 어금니 사이에 큰 공간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치극, 혹은 치간이개 등으로 부르고 사람들은 이 공간에 재갈을 물려 말을 제어한다. 입의 양 끝을 통과한 재갈은 사람이 잡아당기게 되면 말의 입 안을 비집고 들어가 혀 안쪽의 삼차신경을 자극하게 된다. 이때 가해지는 자극은 고통을 가하는데, 이것을 삼차신경통이라고 하며 동물에게 있어 가장 고통스러운 증상 중 하나이다. [그림 3]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삼차신경에 강한 압력을 받은 말은 이를 떨쳐내기 위해 혀로 끊임없이 재갈을 밀어내게 되고, 이 과정에서 말의 어금니는 딱딱한 재갈에 쓸려 마모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림 3] 재갈 물린 말을 X-Ray로 촬영한 사진


데이비드 안소니와 도르카스 브라운은 살아 있는 말을 조사한 결과 야생마와 사육마의 치아 마모도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그들은 대개 3~20세 말에 한정하여 치아의 마모 정도를 도출하였는데, 그 이유는 3세 이하의 말은 치아의 형태가 불규칙적이고 20세 이상의 말은 자연마모를 통해서도 3㎜에 근접한 마모도를 갖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사육마의 경우 치아의 한 쪽이 3㎜ 정도 마모된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이것은 재갈을 문 적이 없는 같은 연령대의 야생마의 마모도와 큰 차이가 있었다. 이렇게 재갈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겨난 치아 마모를 Bit Wear라고 명명했는데, 여기서 Bit는 재갈, Wear은 닳거나 해지는 현상을 의미하므로 번역하면 재갈마모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4] 보타이유적에서 출토한 말 치아의 재갈마모 양상


[표 1]은 말의 치아마모도를 비교한 통계자료(David W. Anthony·Dorcas R. Brown 2011)이다. 위에서부터 현대의 가정사육마, 보타이유적 출토 유골, 인도 코자이유적 출토 유골, 미국 플로리다 레이시유적 출토 유골, 현대 방목사육마로부터 각각 치아를 얻어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금속재갈을 쓰는 말의 치아가 가장 많이 마모되었으며 방목한 말이 가장 적은 마모도를 보인다. 표를 보면 유적에서 출토된 치아들 중에서는 보타이유적의 것이 가장 심하게 마모되었다.


[표 1] 말의 치아마모도 수치비교표

데이비드 안소니와 도르카스 브라운이 제시한 재갈마모를 인정한다면, 보타이유적의 말 유골은 인간이 말을 기승용으로 사용한 최초의 증거로 볼 수 있다. 물론 보타이유적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재갈멈치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다만 데레이프카유적에서 출토한 재갈멈치도 골각제 즉 유기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부패하여 소멸했을 가능성도 생각을 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말 유골의 치아에서 재갈마모가 확인되기 때문에 재갈이 존재했음에는 분명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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