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권위와 편의, 그 사이 어딘가 5

신라와 가야의 제어구 [貳]

by 새긴믈

표비는 가장 먼저 발생한 형태의 재갈이며, 실용성이 중시되는 북방의 스키타이 등 유목기마민족들에게 유행하던 것이 부여와 고구려, 선비족 등을 통해 한반도로 확산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신라와 가야에는 표비가 부장된 고분이 서기 4세기 초엽부터 등장한다. 함유가 주로 뼈 같은 유기질이므로 유물로서 확인하는 것은 거의 힘들고, 이 때문에 표비에 대한 연구 역시 함과 인수의 제작방법과 형태에 초점을 맞추어 이루어지고 있다. 거의 완형에 가까운 형태의 표비는 아래 [그림 1]에서 제시하는 김해 대성동 91호분 출토 표비 4점이다.


[그림 1] 김해 대성동 91호분 출토 표비
표비.png [그림 2] 김해 대성동 91호분 출토 표비 실물(김해 대성동고분박물관 제공)


[그림 1]에서 왼쪽의 2점은 골각제의 함유가 한쪽뿐이라도 양호하게 남아 있다. 좌상측의 표비를 보면 녹각 즉 사슴뿔에 금속의 굴레걸이, 즉 입문용금구를 박아넣은 모습이 확인되는데, 이것은 확실히 저번에 제시했던 데레이프카의 함유보다는 한층 발전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실물은 [그림 2]를 참고하면 된다. [그림 1] 오른쪽의 2점과 [그림 2] 오른쪽 재갈은 함유가 온전히 남아있는 편인데, 이것들은 쇠로 골각제 함유의 형태를 본따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즉 형태적 아이디어는 그대로 가져가면서 재질만 다른 것으로 교체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 인류의 물질문화에서 종종 확인되는 양상이다.


표비의 변천.png [그림 3] 표비의 변천


표비의 변화상은 함유보다는 인수의 변천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그림 3]과 같다. 먼저 〈짧은 표주박형에 철봉이 2조선인 형태〉에서 〈2조선의 철봉을 꼬아 1조선의 표형처럼 만든 형태〉, 〈2조선 철봉에 삽자루형태〉, 〈굽은 타원형 외환을 가진 1조선 형태〉로 변한다. 중간 중간에 과도기적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데, 가령 2단계와 3단계 사이의 것으로 철봉을 꼬아 만든 삽자루 형태의 인수가 확인되기도 한다. 기실 이러한 인수의 변화는 모든 종류의 재갈에 다 적용되는 것이지만, 표비는 가장 먼저 등장했기에 이 변천을 모두 겪은데다가 많은 수의 함유가 녹각과 같은 유기물로 제작되었으므로 인수 변화를 확인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표비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는 이 네 가지 형식의 인수를 갖춘 표비들이 모두 확인되었기에, 그 유적의 출토품을 통해 이들 각각에 대해 아래에서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1단계 김해 대성동 91호분 출토 표비.png [그림 4] 김해 대성동 91호분 출토 표비


[그림 4]의 표비가 가장 초기의 표비로 생각되는 것이다. 함유는 녹각함유를 철재로 모방제작한 것으로 생각되며, 함은 2조 철봉을 꼬아 1조로 만든 2연식이다. 외환이 내환에 비해 상당히 큰데, 이는 함유를 안에 넣어 고정하고 인수를 걸기 위함이다. 유환이 없는 대신 함외환을 여유롭게 만든 것이다. 함외한에 걸린 인수는 1조 철봉의 양 끝을 구부려 고리를 만든 것으로, 앞서 언급한 짧은 표형이다. 형태는 길쭉한 8자형에 가까우며 9자형을 띠기도 하는데, 표주박과 닮았다 하여 표형이라 명명하였다. 게다가 한 줄 철봉을 구부려 두 줄로 만들었으니 짧은 표형의 2조선 인수로 규정되는 것이다. 부산 복천동 69호분에서 출토한 표비의 경우 전형적인 2조선의 짧은 표형을 띠고 있다. 그것과 [그림 3]의 복천동 38호분 출토품은 영남 최초의 삼국시대 표비로 생각되며, 그 시기는 서기 4세기 2/4분기로 편년된다.


2단계 김해 대성동 2호분 출토 표비.png [그림 5] 김해 대성동 2호분 출토 표비


다음 단계는 김해 대성동 2호분 출토품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그림 5]를 보면 [그림 4]와 인수의 형태가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이전 단계에서 그냥 2조선으로 남겨두었던 인수의 중앙부를 배배 꼬아 1조선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타래형 1조선 인수라 하겠다. 영남에서는 대개 서기 4세기 3/4분기에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기에는 기존의 표형의 2조선인수가 그대로 사용되는 동시에 타래형 1조선인수가 추가되는 양상이다. 아울러 다음에 서술할 삽자루형 외환을 가진 인수도 이 시기에 발생한다.


3단계 김해 대성동 11호분 출토 표비.png [그림 6] 김해 대성동 11호분 출토 표비


이 다음에 등장하는 인수의 형태는 김해 대성동 11호분 출토품 표비의 것이 대표적이다. [그림 6]을 보면, 철봉은 2조선이고 인수외환의 형태가 마치 삽자루같이 생겼기 때문에 이를 삽자루형 2조선인수라 한다. 인수가 전체적으로 짧은 표형을 띠면서 외환부 끝이 직선 철봉으로 마감되는 방식의 인수는 김해 삼계동 두곡8호분이나 부산 복천동 42호분 출토품과 같이 서기 4세기 3/4분기에도 등장하지만, 표비보다는 판비에 주로 쓰이다가 서기 5세기가 되어야 본격적으로 표비에 사용된다. 서기 5세기 1/4분기에 표비에 결합되는 삽자루형 2조선인수는 몸체가 길고 외환이 거의 삼각형의 형태를 띠고 있어 삽자루와 완전히 닮아 있다.


4단계 김해 대성동 85호분 출토 표비.png [그림 7] 김해 대성동 85호분 출토 표비


마지막은 김해 대성동 85호분 출토 표비를 예로 들 수 있다. [그림 7]을 보면, 인수의 중앙부가 이제 완전히 하나가 된다. 철봉을 구부리거나 꼬아 2조선으로 보강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1조선으로 제작한 것이다. 인수외환의 형태가 살짝 굽은 타원형에 가깝기 때문에, 이 인수의 이름은 곡타원형 1조선인수라 하겠다. 이 인수는 삼국시대 신라와 가야의 마구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을 제시하는 표지와 같은데, 연대상 서기 5세기 중엽에 해당되는 이 시기에는 앞서 언급했던 고식 마구들이 모두 소멸하고 새로운 형태의 신식 마구들이 등장한다. 재갈 인수가 2조선의 철봉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제작되는 것 역시 신식 마구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서기 5세기 중엽을 끝으로 표비는 거의 사용되지 않게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