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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긴믈 Nov 18. 2019

권위와 편의, 그 사이 어딘가 4

신라와 가야의 제어구 [壹]

신라와 가야의 주무대인 동남한에 초기 마구가 들어오는 시점은 서기전 1세기로, 알려진 바 서북한과 가까운 시기이다. 시기뿐만 아니라 그 내용 역시 서북한과 비슷하여 중원의 거마구 일색이며, 부장도 몇 개의 거마구를 상징적으로 부장하는 방식을 그대로 차용한다. 그 중 가장 널리 사용되던 것은 철제 재갈로, 이번 장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제어구의 일종이므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재갈은 거마와 기마를 막론하고 말을 제어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도구였으며, 인류 최초의 마구로 발견되었을만큼 사용된 역사가 깊다. 서기전 1세기 이후, 즉 철기시대 중기 이후 동남한에 처음 유입된 재갈은 재갈멈치 즉 함유銜留의 형태가 곧거나 굽은 막대형인 표비鑣轡였다.


[그림 1] 경산 임당 AⅠ-145호분 출토 표비(국립대구박물관 제공)


[그림 1]의 표비가 철기시대 동남한 재갈의 기본형태이다. 중간에 연결되어 있는 두 개의 철봉 꽈배기가 말의 입에 물리는 재갈 즉 함이고, 그 양 옆에 있는 막대가 함유이다. 형태는 밑의 [표 1]에 있듯이 그냥 막대기의 형태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그림 1]과 같은 프로펠러형이 다수를 점한다. 이런 모습으로 등장한 원삼국시대 영남지역의 재갈은 아래 [표 1]과 같은 모습으로 변천상을 그리게 된다.


[표 1] 철기시대 동남한 출토 재갈의 형식 변천(윤서경 2017 도면 24 수정인용)


이 재갈들이 단순 위세품이었는지 실용품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삼국시대에 비해 출토량도 그리 많지 않다. 거기다 삼국시대에 들어서게 되면, 원삼국시대 후기에 확인되었던 표비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고, 이전에 데레이프카유적에서 보았던 골각제 함유 표비나 프로펠러형, 혹은 막대형과 비슷한 형태의 철제 함유 표비가 등장하게 된다. 즉 원삼국시대의 재갈과 삼국시대의 재갈 간에 계승성이 있는지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삼국시대의 재갈과 제어구는 어떤 형태이며, 어디에서 왔을까?


[그림 2] 토우에 묘사된 제어구


제어구는 말 그대로 말을 제어하기 위해 쓰는 장구이다. 말을 다루고 부리는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장구로 재갈과 면계面繫(굴레)‧흉계胸繫(가슴걸이)‧고계尻繫(후걸이)‧(고삐) 등으로 구분되고, 이 중 면계-흉계-고계는 삼계三繫로 통칭한다. 그런데 삼계와 고삐는 주로 가죽이나 실로 제작된 끈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식되어 남아 있는 사례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들에 대해서는 기마인물형토기나 고분벽화의 기마인물상 등과 같이 기마를 묘사한 당대의 자료를 통해 원형을 추정해볼 수 있다. 아래의 [그림 3]는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토기들인데, 왼쪽이 무덤의 주인이고 오른쪽이 그의 수발을 드는 시종으로 알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말의 얼굴과 가슴, 엉덩이에 끈이 드리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이 삼계이다. 말의 전면을 묶어 재갈과 안장 등을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고삐는 재갈과 연결되어 사람이 손으로 쥐며 직접 제어할 수 있게 한 끈이다.


[그림 3] 경주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형토기 일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재질 상 부패하여 실물을 확인하기 어려운 삼계와 고삐 등에 비해 말의 입에 직접 물려야 하는 재갈은 주로 금속으로 만들어지므로 땅 속에서 유존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고분에서 출토되는 마구류 중 가장 많은 수량을 차지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인지 재갈은 시공간적으로 다양한 형태가 확인되며 마구 연구에 있어 가장 기초적인 자료로 취급된다.


[그림 4] 재갈 부품(합천 옥전 M1호분 출토품)


재갈의 핵심부품은 당연히 재갈이다. 좁은 의미의 재갈은 말의 입에 가로 물리는 막대를 말하는데, 이를 한자로는 함이라 한다. 함은 하나의 막대로 이루어지지만은 않으므로 그 형식을 철봉 마디에 따라 마디가 없는 1연식, 마디가 하나인 2연식, 그리고 마디가 둘인 3연식이 있다. [그림 4]는 합천 옥전 M1호분에서 출토한 재갈인데, 제시한 바와 같이 신라와 가야에서는 2연식 함이 가장 많이 발견된다. [표 1]에서 확인할 수 있듯 철기시대 후기가 되면 3연식 함(경주 황성동 46호묘·울산 중산리 Ⅶ-4호묘 출토품)도 제작되지만 삼국시대에 들어서면서 소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함 중앙에서 조합되어 말의 혀를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고리는 함 안쪽에 있는 고리라 하여 함내환銜內環이라 하며, 같은 맥락에서 함 바깥에 위치하여 다른 부품과 연결되는 고리는 함외환銜外環이라 한다. 함외환에 걸려있는 저 함유라는 부품이 앞서 언급한 재갈멈치이다. 한자로는 함유銜留라 하며, 말 그대로 재갈을 말의 입 속에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기능 외에도 함유는 재갈에서 가장 가시성이 높은 부품이므로 그 형태가 다양하며, 이 때문에 후대의 고고학자들은 함유를 재갈의 형식 분류에 가장 기본적인 지표로 삼았다.


함유 바깥에서 함외환과 연결되는 또 다른 철봉을 인수引手라 하는데, 이것은 고삐를 이어매기 위한 고삐걸개이다. 인수도 함과 마찬가지로 철봉의 수와 형태가 재갈의 분류와 시기 설정, 계통 등에 중요한 속성으로 인식된다. 역시 양 옆에 고리가 있으며, 함과 연결되는 고리를 인수내환引手內環, 고삐와 연결되는 고리를 인수외환引手外環이라 칭한다. [그림 4]에서는 함과 인수가 유환遊環이라는 또 다른 고리에 의해 연결이 되는데, 이것의 유무에 따라서도 분류가 이루어진다. 유환은 한자를 그대로 풀면 노는고리라고 할 수 있으며, 마구뿐만 아니라 귀걸이 같은 삼국시대의 장신구에서도 확인된다. 귀걸이와 같이 세로로 드리워지는 장신구의 경우 고리가 많을수록 화려해지며, 재갈에 고리가 많다면 관절이 많아지는 셈이 되므로 유연해진다. 즉 유환은기물의 장식성과 기능성을 높여주는 부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림 5] 합천 옥전 M1호분 출토 재갈의 착용 상상도


앞서 살펴보았던 재갈의 부품들이 실제 말의 입에 물리면 어떤 형태를 띠는지 살펴보자. [그림 5]에서 말의 입 옆으로 삐져나온 가느다란 봉이 함이며, 함외환에 연결되어 말의 입 끝을 덮은 타원형의 판이 함유이다. 함유를 재갈멈치라 하는 이유에 대해 상기해보자면, 함유는 말에 입에 물려진 재갈이 고삐를 잡아당기는 힘의 불균형이나 말이 혀로 재갈을 밀어내는 등의 움직임으로 인해 말의 입 밖으로 탈락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장치된 것이다. 즉 [그림 5]에 묘사된 것처럼 말의 볼에 위치하여 재갈을 멈추게 하는, 말 그대로 재갈'멈치'인 것이다. 함외환과 연결된 함유는 다시 인수내환과도 연결되는데, 고리 셋이 만나면서 함유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 함유 상단에는 고리 하나가 있어 굴레와 연결되는데, 이것은 입문부立聞部라고 한다. 여기서 입문이란 일본에서 조성된 단어이다. 타치기たちぎ라 읽으며 멈춰서서 엿듣는다는 의미로 익히 사용되는데, 마구에서는 함유의 대가리 부분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된다.


재갈은 크게 표비‧판비‧환판비‧원환비 네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앞서 언급했다시피 함유의 형태에 따른 대분류이다. 표비는 막대의 형태를 띤 함유를 장착한 것으로, 가장 처음 등장한 재갈의 형태이다. 판비는 판의 형태를 띤 함유를 장착한 것으로, 가시성이 큰 함유를 넓은 판으로 만들어 그 위에 각종 장식을 베푼 것이다. 환판비는 납작한 고리에 고리를 가로지르는 금구를 덧댄 것으로, 이전 판비에 비해 재갈의 유연성이 높아졌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원환비는 동그란 고리의 형태를 띤 함유를 장착한 것으로, 네 가지 재갈 중 가장 유연하고 간단하여 실용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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