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의 주체와 행위
비문은 마모가 심하여 판독이 어려운 부분이 많고, 글자 수가 적어 전후 문맥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판독이 확실하거나 추독 가능한 문자와 단어를 중심으로 문장 구조를 짐작하고 문맥을 재구성해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비문의 문자 수는 13×4 이하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실상 동시기 다른 비석에 비해 글자 수가 적은 편이다. 이 짧은 글월 속에 날짜를 비롯하여 행위 주체, 행위 내용, 행위 결과 등이 포함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글월 속에는 배경 설명이나 수사 등의 부속적인 내용은 들어갈 여지가 없으며, 상당히 짧고 담백한 문장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단 비문의 등장인물로 추정되는 존재를 찾아보겠다. 가장 먼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ㄴ-①의 〈㖨〉이다. 이 글자는 동시기의 다른 금석문의 표기와 비교했을 때 〈喙〉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실 [그림 1]에서 알 수 있듯 ㄴ-①의 자형은 '口+彐+氺'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彐+氺'는 彔의 다른 형태이며, 다른 금석문에서는 '彐+朩'으로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체자식 표기 사례는 아래 [그림 2]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이외에 〈울진 봉평리 신라비〉는 喙자식과 㖨자식이 모두 등장하기도 하며, 『일본서기日本書紀』 스이코덴노推古天皇 18년조에도 신라 부의 이름에 㖨자가 사용된다. 喙는 짐승의 부리를 나타내는 글자이며 [달]로 읽을 수 있으므로 글자의 뜻 · 소리 · 모양에서 啄과 대응된다. 啄은 소리와 모양에 있어 涿과 대응되며, 이는 곧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따르면 道 · 梁 · 督 등과 대응된다. /닭/이나 /돍/ 등의 소리를 가졌으며 대개 하천과 관련된 대상을 지칭하는 말이었을 것으로 판단되는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6부의 '량 · 사량 · 점량(모량)'과 경산의 '압독'을 표기하는 데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ㄴ-①은 신라의 양부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다룰 수 있는 것이 ㄴ-⑥·⑦의 〈斯佊〉이다. 이는 〈영일 냉수리 신라비〉에서 확인되는 〈斯彼〉와 대응되며, 신라 습비부의 다른 이름으로 추정된다. 습비부는 금석문에서 나타나는 비중이 적으며, 나열될 때에도 가장 마지막에 나열되기 때문에 6부 중 서열이 가장 낮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량부와 사량부가 금석문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을 보았을 때, 나열 순서는 실제 서열과 의미 있게 대응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이 비문 속 내용에는 신라 6부 중 2개부가 참여하고 있으며, 따라서 〈喙〉과 〈斯佊〉 뒤에 이어지는 4글자는 해당 부 출신의 인물과 관련된 명칭일 것으로 생각된다. 起任習□씨와 己□□柯(科)씨... 기임습□씨와 기□□가(과)씨... 설마 기임이 김은 아니겠지?
이외 직접적으로 표기되는 등장인물은 없다. 하지만 비석이 세워진 압독에도 분명히 신라 중앙의 존재들과 대면할 존재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역시 비문의 맥락을 통해 추론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알아봐야 할 것은 주체들의 행위이다. 문장 속에서 어떤 활동이 있었는지 파악한다면 어느 정도 맥락이 파악될 것이라 기대한다. 가장 먼저 주체가 직접적으로 드러난 달인과 사피인의 행위로서 가장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글자는 ㄴ-⑫의 〈与〉이다. 与은 '주다' 혹은 '더불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 말인 즉슨 앞의 달인 기모씨와 사피인 기모씨가 어떤 존재에게 무언가를 주거나 어떤 존재와 더불어 무엇을 한다는 맥락으로 글이 전개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ㄴ-⑬ 이후 이어지는 글자들 중에는 분명 그 '어떤 존재'가 있으리라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ㄴ-⑬ 이후의 글자들 중에서는 신라의 6부나 압독 외 타 지역을 나타내는 글자는 확인되지 않으므로, 여기에 표기된 인물이 있다면 그는 압독인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여기에는 인물명 외에 행위의 목적어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무엇인지 추정하기 어렵다.
비문에서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직접적으로 어떤 행위를 지칭하는 글자로는 ㄷ-⑦의 〈論〉자가 있다. 이것은 비문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첫 번째 행위로, 비문의 내용이 여러 인물 간의 논의에 의한 결과로 작성된 것임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이 비석이 세워지기 직전, 이곳에서는 어떤 논의가 있었을까? 그 다음에 이어지는 글자를 두고 〈洹〉이라 판독한 시노하라 히로카타는, 'ㄷ-⑧의 좌변이 삼수변氵임에는 분명하나 우변이 모호하므로 洄 · 泗 · 河 · 洒 등의 글자일 가능성도 있으나 무엇이든 물과 관련된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하였다. 비석 출토 지점에 배수로가 시설되었고 그 인근이 옛 하천이자 저습지라는 점, 그리고 그 위에 논의 당시 시점과 맞물려 우물이나 연못 등이 시설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공간적 맥락과도 어느 정도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뒤에 이어지는 글자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ㄷ-⑨·⑪에서 판독된 글자를 통해 어떤 규모를 나타내는 말임을 짐작할 수 있다. 得자가 영천 청제비 병진명문에서 "塢□六十一得鄧九十二得汨廣二得高八得上三得"라 하여 숫자와 함께 단위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ㄷ-⑧은 백□득의 규모를 가진 물 관련 자연물이나 시설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자연히 ㄷ-⑦ 앞에 올 내용은 논의의 주체가 될 것인데, 공백이 많으므로 2인 이상의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이 주체는 뒤에 나오는 두 신라인과 함께 논의를 할 수 있는 존재이니만큼, 당시 압독의 지방관이나 촌주와 같은 관리자일 가능성이 높다. 종합하자면 압독의 관리자와 신라에서 파견된 관리가 임당의 물 관련 문제를 놓고 논의를 한 뒤 그 결과로 신라 관리 주도 하에 어떤 행위를 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추론해낼 수 있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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