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임당동 신라비 肆

비석을 건립한 주체

by 새긴믈

앞서 우리는 비문을 판독하여 그 내용이 압독국 중심지인 임당의 치수사업과 관련된 논의나 작업 결과를 담고 있으리라 추정하였다. 그렇다면 이 비석을 건립한 존재는 누구인가? 일단 비문 속에 등장하는 인물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비문에는 전반부의 "論洹" 주체와 후반부의 중앙관료, 그리고 그와 함께한 압독인이 등장한다. 여기서 "論洹"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것이 뒤이어 나오는 '탁인 기임습□'나 '사피인 기□□가(과)' 등과 대응하는지 전혀 알 수 없음을 생각한다면, 일단 전반부와 후반부의 모든 주체들을 독립적으로 놓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때 비석을 건립한 주체를 두고 시노하라 히로카타는 '후반부의 실무 진행자들 중에 입비立碑의 주체가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앞서 비문의 각자刻字와 비석 제작기술이 중고기 신라비석의 그것들에 비해 조잡하고 미숙하므로 비문을 새긴 주체가 "비석 제작 혹은 한자 사용에 미숙한 존재"일 것이라 추정한 바 있다. 이 말은 곧 비문을 새긴 주체가 서라벌디폴트default에 맞지 않는, 비표준적인 존재임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비표준적 요소는 비문의 인물 표기에서도 확인된다. 신라 중고기 금석문의 인물 표기법은 대개 통일되어 있는데, 관직명(A)+출신명(B)+인물명(C)+관등명(D)가 완전한 서식이다. 여기서 A는 종종 생략되기도 하지만, D는 〈영일 냉수리 신라비〉의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 거의 표기된다. B의 경우는 중앙인이면 소속부가, 지방인이면 소속촌이 표기된다. 그런데 〈경산 임당동 신라비〉의 인물표기법은 이런 서식에서 빗나가는 요소들이 확인된다.


인물표기임이 확실한 “㖨起任習□”(3-①~⑤)와 “斯佊己□□柯(科)”(3-⑥~⑪)는 B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A는 앞의 사례처럼 생략된 것이라 보아도 좋겠다. 하지만 남은 글자를 판독했을 때 관등 표기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은 의아하다. “㖨起任習□”와 “斯佊己□□柯(科)”가 판독대로 육부인이라면, 그들은 압독으로 파견된 서라벌인일 것이고 경위京位가 부여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영일 냉수리 신라비〉의 사례를 들어 이해하려 하여도, 여기에는 사달부 지도로갈문왕을 위시한 七王을 비롯하여 중앙의 고위관료들이 다수 등장한 후 그 말단에 관등이 표기되지 않은 인물이 나열된 것이기 때문에 〈경산 임당동 신라비〉와는 배경 자체가 다르다. 중앙을 대변하러 온 인물들이 〈영일 냉수리 신라비〉의 무관등자들처럼 말단관료인 것일까?


시노하라 히로카타는 이에 대하여 두 가지 가정을 더 제시하였다. “起任習□”와 “己□□柯(科)” 중에 인물명과 관등명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 첫 번째 가정이며, 각자刻者가 관등표기를 몰랐거나 잊었다는 것이 두 번째 가정이다. 그런데 저 글자들은 모두 당대 신라의 관등표기에 이용되지 않는 것이므로, 혹 저 글자들을 이용하여 관등을 표기했다면 각자가 임의로 적합하다 판단한 글자를 선정하여 새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그 각자는 당시 신라 중앙에서 관등을 어떻게 표기했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고, 중앙의 상식을 습득하지 못한 재지인일 가능성이 대두된다. 후자의 경우 역시 각자가 중앙의 인물 표기 서식을 알지 못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각자를 재지인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을 마련해준다.


이를 종합하면 비석 제작 주체는 중앙 출신이면서 관등을 갖지 못한 말단관료나, 중앙의 지식을 습득하지 못한 압독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제시한 요건들을 찬찬히 따져보면, 비문을 새길 때 중앙의 지식과 형식이 개입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비문의 내용에는 중앙에서 온 관료가 분명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그들이 비석 건립에는 관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제껏 긁어 모은 정황들을 정리하자면 압독국 중심지의 치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신라 중앙에서는 말단관료 둘을 파견하였고, 압독인들은 그들과 협력하여 사업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시노하라 히로카타는 여기서 중앙의 말단 관료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 추정하며 지방관일 가능성을 논하는데, 그들이 신라 중앙에서 파견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 편에서 비석 건립 배경과 아울러 이야기하겠다.




참고문헌

篠原啓方, 2008, 「경산 임당동 I지구 출토 古碑」, 『慶山 林堂洞 建物址遺蹟』, 영남문화재연구원.

篠原啓方, 2010, 「慶山林堂遺跡出土古碑の内容とその歴史的背景」, 『東アジア文化交渉研究』 3, 関西大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