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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긴믈 Mar 29. 2020

貳. 신석기시대 ㄴ

토기와 형식론

토기는 철기나 동기 등 여타 '재질+기'로 이루어진 용어들처럼 흙으로 만든 기물을 의미해야겠지만, 기실 기와나 벽돌, 토우 등 흙으로 만든 모든 기물을 통칭하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오로지 점토를 빚어 만든 용기에 한정되는 단어, 즉 글자 그대로 질그릇·흙그릇을 의미하는 것이다. 토기 제작은 고든 차일드에 따르면, '인류가 창출한 최초의 화학변화Chemical Change'라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 받아 신석기혁명의 가장 대표적인 고고학적·기술적 성과로 조명받았다. 단순히 고운 흙과 물을 배합해 점토를 만든 후 그것을 빚어 형태를 만들고 굳히는 데 지나지 아니하고, 그것을 불로 생성한 고온에 접촉시킴으로써 소재인 흙과는 완전히 새로운 성질의 기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화학변화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고온으로 구워진 토기는 이제 물에 닿아도 녹아 흐트러지지 않고 불어 닿아도 타버리지 않으며, 단단하여 충격을 받으면 깨어진다.


새롭게 획득한 성질로 인해 토기는 원거리 이동에 불리하고 쉽게 폐기될 수 있어 사용 주기가 짧지만, 잘 고정시켜 사용하면 물건을 담고 저장하는 데 더할나위 없는 기물이다. 아울러 불에 강하여 식재료에 안전하게 열을 전달할 수 있게 되어 조리법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토기 사용의 공간적 범위가 협소하다는 것은 곧 사용자가 상시적으로 원거리 이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것은 정착생활을 시사하는 동시에, 집단 내부에서 거주지 인근을 벗어나지 않는 토기 주사용 성원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즉 토기는 정주 촌락과 촌락 내 업무 분담에 대한 원시적 형태를 구상할 수 있는 물증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토기는 원시적 혈연 혹은 지연집단의 생활양식에 일대 변화를 가져다 준 기물이기에 인류학·고고학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토기의 고고학적 가치는 일차적으로 앞서 언급했듯 혁명적인 일대 변화의 물증이라는 점에 있지만, 이외에도 사용주기가 짧고 사용범위가 좁다는 특성으로 인해 시공간에 민감하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일단 금방 폐기되어 새로 제작해야 하는 주기가 짧다는 것은 그만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물 형태의 유행이 빨리 변할 여지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실제로 토기의 형태 변화는 다른 여느 기물에 비해 빨라 한 기물에 여러 단계의 서로 다른 형식이 존재하기도 한다. 더불어, 원거리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생산·유통에 있어 중심과 주변을 형성하는 교역 관계가 맺어지기 상당히 어렵다는 뜻이다. 즉 토기는 시장에 내어놓기보다는 당장에 사용하기 위해 즉석에서 제작하는 기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토기의 경도와 장식성이 높아지는 후대로 가면 그 성격이 많이 무뎌지지만, 적어도 신석기시대 토기는 원거리 전파에 매우 제한적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토기 형식을 공유하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 가장 좁은 단위의 문화권역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설정한 문화권역이 바로 토기를 지표로 삼은 것인데, 이러한 분류에는 기초적으로 형식론Typology이 반영된다. 형식론이란 하나의 기물이 지닌 외형적 특질이 시공간에 따라 차이를 갖는다는 이론인데, 사물의 형질 변화도 생물의 진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크리스티안 톰센·오스카 몬텔리우스Oscar Montelius·플린더즈 페트리Sir Wiliam Matthew Flinders Petrie·조지 브레이너드George Brainerd 등에 의해 점차적으로 정리된 형식론의 전제와 원리는 아래와 같다.


인공물의 형식 변천은 생물의 진화·변태와 유사하다.

인공물의 형식 변천은 불편함→편리함·단순함→복잡함 등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인공물의 형식도 계통을 갖는다.

인공물이 변화함에 따라 어떤 부위는 앞 단계의 기능이 퇴화될 수 있다.

퇴화한 부위는 새로운 속성으로 변질된다.

분석할 대상의 수량이 많아야 한다.

동반유물의 형식 변천과 맥락이 맞아야 한다.


형식론적 형식분류에서 분석해야 하는 요소는 가장 작은 단위부터 속성Attribute→형식Type→양식Style→유형Pattern 순으로 나열할 수 있는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용도와 기종의 분류 단위인 Form 역시 한글로 형식이라 번역된다는 점이다. 물론 한자는 Type이 型式, Form이 形式으로 다른데 학자들 사이에서 혼용되기도 한다. 속성은 고고자료에서 고고학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가장 세부적인 단위로, 기물 내 한 부위의 형식 요소를 일컫는다. 속성은 형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색조와 장식 등의 양식, 원료와 기법 등의 기술적인 면도 포함된다. Type은 속성들의 종합적 특성을 공유하는 군집의 단위이며 형식론의 지표이다. 즉 하나의 기물에서 확인되는 속성 조합이 같은 종에게서 똑같이 보인다면, 그것을 하나의 형식으로 특정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가'라는 토기에서 'A 형태의 아가리-Ⅰ 형태의 몸통-α 형태의 굽'이 조합되어 한 기물을 이루고 그 속성 조합이 '가' 토기 내에서 일부 공유가 된다면, '가' 토기라는 기종 내에는 AⅠα 형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Form은 Type과 별개로 용도와 형태 등의 차이에 따른 종 구분 단위이다. 즉 기종을 일컫는데, 기물의 종 역시 생물의 종처럼 아종이나 일종의 변종을 갖기도 한다. 즉 Type 형식이 형의 분류 단위라면 Form 형식은 종의 분류 단위인 것이다. 물론 Form 분류에 형질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차이에 불과하다. 가령 토기의 경우 같은 항아리라도 목과 어깨가 구분되는 것은 호, 목이 짧거나 없고 아가리가 넓으며 어깨에서 아가리로 오므라드는 형태를 갖는 것은 옹으로 구분한다. 또한 같은 그릇이라도 너비에 비해 높이가 높은 것을 발, 낮은 것을 명[접시]으로 구분한다. 이들 중 호의 아종은 역시 그 형태에 따라 목이 짧은 단경호·목이 긴 장경호·목이 직각으로 올라가는 직구호·손잡이가 달린 파수호·다리가 달린 대부호 등의 여러 아종이 존재한다.


양식은 특정 시공간에 공존하는 Type들의 군집을 아우르는 단위로 쓰인다. 앞서 속성의 일종으로 양식적 속성을 언급한 바 있는데, 이때 양식은 묘사적인 특징 즉 다분히 장식적 성격으로 Fashion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Style로서의 양식은, 예컨대 서기전 1세기 영남지방에서 저마다의 형식을 갖춘 조합식우각형파수부호·주머니호·단경호·완·소옹 등의 조합을 확정할 수 있다면 그 시기 그 공간만의 특정한 토기양식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양식의 이름은 해당 공간의 이름을 따거나 지표유적이 소재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 마지막으로 유형은 양식과 마찬가지로 특정 시공간에 공존하는 Type의 군집 단위인데, 양식보다 시공간의 범위가 훨씬 넓으며 대상도 유존물복합체Artifact Assemblage 전체를 아우른다. 유형은 대개 그 지역의 특정 시대에 해당하는 물질문화 전체로 대유되는데, 그중 물질문화를 분명하게 특정할 수 있는 경우 유형을 넘어 '문화'라 불리기도 한다. 토기를 지표로 하는 하나의 문화나 유형은 종종 특정한 하나의 종족Ethnic Group과 대응되기도 하는데, 이 작업은 재고의 여지가 많으므로 조심히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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