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서부지방의 토기양식
북서부지방의 토기양식은 조기부터 등장하여 미송리양식 → 반궁리양식 → 당산양식 → 신암리양식으로 전개된다. 이중 당산양식은 크게 하층단계와 상층단계로 구분되는데, 하층단계의 물질문화는 반궁리양식과 공유되는 침선문계 지자문토기가 지표이므로 반궁리양식 2기로 분류되는 반면 상층단계의 물질문화는 이중구연토기라는 새로운 경향이 생기면서 하층단계와 완전히 다른 특색을 갖추게 되었다. 여기서 하층이니 상층이니 하는 것은 하나의 유적에서 확인되는 여러 문화층, 즉 문화 흔적이 확인되는 토층 중 아래층과 위층을 말하는 것이다. 지층누증의 법칙에 의거하여 안정된 층위에서는 하층의 물질문화가 상층의 물질문화보다 더 먼저 영위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송리양식은 압날계 지자문토기를 지표로 하며 중국 동북지구를 주무대로 하는 지자문토기문화의 최남부지방 양식이다. 북서부지방에서는 미송리유적과 세죽리유적 등 극소수 지역에서만 확인되었는데, 그마저도 토기 수 점만 확보했을 뿐이다. 다만 양식 자체는 압록강 너머의 후와後窪유적을 포함한 소주산 하층문화권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문화상을 짐작할 수 있다. 지자문토기는 요서의 흥륭와문화단계부터 시작하여 홍산문화단계까지 지속된다. 소주산유형은 크게 하층-중층-상층단계로 나뉘며 하층은 다시 1기와 2기로 나뉘는데, 이때 하층단계 1기가 지자문토기양식 즉 미송리양식이 유행하는 시기이다. 2기에 해당하는 후와 상층단계는 압날 시문이 침선 시문으로 대체되는데, 이런 시문 방식은 미송리양식과 분명히 구분되는 새로운 경향이다. Form은 심발·발·천발·호로 구성되며, 문양은 구연부나 저부에 여백을 두고 시문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문양의 형태는 단순지자문과 능형집선문이 주요하며 어골문·격자문·횡선문 등도 확인된다. 토기의 태토에는 대개 활석이 혼입되는 경우가 많다.
반궁리양식은 침선계 지자문토기를 지표로 하며 이전 시기의 지자문 전통을 계승하는 신석기시대 전기의 토기양식이다. 이러한 토기양식 자체는 요동을 기준으로 했을 때 소주산 하층단계 2기(후와 상층단계)-소주산 중층단계-오가촌단계에 걸쳐 나타나는데, 북서부지방에서는 1기인 반궁리단계와 2기인 당산 하층단계로 나뉜다. 반궁리단계는 소주산 하층단계 2기와 대응되며 당산 하층단계는 오가촌단계와 대응된다. 1기의 주요 Form은 심발·발·호인데, 대개 미송리양식에 비해 저부는 좁아지고 굽이 형성되며 파수가 사라진다. 심발의 경우 외반하는 구연과 길고 곡선적인 동체를 갖게 되며, 호는 구연부가 내만하고 경부가 길어지며 동체부는 편평한 구球형이다. 문양은 여전히 구연부나 저부에 여백을 두고 시문되며, 그 형태는 횡침선문을 위시하여 어골문·삼각집선문·삼각집선문·사선문·횡침선문 등이 있다. 2기의 Form은 심발·발·호로 구성된다는 점이 1기와 같으나, 심발의 경우 외경도가 현저히 감소하며 호는 구연부와 경부의 변화가 더욱 심화된다. 문양은 동체 상부에 집중되며, 그 형태는 횡주어골문·격자문·단사선문을 위주로 하는데 뇌문이 처음 출현한다. 혹은 융기계 문양을 시문하기도 한다.
당산 상층양식은 동체부에 융기문이 시문되는 이중구연토기를 지표로 하는 신석기시대 중기의 토기양식이다. 요동의 편보偏堡문화에 속한다. Form은 심발·발·완·호로 구성되는데, 심발은 돌출되지 않은 이중구연을 가지며 옹과 유사한 외형을 갖고 있다. 호는 구연부가 외경하고 경부가 짧으며, 종타원형 동체부를 가진 것과 고리형 파수를 가진 구형 동체를 가진 것이 있다. 문양 형태는 대개 종주하는 융기선문이며, 직선으로 뻗은 것과 곡선으로 파상문을 그리는 것이 있다. 장동호에는 특별히 규칙적인 뇌문이 시문되는데, 간혹 심발에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신암리양식은 뇌문토기를 지표로 하는 신석기시대 후기와 말기의 토기양식이다. 포괄적으로는 소주산 상층단계에 해당하는데, 지엽적으로는 세 단계로 나뉜다. 1기는 쌍학리단계로, 심발과 호를 위주로 한 토기양식이다. 심발의 이중구연은 밖으로 돌출하고 다치구를 이용하여 동체부에 침선문을 시문한다. 호는 구연부가 급격히 외경하면서 경부가 짧은 절연관과 뇌문장경호가 확인된다. 이 양식은 2기 즉 신암리 1단계로 이어지는데, 심발에 다치구로 침선문을 시문한다는 점이나 호에서 뇌문이 시문되고 절연관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다만 두 문화 간에 뚜렷한 시기차가 상정되는데다가, 신암리 1층단계가 되면서 흑연 혼입 태토나 어골문 등의 새로운 속성이 등장한다는 점을 들어 이 둘을 구분하고자 한다. 2기에서는 호를 중심으로 기종이 다양해지며, 뇌문의 쓰임도 광범위해진다. 앞 단계의 절연관을 비롯하여 고배·삼환족기 등 요동반도에서 유행하던 기종이 추가되었다. 문양은 뇌문을 위시하여 삼각집선문이나 횡주어골문 등 침선문계 위주의 장식문양이 유행한다. 3기인 신암리 3지점 1층단계는 기종에 있어 큰 차이는 없으나 대각부토기의 형태가 눈에 띄게 변한다는 점이나 무문화가 진행된다는 경향 등에서 이전 시기와 차이를 둘 수 있다. 중국의 채문토기가 유입되기도 하여, 요하유역 등 중국과의 지속적인 교류가 짐작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韓國考古學專門事典: 新石器時代篇』.
임상택, 2017,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 양식의 성립과 변동」, 『고고학』 16-1, 중부고고학회.
임상택, 2018, 「토기 양식의 성립과 변화: 동북아 평저토기 서북지역 이중구연 토기와 뇌문토기를 중심으로」, 『湖西考古學』 41, 호서고고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