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숙제

조급함과 불안을 다루는 법

by 새하루

나는 손이나 몸 여기저기에

작은 상처나 흉이 많다.


조금만 조심하면 다치지 않을텐데

조금만 속도를 늦춰도 괜찮은 일들도

빨리빨리 해야하는 성격 탓에

늘 어딘가 긁히거나 찢기곤 한다.


이렇게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손가락에도 두세군데

급한 성미가 지나간 흔적들이 보인다.


그래서 나의 최대 강점이

빠릿빠릿하게 일을 하는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조금 더 섬세하게 다루거나

조심성을 챙겨야 하는 부분은 약점으로 남아있다.


그런 내가 천천히 걷고

조금 더 살필 수 있는 여유를

배워가고 있는 건

나에게 아기가 처음 왔을때부터였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입덧이 시작되었다.

입덧은 먹는 것뿐 아니라

전반적인 신체 컨디션에도 영향을 미쳤다.


15분 거리를 10분 만에 도착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던 컨디션 때문에

한 발자국 내딛다가 쉬고

한 발자국 내딛다가 쉬는 시간을 가져야

출근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20주의 입덧이 끝나도

몸이 무거워지고 발과 허리에

통증이 오니 빨리 걷는다는 건

과거의 일이 되었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나의 몸도 살필 줄 알게 되었달까.

집 주변 풍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하늘은 어떤지

오늘의 공기와 바람은 어떤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떤 얼굴인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


만삭일 때는 더 무거워진 몸과

아기가 내려와서 느껴지는 치골통에

더욱 더 몸이 굼떠져서

몸이 불편한 노인들의 감정을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아 허리가 아파서 앉아있지도

눕지도 못한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시큰거린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하며 말이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이 임산부를 위한답시고

자리를 양보해주실 때면

그 마음이 더 따뜻하고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무거운 몸으로 40주를 꽉 채우며

여유를 배우는 수업을 하고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3.06kg 의 아이가 나오면서

양수도 빠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임신 전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뛸 수 있게 되었음에 기뻤다.


강제로 배운 여유를 작별하고

다시 예전처럼 후다닥 해치우는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도 다시 빨리 걷는 나로,

불도저마냥 앞만 보고 살았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제는 내 옆에

내 손을 꼭 붙잡고 작은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작은 인간이 함께이기에.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더라도

나만 생각하고 달려나갔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내 손을 아이가

놓치지는 않았는지

잘 따라오고 있는지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느리더라도 하나씩 살피며

아이와 걸음의 속도를 맞춰야 하는 하루들이 되었다.


속도와 효율을 중요시하는 내가

빠름보다 천천히,

효율보다는 조금 돌아가더라도

안전한 길을 택해야 하는 육아의 현장에 있는 것이다.


헌데 여전히 마음의 속도는

늦추지 못해서 생기는 조급함이

자꾸만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는 아이가 100일 때부터 사업을 해서

지금 승승장구한다던데

누구는 재테크를 해서 경제적 자립을 이루었네 하며

나의 목표와 가까운 사람들과 자꾸만

비교하다보니 스스로 구덩이를 파는 것 같다.


그렇게 자꾸 관성처럼 머릿속에서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는 나에게

오히려 '엄마'는 꼭 이수해야하는

필수 과목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육아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나만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고

삶의 소중한 작은 순간들을

너무나도 쉽게 놓쳐버렸을테니까.


엄마가 되기 이전보다

두 템포 정도 느리게 사는 법을 배웠지만

여전히 급한 나의 성미를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평생 숙제감이다.

아마 아이를 키우면서 앞으로 남은

육아 인생에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지턱들이 수 없이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그 방지턱 앞에서 속도를

줄이고 있는 시간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내 목표점까지 빨리 가지 못한다고

불평하고 급급해하기 보다는

조금 쉬어가라고,

두 번 다시 안 올 이 시기를

조금 더 만끽하라고 주시는 시간이라 여기며

답답함보다는 감사함을 먼저 보아야겠다.


조급함 그리고 그로부터 생기는 불안을

다루는 방법은 결국 그런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감사함을 찾는 것이다.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지혜가 있을 때 나의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오늘도 감사하자.

내가 일을 쉬고 있어서

아이의 작은 순간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 아이 어린이집 김장 행사에 다녀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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