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존중
나도 내 아이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까?
너무 사랑했어서
내 뜻대로 행동하지 않았을 때
더 크게 느껴지는 배신감 같은 것 말이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의지하고 애정했던 것들이
(어쩌면 잘못된 방향의 사랑이었을지도)
본인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본인의 기대와 같이 되지 않으면
너무나도 크게 실망하고
배반감을 크게 느끼고
결국 그리도 애정하던 것을 180도 달라진
마음으로 칼을 들고 난도질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볼 때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국 내 마음을 왜 몰라주냐고
나 이렇게 상처받았고 힘든데
알지 못하냐고 되묻는다.
그리고 상대방의 마음은 돌아보지 못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헤아리려는 노력도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은 어떤 것이길래
이리도 뜨거웠다가
순식간에 냉혹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이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것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일방적일 수는 있지만
강압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이만큼 널 아끼고 사랑해도
너는 나를 이만큼 꼭 사랑하지 않아도 돼.
진짜 사랑은 나에게 전혀 돌아오지 않아도
기꺼이 감내하며 쏟아붓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헌데 이것이 강압이 되어 버린다면,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너도 이만큼 돌려주어야 해
때로는 내가 준 것보다 더 많이 돌려받아야 해
라고 생각한다면
주는 사랑을 속으로 계산하고 생색을 낸다면
그것이 진짜 사랑일까?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후자의 경우,
내 생각만큼 보답을 받지 못했을 때,
혹은 도리어 반응이 없거나 부정적인 반응일 때
그 사랑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의 마음이 거부당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칼을 들고 상대를 찌르기 일쑤이다.
내가 사랑한다는 그 마음 자체보다
사랑을 주었을 때의 반응,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니까.
내가 '이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어쩌면
나르시시즘에 취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연약한 본성이 있어서
부모 자식 간에도
100% 헌신적인 사랑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모르게 내 아이에게 바라는 것들이
생기리라 생각한다.
나만 바라보던 아이가 어느덧
부모보다 친구들이 좋은 시기가 오고
엄마아빠와의 관계에 시큰둥해진 듯 느껴져
서운한 마음이 생길 것이다.
사춘기를 만나 못된 말을 주고받을 때에도
속으로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클리셰가 목구멍까지 차오를 것이다.
그럼에도 기꺼이 꾹 참고
감내하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리라.
씁쓸하긴 하지만 티를 낼 수 없는 것.
그렇게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해 주는 것.
그것이 어른의 사랑 아닐까.
내 아이를 믿고 여기저기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아줄 때 더 성숙한 사랑이 되는 것이다.
어른과 어른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만큼 베풀었다고
애정을 주었다고 내 마음대로
그들의 행동을 마음을 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도 안되고 당연하게 여겨도 안된다.
혹 내가 마음을 주었는데
반응이 싸늘하면 마음은 아프겠지만
거기서 그만 거두어야 한다.
그 또한 사랑의 연장선으로 그들을 존중하는 것이니까.
어른이 되어서도 이러한 존중의 마음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은
어릴 때 양육자와 충분한 사랑의 연습을
해볼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닐지.
누구보다도 편하게 기댈 수 있고
화도 낼 수 있고
칭얼댈 수 있는 엄마아빠, 혹은 다른 양육자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어릴 적에는 가정이
인간관계, 사랑하는 법을 일차적으로 연습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정제되지 않은 사랑 그리고
때로는 순수한 이기심까지도
형제에게, 부모에게 맘껏 부려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 거구나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구나를
터득하는 것인데
그런 공간과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런 대상이 없었다면..
부득이하게 어른이 되어서도
여러 사람을 만나는 사회에서
부지런히 부대끼고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또 그들의 그런 날 것의
마음을 받아주어야 하겠지.
그러면서 또 그들도 한 뼘 배우지 않을까
내 아이가 마음껏
다듬어지지 않은 사랑을
연습할 수 있도록
또 그런 시간이 부재했던 누군가의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조금은 받아내 줄 수 있도록
든든하고 푸근한 어른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