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좋아한다면서

제대로 입을 줄은 몰랐다.

by 새하루


우리집은 넉넉하지 않았다. 엄마를 닮아 옷을 좋아했지만 좋은 옷도, 다양한 옷도 가질 수 없었다. 나는 좋아하는 옷을 고민 없이 누릴 수 있는 풍족한 삶을 꿈꿨다. 어릴 때부터 '프로젝트 런웨이'와 다양한 브랜드의 런웨이 무대를 보여주는 TV 채널에 푹 빠져 일러스트를 그리던 것이 나의 낙이었지만 내 꿈의 방향은 현실에 부딪혀 노선을 틀어야만 했다. 진로 선택지는 밥벌이가 넉넉한가만을 기준으로 저울에 올려질 수 있었다. 전문직종을 택한 덕에 남들보다 빨리 취업했고 사회 초년생치고 통장에 큰 숫자들이 찍혔다. 다만 그간 대학등록금을 정부에게 빌린 탓에 부지런히 갚느라 취업을 한 이후에도 나의 옷장은 늘 궁했다. 여전히 원하는 것을 마음껏 손에 쥘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옷 욕심을 전부 버릴 수는 없어서 쉽게 살 수 있는 값싼 옷을 탐했다. 그 옷들은 딱 그 정도 값어치여서 오래 입을 수 없었고 엉성한 것들도 많아 입혀지지도 못하고 버려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소중히 다루지 않아도 되는 옷들을 입으며 나는 그것의 값어치만큼만 나 자신을 대우했고 그것을 입은 나의 태도 또한 그랬다. 대충 입는 것, 나를 그만큼 경히 대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스스로도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좋은 옷을 입는다는 것은 단지 외적으로 보기 좋은 것 뿐이 아니었다. 좋은 옷은 나에게 잘 어울리고, 상황과 이미지에 잘 맞추어 나의 장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옷은 나의 가치를 올려준다.

옷에는 나의 태도를 바꿔줄 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옷의 이미지와 격에 맞는 행동과 처신을 하게 되지 않는가. 꽃무늬가 가득하고 실루엣이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으면 왠지 여성스러운 움직임이 되고, 색채가 적고 단정한 수트를 입으면 나도 모르게 전문인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그 옷을 입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가. 그 행동은 곧 생각으로도 이어진다.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소중한 옷을 입은 소중한 나' 라고.


며칠 전만해도 과거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내가 입고 싶은 것보다 가격을 기준으로 옷을 골랐다. 파격적인 세일가격일수록 구매가 쉬웠고, 내가 선호하지 않는 옷들도 옷장에 마구 들이곤 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옷을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입는다는 것은 은연중에 나에게 꽤나 큰 치명타를 날리고 있었다. 옷을 좋아하는 내가 아무거나 입으니 스스로를 아끼지 않는다고 여겨졌고, 나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옷들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더더욱 작아지곤 했다. '나도 저렇게 입고 싶은데, 난 안되겠지.' 하며 나를 가두었다. 결국 그렇게 저렴하다는 이유로 무지성에 구매한 옷들은 빛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금방 버려지기 일쑤였다. 그러니 옷을 자주 사는데도 매 해 입을 옷이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질 좋고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하나 살 금액으로 입혀지지도 않을 저가의 옷들을 여러개 사고 버리는 환경파괴범, 그리고 자존감 파괴범이 바로 나였다.


옷을 좋아한다면서 내가 좋아할 만한 잘 어울릴 만한 옷을 고르고 입는 과정에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물을 얻어낼 수 없다는 생각에 늘 갇혀 있었고, 그 생각은 시도조차 못하게 날 막았다. 그렇게 옷으로도 나를 제한하고 깎아내렸다. 나조차도 날 소중히 다루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느끼고 있다.

이제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옷을 고르고 입기로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선물을 며칠 동안 고민하며 고르듯이 몇날 며칠 고민해보고 나를 입히겠다. 가격만 보고 사는 옷 말고 내가 좋아하고 잘 어울려서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것이다. 맞지 않는 옷에 괜히 움츠러 들지 말고 스스로 당당해질 수 있도록 옷에 대한 태도부터 바꾸자.


옷에는 그 사람의 취향과 삶의 색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는 어떤 이로 비춰질까. 그냥 아무거나 입는 이로 보여지기는 싫다. 시시각각 좋아하는 것들이 바뀌는 변덕스러운 나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옷과 나를 사랑하는 사람, 그저 유행만 좇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이고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옷으로 나를 제대로 입히는 사람이고 싶다.


다시 옷장이 비워졌다. 아까운가? 아니 후련하다.

나에게 맞지 않는 것들을 털어내고 내 옷을 찾아가는 과정이 기대된다.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그간의 내 인생의 옷도 그러했다. 영 성에 차지 않는 그저 현실 타협으로만 가득 채운 인생 옷장을 만족한다고 스스로 속이며 끌고 왔다. 그런 내 삶을 진정 사랑할 수 있었을까?


이제는 용기가 필요하다. 타협 뿐인 인생을 과감히 처분하고, 뒤늦게 비용과 시간에 많은 값을 치러야한다고 해도 내가 정말 좋아하고 오래 사랑해줄 수 있는 것들로 인생의 옷을 입힐 용기가.


내 딸에게는 좋은 옷을 고를 수 있는 안목을,

자신을 잘 알아 아름답게 드러내며 사랑해 줄 수 있는 삶을 물려주어야지.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