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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Mar 27. 2023

쇼펜하우어, 생성의 충분근거율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능력과 그의 토대 범주론

 쇼펜하우어의 충분근거율은 칸트 관념론에 뿌리를 둔 범주론의 일종이다. 그리고 생성의 충분근거율은 충분근거율의 세부 분류 중 하나다. 그렇기에 생성의 충분근거율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 범주론과 칸트 관념론에 대한 설명을 선행하고자 한다. 범주론의 시작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이 아이디어는 사물이 가진 술어엔 무엇이 있냐는 문제의식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범주론은 논리학적 혹은 문법학적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김진성 박사는 "범주들은 술어라는 문법적인 뜻을 넘어, 사물을 분류하는 근본 개념들이기도 하다."[1] 라고 기술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인식에는 주어와 부속된 술어가 함께 따라오기 때문이다. 가령, 꽃에 대해 생각한다면 우리의 인식은 단순히 “꽃”에서 끝나지 않는다. 파란 꽃, 시든 꽃 등등 술어를 통해 대상을 인식한다. 범주론은 이러한 술어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느냐, 어떻게 범주화할 수 있느냐에 대해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런 이유로 범주론은 인식론에서도 중요하다.


 칸트의 관념론은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냐를 설명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여기서 칸트는 인간은 선험적인 인식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그를 비판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작업에서의 핵심 중 하나는, "어떠한 대상도 그 자체로는 알 수가 없고 우리의 직관의 형식을 통해 범주로 나누어지고 묶여져서 나에게 드러난 하나의 대상이 된다."[2]  칸트는 인식의 형식을 곧 범주로 칭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로 범주론의 계보는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쇼펜하우어는 그의 인식론에서 상당 부분을 그대로 수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범주론의 발전은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쇼펜하우어의 순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칸트를 따라 역시 인식의 형식을 범주화했다. 진정 인식이란 이 형식이 채워져야 형성된다. 이는 인간이 대상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아닌 선험적인 조건대로 대상을 수용하는 인식주관적 존재라는 것을 함의한다.


 충분근거율은 쇼펜하우어가 정초한 개념은 아니다. 비록 명명된 채는 아니었지만, 이 개념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고려해 왔다는 것을 지적한다. 연이어 볼프의 말을 빌려 그 개념에 관해 설명한다. "왜 그것이 존재하고 오히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이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3] 더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사람은 어떤 현상이 있다면, 그 현상에 대한 왜?라는 질문을 필연적으로 가진다. 이러한 사고원칙이 충분근거율이다. 전술했듯 쇼펜하우어의 충분근거율은 범주론이다. 그의 충분근거율은 왜?라는 질문 아래에 인식의 범주들을 모으려는 시도였다. 칸트를 승계한 쇼펜하우어는 충분근거율은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내재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생성의 충분근거율은 인과법칙이다. 감각을 통해 오는 시간과 공간을 오성은 작용을 통해 복합체로 만든다. 이 복합체는 질료의 표상이다. 질료가 형식을 채우는 것은 생성의 충족이유율의 단계에서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전체적으로 직관적이다. 인과법칙을 형성하는 인식 작용은 우리의 사고 속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형식을 질료가 채움으로써 완벽해진다. 내용 없는 형식은 공허하기 때문이다. 산물인 시간과 공간을 기본으로 하는 만큼 경험적인 작용이다. 그는 칸트처럼 시간과 공간이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인과법칙의 형식을 채우는 게 질료이고, 이가 결국 질료의 표상이라는 점에 우린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인과법칙은 언제까지나 내적 무언가가 아니라 외적, 물적 무언가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쇼펜하우어의 범주론은 결국 칸트 관념론에 연장선상에 있는 만큼 우리가 인식하는 건 세상 자체가 아니라 표상-칸트는 현상이라는 표현을 주로 썼는데 표상과 현상은 거의 같은 것을 지칭한다.-이다. 이는 해당 단계에서 얻는 지식이 객체의 우유성일 뿐이라는 것을 함축한다. 그는 “경험적 실재성의 복합체를 형성하는 전체 표상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모든 객체는 그 상태의 출현과 소멸에 관련하여, 따라서 시간의 진행 방향안에서 생성의 충분근거율에 의해 서로 결합되어 있다.”[4] 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상태와 우유성은 같은 의미로 모아도 무방하다. 풀어쓰자면, 인과법칙은 객체의 상태를 시간과 공간의 진행 안에서  파악하게 된다는 법칙이다. 당연하게도 변화는 선행하는 상태를 원인, 뒤따르는 상태를 결과라고 칭한다. 그리고 둘은 발생이라는 관계로 조립된다. 이러한 전제에선 “최초의 원인”은 찾을 수 없다. 결과엔 원인이 필연적이고 원인도 결국엔 이전의 결과이다. 이런 연쇄는 끊임없이 이루어질 것이다. 모든  상태들이 나온 상태가 있다면 그 상태의 원인이 된 상태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라이프니츠의 우주론적 증명은 이런 연유로 잘못됐다. 적어도 우리의 인식 내에서는 물체의 상태가 무한소급되기 때문이다.


 상태 뒤에 상태가 뒤따를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가언판단”의 기본전제다. 가언판단은 “~하기 위해선 ~해야 한다.”라는 형식의 명제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이전 상태가 다음 상태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우리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무언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만 의미를 가진다. 무엇인가의 필연성 역시 이런 토대에서만 생겨날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인과법칙에서 도달되는 결론은 관성의 법칙과 실체지속성의 법칙이다. 관성의 법칙이란 물체는 무언가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 그대로 지속된다는 법칙이다. 이는 상태에 대한 법칙이다. 상태의 변화에는 원인이 필연적이라는 뜻이니 결국 지금까지 한 말의 재언이다. 필자가 여기서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질료의 불변성을 설명하는 후자다. 여기서 말하는 질료는 우리가 인식하는 물체 같은 걸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난해한 물자체를 이루는 질료들에 가깝다. 이 원칙은 질량보존의 원칙과 흡사하다. 해당 법칙이 중요한 이유는 쇼펜하우어는 “실체가 질료의 단순한 동의어라는 것을 상세히 설명했으며”[5]라고 언급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실체란 곧 질료였다. 실체란 영원불변한 사물의 근원을 일컫는다. 실체지속성의 법칙으로 설명했듯 그의 체계에서 질료는 영원불변하고,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들의 근원이다. 쇼펜하우어는 실체의 존재를 확신한다. 물론 비판의 여지는 충분하다. 관념적 인식체계에선 물자체에 대해 알 수 없는데 실체가 질료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아니면 담지자의 변화에 대한 개념 혹 설명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 등등이다. 반면 쇼펜하우어의 주장은 상식적인 선에서 이뤄진다. 우리가 감각하는 대상이 결국 물자체가 아닌 속성이라고 하더라도, 그 우유성들을 담고 있을 담지자가 있어야 한다는 직관이다. 어찌 됐듯 실체는 쇼펜하우어의 체계 내에서 연역되어 찾아진다. 


 그렇다면 생성의 충분근거율이 갖는 의의는 무엇인가? 내적인 의의와 외적인 의의로 정리할 수 있다. 내적인 의의들은 전술했던 것들이다. 우주론적 신존재증명에 대한 비판, 가언판단의 기본전제의 역할, 마지막으로 쇼펜하우어의 체계 내에서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모두 생성의 충분근거율을 설명하면서 밝혀진다. 필자가 생각하기론 이 단계에서 두 가지 외적 의의를 지목할 수 있을 것 같다. 학문이란 적어도 이유율의 한 형태를 토대로 한다. "응용수학에서는 인과법칙이 동시에 나타난다. 그리고 인과법칙은 물리학, 화학, 지질학 등등에서 완전히 주도권을 얻는다."[6] 인과법칙이 물체의 상태변화에 대해 밝히는 것인 만큼, 응용수학과 과학이란 분야의 토대가 될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생성의 충분근거율, 판단의 충분근거율, 존재의 충분근거율, 행위의 충분근거율 중 오성의 역할을 다하는 것은 첫 번째 것뿐이다. 판단의 충분근거율은 전적으로 이성적 형식이고, 시공간을 인식하는 존재의 충분근거율은 직관 형식이다. 행위의 충분근거율은 인격체 내부의 행위 동기를 알아내는 데 기능한다. 이성은 표상을 형성하는 정신활동인데, 이는 인과법칙이 만든 객관적인 물 체계를 필요로 한다. 


 쇼펜하우어의 충족이유율은 인간의 인식기능에 대한 학설 중 하나다. 그리고 쇼펜하우어가 자신의 논문에서 생성의 충족이유율에 대한 설명에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이는 그 규칙이 충족이유율 내부에서 갖는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 이유율이 설명하는 것은 인과법칙이고, 이는 직관을 통한 것들을 이용해 객관적 물체계를 형성하는 기능으로 간단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론적 신존재증명의 문제점, 가언판단의 가능성, 실체가 질료라는 사실 모두 이에서 유추될 수 있다. 더불어 자연과학을 비롯한 몇몇 학문에 인과법칙이 필수적이라는 사실, 표상의 직접적 재료가 되는 오성적 활동도 생성의 충분근거율에서 유추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의들을 통해 우리에게 들어온 잡다는 인과법칙에 의해서야 비로소 건설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인식능력의 한계에 대해서도 약간이나마 실마리를 제공한다.



참고 문헌

아리스토텔레스(김진성 옮김), 범주들 명제에 관하여, 이제이 북스, 2005 -

허유선, 칸트 인식론에서 선험적 관념론과 경험적 실재론의 이해, 2007,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김미영 옮김), 충족이유율에 대한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나남, 2010




주석

[1] 아리스토텔레스(김진성 옮김), 범주들 명제에 관하여, 이제이 북스, 2005 - 17p

[2] 허유선, 칸트 인식론에서 선험적 관념론과 경험적 실재론의 이해, 2007, 2p

[3]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김미영 옮김), 충족이유율에 대한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나남, 2010, 19p 참고

[4]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김미영 옮김), 충족이유율에 대한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나남, 2010, 53p 

[5]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김미영 옮김), 충족이유율에 대한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나남, 2010, 65p 

[6]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김미영 옮김), 충족이유율에 대한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나남, 2010, 196p



개인적으로 브런치에서 주석기능을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브런치가 모바일중심의 플랫폼이라 주석이 있는 글은 적절치 못하지만요. 그래도 마음이 그렇네요. 왠만하면 주석이 필요없는 글을 써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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