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오 크뢰거」는 동명의 주인공이 시민세계와 예술세계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해야 하는 스스로의 삶을 긍정한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토니오 크뢰거」가 토마스 만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작품의 주제는 저자가 생각한 진정한 예술가의 삶이다. 그 삶이란 두 세계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여타의 것보다 토니오 크뢰거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글의 요지는 그가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라는 것이다. 미리 언급하자면 해당 질병은 서울대학교에서는 “애착 능력 결함과 중요한 대상과의 분리separation시의 부적응적인 행동패턴, 감정의 불안정성이 중심이 되는 인격장애”[1] 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하고 있다. 상기의 목적에 따라 경계성 인격장애에 대해 먼저 필요한 만큼의 소명을 진행한 이후, 그가 어떠한 병리적 징후를 가졌는지 살펴보겠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경계성borderline과 인격장애personality 모두 국내에서 정식적으로 통일된 번역이 없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이번 글의 경우 이를 각각 경계성 인격장애라는 어휘로 통일 코자 한다. 단 인용 시엔 원문의 표기를 따르겠다.
2. 경계성 인격장애의 포괄적 이해
경계성 인격장애란 표현은 보통의 사람들에겐 꽤 생소하다. 이 질병에 대해 본격적으로 기술하기 전에 인격과 인격장애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인격personality는 좀 더 친숙하게 성격personality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정신의학에서 인격이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주어진 환경에 대처해 나가는 일관적이고 지속적인 패턴을 말한다. 즉, 사람들이 가지는 비교적 지속적이고 중요한 심리적 특징들을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2]
인격장애란 "개인의 고유한 성격 특질이 그가 속한 사회문화적 기대로부터 심하게 벗어나 있고, 이 특질이 경직되어 있어서 아무 상황에서나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나 직업적으로 심각한 기능장애를 야기하거나 주관적으로 고통을 유발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3] MSD일반인용 메뉴얼을 참고하면 좀 더 간단하다. "인격 장애는 사고, 인지, 반응, 연관의 패턴이 만연하며 오래 지속되는 상태를 말하며, 이는 당사자에게 심한 괴로움 및/또는 기능 장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4] 로 기술되어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은 나름의 성격적 특이점이나 방아쇠trigger[5]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특정하고 지나치게 역기능적이라 사회에 적응하거나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를 성격장애로 일컫는다.
우리는 여기서 기분장애와 성격장애의 차이를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기분이란 사람들의 생활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감정 상태를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적인 생활에서 통상적으로 기대될 수 있는 기분의 변화에서 현격하게 벗어나 극단적인 기분의 변화를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를 기분장애mood disorder이라고 한다."[5]인격장애와 기분장애의 핵심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전자의 경우 지속적이고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 원인이다. 다만 후자의 경우는 비교적 일시적이다. 동시에 환경적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이다.
인격장애의 종류는 총 10개이다. 이 10가지를 크게 나눌 수 있는데, 각각 A, B, C다. 이중 경계성 인격장애는 B 유형에 속한다. 해당 유형은 "극적이고 감정적이며 변덕스러운 증상이나 행동 패턴이 핵심 특징이다."[6] 당연히 경계성 인격장애도 해당 특징을 공유한다. 이 질환이 다른 질환들과 공유하는 증상에는 고갈등 성격high-conflict personlaity이라는 것도 있다. HCP라고 줄여지기도 하는데, “갈등을 줄이거나 해결하기보다는 습관적으로 갈등을 증가시키는 행동 패턴 ”[7]이다. 고갈등 성격에 해당하는 패턴들은 꽤 많다. 다만 그중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몇 개 있다. 가령, 감정을 잘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와 타인에 대한 통제 욕구, 통제되지 않고 과한 감정 등등이다. 왜냐하면 이런 증상들은 경계성 인격장애에서도 흔히-항상은 아니다.- 나타나기 때문이다. 다만 이 중 분열splitting이라는 증상은 특히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해당 증상이 경계성 인격장애의 핵심부에 자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분열이란 "동일 대상에 대해 두 가지의 극히 상반된 이미지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8] 가령, 한 명의 사람에게 극진한 호의를 보이다가도 갑작스럽게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한다던가 등의 경우가 흔히 이에 해당한다. 대상에 대한 생각이 충분히 종합되고 결합 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더불어 경계성 인격장애의 증상 중 하나로 뽑히는 이분법적 사고나, 통제되지 않는 감정, 감정 기복 등도 분열에 큰 영향을 받는다.
『잡았다, 네가 술래야』에서는 분열을 포함해 해당 질환의 증상으로 취급되는 행동들을 정리해 두었다. 필자는 이 중 몇 가지를 소개코자 한다. “지각 및 추론장애, 분열, 해리, 명확한 정체감의 결여, 유기나 거부의 잠재적 징후에 대한 민감함, 강렬하고 회복이 어려운 암울한 기분, 아주 쉽고 빠르게 변화하는 감정, 내면의 공허함, 강렬한 정서적 고통, 때때로 극단적인 충동성, 자살 또는 자해, 강박적 행동, 제어할 수 없는 분노와 충동성 공격성등이다.”[9]
경계성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학자들 사이에서 일치된 견해를 보이진 않는다. 정신병리 역사의 맥락 속에서 여러 뜻을 거쳐 가기도 했다. 현재의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이라는 것을 참고하여 진단을 내리긴 한다. 해당 메뉴얼에서 지목하는 9개의 특성 중 5개 이상을 가지고 있다면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진단하는 식이다. 이에 해당하는 것 중에서 특히 해당 질병의 핵심적 개성으로 뽑히는 것은 분열, 유기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 양가감정 등이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경계성이란 환자가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양극단-이미지든, 생각이든, 감정이든- 경계에 놓여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충분히 학술적인 설명은 아닐 수 있지만, 일반적인 이해로는 충분하다.
이 병은 의사들 사이에서도 특히 까다로운 질병으로 악명이 높다. 우선 주변인에게 입히는 피해가 큰 편이라는 점, 그리고 진단이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우선 이들은 유기 또는 거부의 잠재적 징후에 매우 민감하며, 자살 또는 자해, 제어할 수 없는 분노 등을 보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른 인격장애들과 겹치는 증상들이 많고 실제로 중복적으로 발병하기도 한다.
여타 정신병이 그렇듯 경계성 인격장애가 어째서 발병하게 되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다만 선천적인 요인과 후험적인 요인 모두 고려된다. 우선 유전적 원인도 있다고 추측되고 있으며, "경계성 성격장애는 부모나 형제 중에 경계성 성격장애를 지닌 사람이 있을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다섯 배 정도 더 높은 발병 빈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고된다."[10] 고로 치료시에 상담과 양물을 병행한다. 더불어 “비효과적인 양육, 안전하지 않고 혼란스러운 가정 상황, 자녀와 부모의 타고난 성향의 충돌, 양육자를 갑작스럽게 잃거나 양육자의 관심이 갑자기 줄어들어 아동이 버림받았다고 인식하는 경우들이 경계성 인격장애에 큰 영향을 주는 이유로 뽑힌다.”[11] 즉, 경계성 인격장애는 개인의 자아가 서로 극단 되는 이미지나 사고, 감정 따위의 경계에서 왕복하며 머무는 장기적 성격의 문제로 정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울증과 경계성 인격장애의 차이가 궁금해질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기분장애다. 기분장애와 인격장애에 대해 전술한 것 말고도 조울증은 달 내지 년 단위로 감정 기복이 이루어지는 반면, 경계성 인격장애는 하루에도 수많이 감정의 기복을 느낀다. 더불어 후자의 경우 이 감정기복은 대게 타인과의 관계에서 연원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