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장에서는 필자가 어째서 토니오 크뢰거가 앓고 있는 질환으로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목했는지에 대해 서술해 볼 작정이다. 우선 작품에 그가 가진 우울과 애수의 정취가 전반적으로 깔려있다는 것은 독자라면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필자는 그가 가진 예민함과 통제되지 않는 분노를 보여주는 사건을 하나 언급하고 싶다. 작품 중반부에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인 리자베타에게 동료 예술가에 대한 장광설에 가까운 불만을 표시한다. 봄은 마음을 들뜨게 해 이성적인 작업인 예술을 어렵게 만든다는 자신의 생각과 동료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봄이 좋다는 동료의 말에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토니오 크뢰거가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기엔 불충분하다. 「토니오 크뢰거」에서 경계성 인격장애의 증상이 다수 등장하지 않는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 견해는 필자도 어느 정도 수긍한다. 그는 경계성 인격장애로 특정될 만한 몇 가지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데, 만성적 공허감이나, 몇몇 고갈등 성격-통제되지 않는 분노, 예민함 등등.-은 경계성 인격장애의 증상이지만, 동시에 다른 정신병에서도 나타나는 증상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신병 중에 가장 흔하며 기초이기도 한 우울증 역시 이런 증상들을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고로 필자가 토니오 크뢰거를 경계성 인격장애라고 판단한 핵심적 근거들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 나갈 생각이다. 첫 번째는 그의 양육환경과 관련된 것이고, 둘째는 그가 예술세계와 시민세계, 한스등등에게 가지는 양가감정과 분열 때문이다.
양육환경부터 먼저 논의해 보자. 전술했듯 토니오 크뢰거는 시민세계와 예술세계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물이다. 그가 처한 상황과 삶은 이름으로부터 표상된다. 크뢰거가 전형적인 북부인의 성인 반면, 토니오라는 이름은 -배경인 독일의 기준에서는-꽤 이국적인 이름이기 때문이다. 동급생인 이머탈은 토니오라는 이름에 대고 "네 탓은 아니야! 네 이름이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은 그것이 이국적으로 들리는 데다 좀 유별나기 때문이야."[13] 라고 말한다. 이상의 상황들은 그의 부모로부터 연원 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선친이 전형적이고 딱딱한 북부 독일인인 반면, 어머니는 감정적이고 열정적이며 예술가적 기질을 가진 남미 출신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둘은 각각 시민세계와 예술세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작품에서 두 부모의 성향 차이를 다음과 같이 압축하여 묘사한다.
그 언젠가 아버지가 지도의 저 아래쪽에 표시된 곳으로부터 데려왔기 때문에 이 도시의 다른 부인들과는 아주 달랐던 어머니에게는 성적표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토니오는 피아노와 만돌린을 아주 잘 연주할 줄 아는, 검은 머리의 정열적인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사람들한테서 아들이 받고 있는 의심스러운 평가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 사실이 기뻤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그는 아버지의 노여움이 훨씬 더 위엄 있고 존경할 만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는 비록 꾸지람을 듣더라도 근본적으로는 아버지의 태도에 공감했으며, 어머니의 명랑한 무관심을 약간 방종한 태도라고 느끼고 있었다. (13)
즉, 이들이 성향이 정반대되는 것이며, 양육 태도도 일관되지 않았다. 이는 '혼란스러운 가정 환경'과 '비효과적인 양육'에 해당한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것은 보통의 경우 역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더불어 어머니 역시도 아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준다고 말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더불어 부모의 비일관적인 행동과 태도는 피양육자에게 정신적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부추기는 중대한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받는다. 서울 아산 병원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따르면 “또한 성장 과정에서 부모가 보여주는 양가감정이 자녀의 가치관에 혼란을 주어, 주체성이 모호해지고 인간관계가 왜곡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14] 다. 경계선 인격장애에선 분열은 부모의 비일관적인 양육방식이 초래한 결과라고 지적한다.[15]
더불어 크뢰거 가장의 상기가 지난 후, 그의 부인인 콘수엘로는 다른 남자와 떠났다고 한다. 이는 양육자를 갑작스럽게 잃거나 양육자의 관심이 갑자기 줄어들어 아동이 버림받았다고 인식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는 한 개인이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스트레스 사건인 외상적 사건traumatic events이라고 할 수 있다.[16] 당연하게도 외상적 사건은 다양한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즉 토니오 크뢰거는 중요한 타인의 상실이라는 외상적 사건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두 번 겪은 것이다. 이런 상실이 발생할 경우, 피양육자는 무의식적으로 애착 대상에게서 거부당했다거나 자신이 없앴다고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대상으로부터 미움과 분노, 적개심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이가 자신의 책임일 수도 있다는 죄책감 역시 느낀다. 이 상실이란 것은 대상의 죽음 등에도 적용되지만, 지속적인 관심 혹 애정의 상실 역시 포함한다. 즉 토니오 크뢰거의 아버지와의 사별, 가정을 따라 다른 사랑을 찾아 나선 어머니의 경우 모두 중요한 타인의 상실에 해당한다. 첨언하자면 부모 입장에서는 사소한 꾸지람이나 짜증이라고 생각되는 행동이라도 피양육자에게는 외상적 사건이 될 수 있다. 크뢰거가家에서 벌어진 일들이 작품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진 않지만, 하지만 상기의 것들 역시 토니오 크뢰거가 가진 정신질환의 요인일 수도 있다.
이어 설명하고자 하는 바는 토니오 크뢰거가 가진 분열과 양가감정이다. 이 두 증상은 경계성 인격장애의 핵심이다. 그는 특유의 감수성과 예술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비평가의 찬사 역시 받고 있으니 성공한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창작을 위해 삶을 외면하지만 토니오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건강한 삶에의 동경이 꿈틀거리고 있다.”[17] 이렇듯, 그의 내면엔 심원한 고뇌와 우울함이 상존하고 있다.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나 예술의 길에 들어선 토니오는 평범한 것을 동경하며 살아간다."[18] 토니오는 스스로 이렇게 언급하기까지 한다. "문학이란 것은 소명이 아니라, 당신에게 분명히 말해두고 싶습니다만, 일종의 저주입니다.”[19] 이러면 내면적 고뇌는 작품 초장부터 한스와 잉게보르트와의 관계를 통해 묘사된다. “한스와 잉에보르크에 대한 토니오의 감정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금발’과 ‘파란 눈’으로 상징되는 (토니오 자신에게는 결핍되어있는) 그들의 건강한 생활감정을 선망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토니오는 그런 세계가 생존의 욕구와 본능만으로 뭉쳐있는 속물의 세계라고 느낀다.”[20] 삶의 궤도가 예술가로 진입하면서는 이런 감정은 더 직접적이 되는데, 북부로 여행을 가서 현지의 사람들을 보고 촌스럽고 왜소하다는 감상을 드러낸다. 한스와 잉에를 다시 보았을 때, 서술자는 토니오의 내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강철처럼 파란 눈과 금발을 한 이 밝은 족속의 인간들은 청순성, 순수성, 명랑성, 그리고 또한 동시에 자랑스럽고 순박하며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냉담성의 표상을 불러일으킨다."[21] “비록 창작을 위해 삶의 요구를 외면하고는 있지만, 토니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건강한 삶에 대한 동경이 꿈틀대고 있”[22] 으면서도 말이다. 그에게 시민적 삶을 저속한 것이지만 동시에 동경의 대상이기도 한 것이다. 반대의 예술을 저주라고 하면서도 사랑한다. 그런 연유로 주인공은 길을 잃은 상황이다. “이 양극단의 갈등은 토니오가 극단적인 분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23]
분열이 경계성 인격장애의 핵심적 증상임을 상기해 주길 바란다. 이렇듯 토니오 크뢰거는 예술세계와 시민세계 모두에 극단적인 감상을 모두 가지며 사이를 왕복한다. 이상의 것들이 단기적이지 않고 무척 장기적임과 동시에 개인에게 큰 고통을 주기 때문에 충분히 성격장애적 징후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해당 작품의 결말은 스스로가 이러한 자신의 내면을 깨달으면서 끝난다. "이 사랑을 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선량하고 생산적인 사랑이랍니다. 동격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우울한 질투와 아주 조금의 경멸과 완전하고도 순결한 천상적 행복감이 그 속에 들어있습니다."[24] 전술했듯, 내면적 분열을 깨달은 그는 스스로의 삶을 긍정하며 끝이 난다. 이상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토니오 크뢰거는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판단된다.
4. 결론
지금까지 토마스 만의 창조물이자 스스로에 대한 표상이었던 토니오 크뢰거와 경계성 인격장애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논의해 보았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여타 하위 분류 역시 존재하며, 증상으로도 수많은 것들이 나열된다. 허나 이런 증상들은 환자가 가지고 있는 분열-내지 양가감정-에서 기인한다. 즉 이가 핵심이다. 토니오 크뢰거 역시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 추가적으로 그의 가정 배경은 맥락적으로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들이 경험한 것과 흡사하다. 부모가 비일관적인 양육 태도를 보인다는 점과 애착 대상에 대한 갑작스러운 상실을 겪는 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상의 점들로 미루어 볼 때, 토니오 크뢰거가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일은 아니다.
5. 참고문헌
1. 『토니오 크뢰거⋅트리스탄⋅베니스에서의 죽음』(안삼환 외 역)(토마스 만, 민음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