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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Jan 29. 2024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서평

청어, 대구, 장어는 생각보다 흥미진진하다.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서평

 

 과메기로 익숙한 청어, 담백하게 탕으로 끓이기 좋은 대구, 기력 향상에 좋다는 장어. 우리에게 모두 낯익은 생선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쩐지 저 생선들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이전까지 청어와 대구, 장어가 얼마나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쳤는지 몰랐고 생각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는 생선과 연관된 역사 속 에피소드 37개를 소개하고 설명해 주는 대중교양서적이다. 장어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나오지만, 주된 이야깃거리는 청어와 대구다.


 책의 전반부는 주로 청어가 다뤄진다. 유럽에서 청어는 아주 중요한 자원이었다. 사람들은 단백질을 꼭 섭취하여야 하는데, 육고기를 먹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종교적으로도 물고기가 신성시되는 상태기도 했고. 이런 상황에서 번식력이 뛰어났던 청어는 유럽의 식탁에서 아주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다. 흥미로운 점은 청어가 회유어라는 사실이다. 청어 떼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서식지를 옮겼고 이에 따라 유럽의 세력도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에서는 독일의 상인길드, 네덜란드, 영국의 순서로 이동한 유럽의 패권이 청어잡이에 의한 것이라는 가설을 소개한다.


 대구 역시 청어처럼 아주 중요한 식재료였다. 둘을 비교해 볼 때, 전자의 경우가 후자의 경우보다 보관성이 아주 뛰어났다. 이는 대구가 청어에 비해 기름기가 적은 담백한 생선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럽이 신대륙을 발견한 원동력으로 대구를 지목한다. 오랜 항해에선 그만큼 오랫 동안 저장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필요한 법이니까. 대구는 바로 그런 조건에 부합했다. 더불어 바이킹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 대구 때문이 아니냐는 가설도 소개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들은 장기간 항해를 위한 보존식품으로 대구를 사용했으며, 요리법도 아주 발달해있었다. 대구잡이는 스칸다나비아반도의 사람들에겐 사활이 걸린 일이었다. 그들은 말린 대구를 으적거리며, 더 많은 대구를 목표로 바다를 유랑했을 것이다. 닿고 보니 아메리카였을 뿐.


 이후 대구는 아메리카 이주민들의 경제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북미대륙의 동쪽 해안에 대구산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한 주는 의회당에 큼지막한 대구모형을 설치했다. 이주민들의 삶에 이 흰살생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후 영국은 자신들의 국고를 채우기 위해 아메리카에 여러 간섭을 한다. 그런 행정정책 중에는 미국의 대구에 관여하는 것도 있었다. 당연히 미국인들은 그들이 대구산업에 손을 벋치는 것을 아주 싫어했고, 결국 독립의 계기 중 하나로써 작용한다.


  5장에서는 위의 두 생선이 유럽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소개한다. 동시에 이전에 한 이야기들을 한 차례 정리하는 역할도 겸한다. 청어와 대구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5장에서 꽤 재밌는 정보가 있어 소개하고 싶다. 영국에는 늪지대가 많아 장어가 아주 득시글했다고 한다. 이 기다란 생선을 처리하기 위해 보존식을 만들었는데, 그 방법이 바로 파이였다.


대충 이런 느낌......,


(출저)

 영국 음식에 대한 악담을 할 때 자주 등장하는 장어 파이는 이러한 이유에서 나타난 것이다. 영국인들은 자기는 이런 요리를 본 적이 없다며 항변하곤 하지만......, 심지어 이 요리를 화폐로 썼다고도 하니, 참 웃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의 지위에 올랐던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과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와 같은 시리즈의 책이기도 하다. 비록 시장에서 저 둘만큼의 호응을 받진 못한 것같지만,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역시 저 둘에 못지 않게 훌륭한 책이다. 오히려 필자의 취향에는 이 책이 더 좋았다.


 우선 내용과 구성이 훌륭하다. 내용들이 단순히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구성되어있다. 또 보통 생선과 역사를 연결하여 다루는 서적은 많지 않고, 대중적 관심도 적다. 소재의 참신함도 장점이다. 책의 저자가 본래 영문학도라 그런지, 인문학적인 부분의 오류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과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이 -아마 저자들이 과학자 출신이라 그런지- 인문학적인 오류가 좀 보였는 것과는 썩 다른 상황이다. 오히려 인문학적인 깊이를 장점으로 내세울 만한 책이다. 중간중간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문장들도 감칠맛을 내어주고. -비록 영어자료긴 하지만- 참고문헌도 적혀있다.


  다만, 같은 시리즈의 책들과 방향성이 다르다는 점은 구매 전에 염두할 필요가 있다. 근래의 대중교양서적은 중학생도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쓰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과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은 아마 딱 중학생 수준으로 보인다. 다만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는 내용이 조금 더 깊다. 즉 앞의 두 책에 비해서는 읽는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대중교양서적의 수준을 벗어나진 않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재밌게 술술 읽으면 된다. 또 앞의 두 책은 다양한 소품들을 가볍게 나열하는 식이지만,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는 청어와 대구라는 두 가지 소품을 깊고 유기적으로 다룬다. 여기서 언급한 책 모두를 추천할 만 하지만, 상기의 이유로 필자가 특히 추천하고 싶은 책은 물고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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