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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Feb 05. 2024

자살의 두 번째 이유, 격정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간계와 사랑』

 저번 글에서 필자는 자살의 두 가지 원인으로 권태와 격정을 지목하였고, 권태를 다룬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권태가 지나친 고요함이라면, 격정은 감정의 과도한 활동이다. 이에 빠진 사람은 깊은 혼란에 의해 몸과 마음을 마음대로 가눌 수 게 된다. 개중에는 비탄을 겪고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간계와 사랑』의 주인공들 역시 그런 부류에 속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의 자전적 소설로 유명한 작품. 짝사랑에 대한 그의 경험과 자살을 한 친구의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플롯의 뼈대는 단순하다. 주인공인 베르테르와 로테, 그리고 알베르트 간의 삼각관계가 핵심이다. 문제는 로테가 알베르토와 약혼을 한 사이라는 점이다.


 이 소설은 어떻게 고전이 되었을까? 베르테르라는 인물에 대한 섬세한 심리묘사,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등장인물, 감수성 넘치는 문체 때문만은 아니다. 작품의 주연들인 베르테르-로테-알베르토 간의 삼각관계는 당대의 시대적, 사회적 배경의 표상이다. 이 과정이 독자에게 설득력이 있고, 현대에도 시사점이 있기에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할 수 있는 것이다.


 베르테르는 낭만주의적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집필되었을 땐 아직 낭만주의가 발흥했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인물이다. 그는 개인의 내면, 즉 감성을 중시한다. 또 자연이란 것을 이상적으로 바라본다. 특히 사랑을 통해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인물이 허례허식과 부조리한 규율과 규범으로 가득한 공직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실제로 그는 선임의 일 처리와 성품에 답답해하기도 하고, 사교회의 참가자들에게 무시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우리의 주인공이 로테에게 빠진 계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그녀가 자신들의 동생들에게 빵을 나눠주는 자태를 보고서다. 로테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녀는 로테에게 동생들을 잘 돌봐주라는 말을 남겼다. 그에 따라 로테는 엄청나게 많은 동생을 보살피는 데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베르테르에게 그녀는 이상화된 자연의 현현으로 다가왔다. 다음은 무도회에서 생긴 일이다. 춤이란 상류층의 예법이자 허례허식이다. 그럼에도 로테는 춤을 통해 자신의 자연스러움을 마음껏 발산한다. 그러니까, 로테는 베르테르가 반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알베르트는 로테의 남편-약혼관계였다가 결혼한 것으로 보인다.-이다. 연적인 베르테르조차 그를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인물로 평가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알베르트가 상징하는 바는 기존 질서다. 즉 이성, 공동체, 사회, 예법 등을 체득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베르테르는 결코 로테와의 에로스를 성취할 수 없었다. 로테가 그에게 호감을 느끼긴 했지만 말이다. 베르테르는 선한 인물이고, 로테와 알베르트의 사이는 끈끈했다.  베르테르 역시 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이에 인해 그의 사랑은 더 뜨거워지고 격렬해진다. 나중에 가서는 베르테르는 자신의 이러한 감정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도 보인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작품의 주제에 대해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근본적으로 기존의 가치 체제와 새로운 가치체계 사이의 갈등과 그로 인해 고통받고 고뇌하는 이들의 이야기다. 베르테르 역시 로테 역시도 이러한 갈등에 껴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베르테르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지 않지만, 그의 연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을 억압하는 문명에 염증을 느끼고, 자연이라는 반대자에 이끌리는 인물. 그로 인해 격정에 빠진 인물이 바로 베르테르다.


 베르테르는 알베르트에게 빌린 총으로 자살한다. 그가 여행길에 필요하다는 변명을 한 턱에 알베르트는 자신의 권총으로 그런 사건이 촉발될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로맨스 소설과 달리 반동 인물인 알베르트 역시 무척 선한 인물이라는 사실도 유의하면 좋을 것 같다.


 괴테는 기존 질서의 순응자이자 상류층을 순박한 베르테르를 무시하고 비웃는 자들로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기존 가치의 대표자인 알베르트는 -약간 고리타분한 면은 있지만- 선하고 뛰어난 인물로 설정했다. 그런 인물이 건넨 총으로 주인공은 자살한다. 글쎄……, 괴테가 이뤄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결과적으로 보자면 젊은이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기존 질서이자, 그것에 순응하고 적응한 사람이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고, 괴테가 가졌던 -기존 질서에 대한- 염증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괴테가 ‘사람’들까지 미워하고 혐오했던 건 아니지 않았을까?


 『간계와 사랑』


 『간계와 사랑』 역시 젊은 연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당대의 시대적∙사회적 상황을 조망한다. 남자의 이름은 페르디난트, 수상의 아들이자 젊은 장교로 귀족계급에 속한다. 그는 악사의 딸-즉 평민인- 루이제를 열렬히 사랑한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작품의 갈등은 이 계급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


 수상의 입장에서 탄탄대로가 보장-작품을 읽어보면 최소한 자신이 그렇게 만들 것임이 확실하다.-된 자신의 아들이 평민의 여식과 놀아나는 것은 보기 힘들 터. 그는 페르디난트와 루이제를 떼어놓기 위해 측근인 부름과 머리를 맞댄다. 부름이 낸 계책은 이렇다. 루이제의 부모를 체포한다. 그리고 루이제를 협박하여 그녀에게 가짜 연애편지를 쓰게 하는 것이다. 대강 그녀가 바람을 피우는 듯한 내용으로 작성시킨 후, 우연히 페르디난트의 손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이 계획은 그대로 실행된다. 편지를 보게 된 페르디난트는 루이제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다. 사실 그는 이 음모를 알아낼 기회가 수 번 있었다. 하지만 감정이 너무 격렬했던 탓에 침착하게 처신하지 못한다. 수상은 페르디난트를 보기 좋게 속여넘겼다. 원하던 감정도 유발해냈다. 하지만 계획은 결과적으로 실패한다. 사랑을 잃을 바엔 죽어버리겠다는 것이 페르디난트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루이제에게 독을 먹이고 직후 자신도 그것을 삼킨다. 동반자살이다.


 이 작품 역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서로 다른 가치체계 사이에서 희생되는 젊은이들을 극화한 것이다. 다만 그 구도가 다소 차이가 있다. 『간계와 사랑』의 세계는 궁정세계와 평민세계 두 가지로 나뉜다. 궁정세계의 미덕은 간계다. 수상은 계략을 통해 전임자를 죽임으로써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다. 또 국재를 채우기 위해 젊은 시민들을 미대륙에 용병으로 팔아넘긴다. 반면, 평민세계의 미덕은 사랑이다. 이는 루이제는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억지로 거짓 편지를 쓰는 모습과 악사가 자신의 딸이 죽었음에도 페르디난트를 용서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데서 드러난다.


 또 다른 대립 구도도 있다. 루이제와 페르디난트는 신분제에 구애받지 않은 자유연애를 지향한다. 하지만 수상과 악사 등의 기성세대는 그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이러한 양상은 시대적 변동기이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비극의 근본적 원인이 되었다.
 
 

 질풍노도 문학


 독일에서 태동한 문학사조, 원어로는 Strum und Drang이다. 직역하면 폭풍과 열망쯤 된다. 본래 질풍노도라는 번역어를 많이 사용하였는데, 최근 학계에선 일본식 한자어라는 이유로 사용에 조심하는 분위기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슈투룸 운트 드랑이라고 원어로 표기하는 경우도 잦다.


 질풍노도문학이 어떤 스타일일지는 이름만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위의 작품들에서 그렇듯 이 사조는 등장인물의 격정적인 내면을 다루는데 주안점을 둔다. 하지만 이것은 핵심적이지만 표면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시대적인 배경을 보자. 질풍노도 문학은 1767년부터 1785년동안 짧게 지속되었다. 앞선 사조는 계몽주의, 뒤에는 낭만주의가 따라온다. 질풍노도문학은 계몽주의의 특징과 낭만주의의 특징 모두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과도기적인 측면이 있다. 부조리한 전통이나 기존의 가치, 질서 따위를 거부하고 비판하며,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전파한다는 점에선 계몽주의적이다. 개인의 주관과 감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낭만주의적이다. 계몽주의가 강조했던 ‘이성’의 가치는 질풍노도문학가들에겐 의심의 대상이었다.  참 재밌는 상황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간계와 사랑』은 이러한 특징 위에 있으며 구조도 유사하다. 이 구조는 계몽주의문학이자 시민비극인 『에밀리아 갈로티』에서 완성된 구조로 젊은 남녀의 사랑을 비극적으로 종말시킴으로써 기존의 가치체계와 신진 가치체계의 충돌을 보여준다. 이 충돌에서 젊은이들은 갈등과 괴리에 빠지고 결국 희생된다.


질풍노도 문학과 아노미상태


  20세기 에밀 뒤르켐이라는 사회학자는 『자살론』이란 책을 쓴다. 그가 책을 통해 말하길, 자살의 원인은 개인의 내재적인 것보다 사회적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살을 네 가지 영역으로 구분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노미적 자살이었다. 아노미는 무규범이라는 라틴어다. 뒤르켐에게 규범이란 법과 같이 개인의 행동을 강제하는 속성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사회를 유지 -어쩌면 지배한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일종의 가치체계에 더 가깝다. 사람은 가치의 진공상태에 있는 것을 견디기 버거워한다. 다만, 이 무규범은 사회적 규범이 무주공산에 빠져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아노미상태는 보통 과도기적인 시기에 나타난다. 시대가 크게 변했지만, 사회적 가치가 변하지 않았을 때, 혹은 서로 다른 가치들이 동시간∙동사회에 공존하고 있을 때 말이다. 뒤르켐의 아노미상태란 정확하게는 규범이 없는 상태보단 지배적인 규범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구성원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아노미적 자살이란,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일탈 중 하나로 이해된다.


  베르테르와 페르디난트의 자살 모두 아노미적 자살로 볼 수 있다. 둘 모두 구시대적 가치체계와 새로운 가치체계의 대립 속에서 갈등하며 죽음을 맞기 때문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경우에는 이성, 공동체, 질서 등의 가치와 개인의 내면과 자유, 자유 등을 강조하는 가치체계가 맞부딪힌다. 『간계와 사랑』은 간계로 대표되는 궁정세계와 사랑으로 대표되는 평민세계, 그리고 신분제에 집착하는 구세대와 자유연애를 지향하는 신세대가 갈등한다.


 이는 질풍노도 문학에서는 필연적인 일이다. 계몽주의문학은 실제로 계몽주의가 온 유럽으로 들불처럼 번져가던 시기에 쓰여졌다. 적어도 독일은 그 당시에 사회변혁기기도 했고. 질풍노도는 계몽주의가 기존의 사조에 반발하여 생겼듯, 계몽주의에 반발하며 발생했다. 일종의 반시대적인 사조라는 뜻이다. 질풍노도문학의 또 다른 대표작인 쉴러의 『군도』 역시도 서로 다른 가치체계 사이의 갈등, 그로 인한 젊은이들의 자살을 다룬다. 위의 작품들은 등장인물들이 서로 다른 두 가치체계 사이를 오가고, 그로 인해 내면적 폭발-혹은 과도한 운동-을 겪는다는 점에서 격정이란 감정을 주요 테마로 삼은 작품이다. 또한 주인공들은 모두 격정이란 감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권태가 감정의 고요라면, 격정이란 감정의 지나친 활동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 튀어야 할지, 어떻게 자신들을 통제하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자기파괴 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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