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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Jun 24. 2024

아메리칸드림의 죽음

『세일즈맨의 죽음』, 『공정하다는 착각』

 『세일즈맨의 죽음』

 

 주인공 윌리 로먼의 죽음은 그저 한 남자의 죽음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곧 한 가정의 붕괴고 한 세대의 종말이며, 한 시대의 처절한 실패다. 미국은 꿈을 꾼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탄생하기 전부터 꿈을 꿨다. 그들은 아직도 똑같은 단잠에 빠져있다. 그 꿈의 이름은 아메리칸드림이다. 신대륙에서는 누구나 노력만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 윌리 로먼은 실제로 세일즈맨으로서 성공한다. 커미션으로만 주에 170달러를 벌었으며 수많은 사업체의 사장들과의 인맥도 두터웠다. 그는 마당이 있는 2층짜리 주택을 가졌고 아내와 함께 슬하에 아들 둘이 있다. 우리의 흔히 떠오르는 미국 중산층 가정 말이다.


 그는 아메리칸드림의 산증인이다. 그는 분명 최선을 다해 가정에 헌신하며 돈을 벌었고 자수성가도 이뤄냈다. 아무리 땅이 넘치는 미국이라지만 -할부금도 남아있었지만- 마당 있는 집을 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한 윌리 로먼의 노년은 어떤가? 그는 예순이 되어서도 운전을 하며 영업에 나선다. 남들은 다 은퇴할 나인데도 말이다. 집의 기재들도 점점 망가져 돈을 쓸 곳이 늘어나고 있다. 상황은 그의 몸도 별 다를 바 없다. 그의 사장은 월급을 주지 않고 오로지 커미션값만을 지불한다. 그가 친했던 사장들도 이제 모두 죽었거나 은퇴했다. 그가 계속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두 아들인 비프와 해피 모두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프는 출가 후 미국 전역을 전전하며 시급 1달러짜리 일을 할 뿐이다. 비프는 자신을 한 시간에 1달러짜리 인물이라고 자학한다. 해피는 나름 직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부모에게는 자신이 부주임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부주임의 조수일 뿐이다.


 윌리 로먼은 미국에서 성공하는 방법을 인간적인 매력을 함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그가 세일즈맨이었으니 당연한 믿음일지도 모른다. 그는 학교에서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었고 훤칠한 비프에게 공부 따위 하지 말라고 말한다. 윌리는 그의 매력과 노력만으로도 크게 성공할 거라 굳게 믿었다. 그래서 비프는 수학 시험에서 F를 맞아 대학에 가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미식축구 프로도 되지 못했고. 후에 비프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소리친다. 자신이 이렇게 된 건 당신 때문이라고. 그의 말이 변명이든 진실이든, 윌리 로먼의 시대와 제 아들 모두 제대로 진단하지 못한 건 확실하다.


 윌리의 시대와 비프의 시대는 달랐다. 비프의 세대는 노력만으로는 할부를 받더라도 마당 있는 집을 구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이 무시하던 비프의 친구, 버나드는 열심히 공부하여 법관이 되었다. 윌리 로먼은 버나드에게 어떻게 성공했냐고 부러움을 담아 묻는다. 또 비프가 왜 실패한 것이냐고 묻는다. 공부를 내팽개쳐서 그렇다고, 버나드는 말했다.


 비프가 본가로 돌아온 후 로먼 가족은 재결합하고자 한다. 그리고 의기투합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로 한다. 체크리스트의 맨 위에 있던 항목은 윌리가 자신의 사장에게 가서 자신을 내근직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장의 대답은 싸늘하다. 그는 윌리에게 이젠 쉴 나이가 되었다며 따뜻하게 말했다. 이제 그가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보험금을 받아 가족들에게 목돈을 마련해주는 것 뿐. 그는 운전대에 오른다. 그리고 사고사한다. 덕분에 주택할부금을 모두 갚을 수 있었고 비프의 사업밑천도 얻었다.


 한 세대가 그렇게 죽었다.


 『공정하다는 착각』

 

 한 세대의 비극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칸드림은 여전히 미국의 신앙이다. 이에 대한 미국의 믿음은 유럽의 암흑기를 연상케 한다. 그들은 여전히 아메리카에서는 노력하면 성공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는 대학교 기부입학제도가 있다. 아이비리그라고 불리는 명문대들도 마찬가지다. 그 명문대들이 높은 교육 품질과 시설, 가난한 학생들에게 기숙사비까지 포함한 전액 장학금제도를 구비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기부입학제도 덕분이다. 물론 이 제도에는 많은 비판이 따른다. 그래도 합법적이고 공리적으로 많은 이점이 있음은 확실하다. 2019년 3월 샌델은 충격적인 뉴스를 보게 된다. 윌리엄 싱어라는 입시상담사는 일종의 중개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고객은 부유한 부모들이다. 싱어는 고객들에게 받은 돈의 일부를 시험감독관에게 분배하면 그들은 몇몇 학생들의 시험성적을 수정해 주었다.


 이 방법은 합법적인 기부입학보다 금전적으로 싸게 먹힐뿐더러 거의 확실히 성공할 수 있다. 기부입학제도는 운도 따르기 때문이다. 즉 싱어의 방식은 효율적이고 확실하다. 불법행위가 당국에 적발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마이클 샌델은 왜 사람들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아들딸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키고자 하는지 연구에 착수한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오늘날 아메리칸 드림은 학력주의로 변질되었다. 명문대에 들어갔다는 것부터 그의 능력은 인정받은 셈이니까. 과거의 아메리칸드림이란 미개척지에 농장을 짓거나, 금주법을 피해 술을 팔거나, 서부로 가 금광을 찾는 것이었다.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버나드가 법관이라는 인텔리로 사회적 성공을 거머쥐었다고 묘사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이런 묘사는 세일즈맨의 시대에서 고학력자의 시대로 미국이 변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능력주의란 사람의 신분이나 인종, 성별 따위를 떠나서 사회적 성취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다. 사회적 성취는 능력이나 노력 정도로 치환되고, 그에 따라 보상의 차원으로 사회의 자원을 받는다. 능력주의의 기반에는 기회의 평등에 대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야만 개개인의 능력이 본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동시에 사회적 성취란 공공선이며, 얼마나 많은 부를 창출했냐로 입증될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능력주의를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한다. 우선 능력주의의 현태를 조망하고, 그다음은 능력주의가 정녕 도덕적이냐고 묻는다. 이 장에서 중히 다룰 것은 전자다.


 다수의 미국인은 자신의 나라가 공정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상황이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는 유럽의 그것들보다 훨씬 더 낫다고 믿는다. 능력주의자들은 사람은 누구나 노력하고 민첩하게 움직인다면 충분한 사회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땍땍거린다. 사람들은 제각각의 선천적인 재능이란 걸 가지고 태어난다는 자명한 사실은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그들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가난이 지능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지는 이미 증명되었다. 살면서 우리는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수 없이 많다. 성공을 위해서는 운도 따라야만 한다. 또 누군가의 성공은 온전히 그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공동체내에서 타인에게 의지하고 있다. 운수업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도로와 같은 인프라가 구비되어 있어야 한다. 또 충분한 수요와 구매력을 가진 소비자들과 충분한 물품들을 찍어낼 수 있는 공장에게 의존해야한다. 어떤 스포츠에 일류의 재능을 가지고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손흥민이 16세기 조선에서 태어났다면 축구선수로는 성공할 수 없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법은 성공한 사람들이 노력없이 성공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사회적인 성공이 오로지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성취될 수 없음을 말할 뿐이다.


 아메리칸드림으로 명명되는 미국식 능력주의의 현태를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능력주의의 숭배자들은 사회 내에서 계층이동이 활발히 이뤄지는 사회를 지향한다. 이들의 이상은 실현되었을까? 그들은 유럽이 결과의 평등을 지지하기 때문에 정말로 능력 있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보상받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사회의 계층 이동성은 미국보다 유럽이 훨씬 높다. 사회체계가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오른 국가에서 '노력하면 성공한다.'라는 명제를 믿는 건 비합리적이고 비실재적이기까지 하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다.


 통계를 살펴보면, 미국 명문대생의 과반이 소득분위가 높은 가정에서 나온다. 미국 명문대 재학생 70퍼센트는 소득 상위 20퍼센트에 드는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한국도 미국의 양상을 따라가는 듯하다. 연세대와 고대의 과반수는 소득분위 8 이상의 가정이며, 서울대는 더 불균형하다.


 부모의 재력이 자식의 대학진학에 영향을 주는 보다 실제적인 예도 있다. 서울의 어떤 학군은 전교 1등을 해도 내신으로 sky에 들어갈 수 없다. 학생이 평생에 걸쳐 한 노력은 학생부로 전환되고 그 종이뭉치는 고등학교 간판만으로 서류심사에서 걸러진다. 지금은 입시컨설팅이 많이 활성화되었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아니었다. 입시컨설턴트는 강남이나 대치동 등에 포진하였다. 이들은 서울에 사는 입시생들의 학생부를 채워주기 위해 지방 곳곳의 행사까지 꿰고 있으며 고객들에게 참여하라고 종용한다. 그들은 학교마다의 입학제도에도 능통하다. 입시 컨설턴트들은 짭짤하게 보수를 챙기는 대신 성적이 애매한 학생들을 명문대에 입학시켜주었다. 그 학생들 중에선 태어나서 운동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이 체육학과에 입학한 경우도 있으리라. 물론 이들의 행동은 편법에 가깝지만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이가 정녕 공정하고 스스로에게 당당한 일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도 “개천에서도 용 난다.”라는 말이 있다. 한때 ‘아메리칸드림’이 진실이었듯이 ‘코리아 드림’도 진실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아메리카 대부분은 자연을 벗 삼는 원주민들의 것이었고, 우리나라는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더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두 곳 모두 앞으로 쌓아 올릴 일만 남아있었다.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사회적 성취란 이제 노력의 영역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능력주의에 열광하며 기회가 공정하다고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믿음이 수년 전보다 더 팽배해진 것도 같다. 하지만 21세기의 한국의 젊은 세대는 어떤가? 그들은 한국 역사상 최초로 부모보다 못사는 세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능력주의를 믿는 젊은이들은 능력이 없던 것일까? 노력을 안 한 것일까? 이러한 모순은 이미 실증되었다. 종교가 과학에게 미신이라는 이유로 퇴치되었듯, 능력주의도 이제는 사회학에 의한 퇴치 대상일 뿐이다. 아서 밀러등의 지성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통렬한 경고를 날렸다. 윌리 로먼의 죽음은 한 가장의 죽음으로는 허망했다. 하지만 미신을 물려준 인물로서는 합당했다. 우리는 그의 죽음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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