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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새인 Sep 22. 2021

우울증이라고 말하기 전에

우울하면 우울증일까?

어느 때부터인가 '우울증'에 대해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쉽게 이야기하게 된 것 같다. 다양한 상황에서 'OO 우울증'이라고 하여 우울증의 원인이 되는 상황을 앞에 붙여 우울증의 이름들이 생겨난다. 의학에서 어떠한 증상을 가진 질환을 'OO증' 이라고 부르는데 심리적 증상들에 있어서 유독 우울증은 다른 질환들보다 흔하게 접하게 된다.  




정신의학에서 우울증은 생각의 내용, 사고 과정, 동기, 의욕, 관심, 행동, 수면, 신체활동 등 전반적인 정신기능이 저하된 상태가 거의 매일, 하루종일 일어나는 상태를 말한다(국가건강정보포털 의학정보). 



우울증이 생기게 되면 삶이 전반적으로 무기력해지고 행복하지 않은 상태가 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걸 그대로 방치하면 극단적으로는 자살에 이를 수도 있는 치명적인 상태로 악화될 수도 있기에 전문가들은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하여 적극적으로 전문가의 진단 및 치료를 받는 것을 권장한다.




우울증이 극단적 선택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조기 진단과 치료가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렇게 우울증의 위험성과 조기진단의 중요성이 알려짐에 따라 우울증이 아닌 이들까지도 우울증으로 진단되어 '우울증 환자'가 양성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기쁨, 행복, 환희를 느끼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슬픔, 절망, 우울을 느낀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상황에 따라 특정 감정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감정에 대해서는 크게 질병으로 연관 짓지 않지만 우울한 감정에 대해서는 쉽게 질병으로까지 연관 짓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너무 기쁜 일이 있어 가만히 있어도 싱글벙글 웃음이 나고 누가 잔소리를 해도 콧노래를 부르고 안 하던 일까지 의욕적으로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럴 때 '어머 내가 왜 이러지. 조증이 있나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좋은 일이 있으니 당연히 이러한 기쁨과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그에 따라 행동이 활기차게 변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로 슬프거나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무기력감과 우울감이 든다면 조금만 길어져도 '나 우울증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혹은 내가 느끼지 않아도 내 주변의 누군가가 '너 우울증인거 아니야? 상담 한번 받아봐.'와 같은 조언을 듣기도 한다. 




분명 행복감과 우울감은 둘 다 '감정'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우울감은 금세 우울증이라는 병명이 씌워진다. 아마도 긍정적인 감정보다 우울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견뎌내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한 연구에서는 정상인 7명이 정신과 병원을 찾아가 환청이 들리는 증상을 호소하도록 하고 의사의 진단에 따라 입원을 하고 나면 그 직후부터 정상인으로서의 생활 모습을 보이도록 했다. 



입원과 동시에 이전의 증상들도 해소가 되었고(실제로는 원래 없던 증상) 모든 행동도 정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퇴원하기까지는 무려 평균 19일이 걸렸다. 불편한 증상을 호소했기 때문에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니 환자들과의 면담내용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 맞게 재해석 되는 일들이 생겼던 것이다. 



이 때문에 매우 정상적인 행동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19일의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이 연구는 윤리적으로 논란이 되긴 했으나 우리가 어떠한 판단을 내릴 때 발생할 수 있는 정보수집의 오류와 편향에 대한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연구였다(Rosehan, 1973).









우리가 '우울증 아닐까?' 하고 자신을 의심할 때 이미 우울증이라는 안경을 착용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건 아닐까? 







안 좋은 일이 있어 우울한 것은 당연한 건데 이미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생활에 많은 부분이 '다 우울증이라서 그런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 일찍 눈을 뜨는 것보다는 침대에서 좀 더 나른한 아침을 즐기고 싶은건 나 뿐만이 아닐텐데 '우울증으로 인한 무기력감'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스트레스받았던 일이 자꾸 생각나서 며칠 동안 잠을 푹 자지 못했던 걸 '우울증으로 인한 수면장애'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러한 편향적 사고는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음에도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를 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기분이 좋지 않으니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면 의식적으로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방도를 모색할 수도 있는데, '우울증'이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리면 '우울증이니 이런 거야. 어쩌겠어.'라며 점점 더 자신이 만든 늪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생각이 자성예언 효과(Self-fulfilling prophecy)에 따라 스스로를 더 망가뜨리는 방향으로 부정적 행동이나 생각을 강화시키게 될 수도 있다.







우울증은 결코 가벼운 질환이 아니다. 

마음의 병은 신체의 병까지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치료가 필요하다면 전문가와의 상담이나 약물적 치료를 통해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우울하다는 감정을 우울증이라는 병명으로 부르는 것에 조금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신과 의사인 정혜신 작가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우울증에 대한 한 사례를 읽은 적이 있다. 사례 속 주인공의 우울은 병이 아니라 그냥 우리 삶의 한 조각이라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참 와닿았다. 




슬프고 힘든 일에 우울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울감이 내 삶을 뒤덮고 있는 느낌이 든다면 우울증으로 이름 붙이기 전에 무엇 때문에 우울한가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우울할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겁내지 말자. 

지금 겪는 우울감은 정말 삶의 한 조각일 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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