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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새인 Dec 22. 2021

술이 이불킥을 하게 만드는 원리





술은 인류와 오랜 역사를 함께 해왔다. 

기원전 5,000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에서 포도주를 빚었다고 하며, 

한국인에게 익숙한 술인 소주는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조선 중기에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랜 세월 술은 우리 삶에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해왔다. 

즐거운 파티 자리에서든 슬픔을 위로해야 하는 자리에서든 술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특별한 행사가 아니더라도 지인들과 "언제 술 한잔 하자."는 인사도 "언제 밥 한번 먹자."와 맞먹게 많이 쓰인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술은 때에 따라서는 긴장을 이완시켜주기도 하고 좋은 기분을 느끼게도 하지만  수많은 사건 사고에 원인이 되기도 하는 무서운 존재이기도 하다.


맨 정신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는 범죄의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사소하게는(?) 다음날 이불킥할만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술에 취하면 이렇게 평소와는 다른 사람이 되는 이유는 뭘까?

술에 취했을 때의 모습이 진짜일까 술 마시기 전의 모습이 진짜일까?











술은 무엇을 보게 하는가?




인물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심도를 낮게 설정하여 인물 외의 부분은 흐리게 찍는다. 최근에는 휴대폰 카메라에도 심도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 사진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이 기능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술을 마시면 마치 배경을 흐릿하게 만드는 기능을 사용한 것과 같은 효과가 일어난다. 

즉, 지금 내 앞에 벌어지는 상황에만 집중하게 된다. 심리학자인 클로드 스틸과 로버트 조지프스는 술이 정서적·정신적 시야를 좁힌다는 의미로 이를 근시 이론이라고 이름 붙였다. 




술은 사람을 근시 상태에 놓이게 한다. 

가까이 있는 사물은 더욱 부각되고 뒤에 있는 것들은 모두 흐리게 만든다. 단기적인 고려사항은 중요하게 인식하게 만들며 반대로 장기적인 고려사항은 멀어지게 만든다. 



술에 취한 사람이 현재 클럽에 있다면 내일은 없는 것처럼 신나고 즐거울 것이다. 하지만 동일 인물이 술에 취한 현시점에서 혼자서 창밖을 보고 있다면? 우울감의 끝에 허우적 댈 수 있다. 분명 동일 인물이지만 술에 취한 지금 현재, 눈앞에 보이는 감정과 정서에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대범해질 수 있다.

 



멀쩡한 상태에서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여러가지를 고려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행동을 하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이고, 그에 따라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 그 상대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머릿속으로 계산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거나 혹은 바람직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술이 근시 상태를 만들게 되면 지금 현재만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현재 나는 이것을 하고 싶다."라는 욕구가 더 또렷이 보이게 된다. 다음날 피곤할 줄 알면서도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게 되는 것도 술을 마시는 현재에는 피곤할 내일의 모습이 뿌옇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면 대범 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술을 마시면 '남이 생각하는 객관적인 나'와 '내가 기대하는 나'와의 사이에서 후자의 내가 승리한다.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더 또렷하기에 그게 진짜라고 믿어버린다. 


실제의 나 따위는 이미 흐릿한 배경이다. 

이렇게 술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조차도 바꿀 수 있다. 



취한상태에서는 대범하게 "팀장 지가 뭔데!! 한번 들이받고 말지 뭐. 내가 누군데!! 나 홍길동이야!!!"라고 큰소리치고는 다음날 팀장 앞에서 고개도 못 드는 사태가 발생한다.  

어제는 분명 누가 뭐래도 당당한 홍길동이었는데 말이다.







취중진담?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다. 취해서 하는 말은 진심이라는 건데 이 또한 정설로 믿으면 안 될 일이다. 


긴장을 이완시켜주는 술의 특성을 빌어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을 용기 내서 꺼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취중진담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 나 불안해할지도 모를' 정도로 만취한 상태라면 순도 100의 진심으로 보기보단 의심도 해보는 게 좋다. 


예를 들어 술에 만취해 '사랑한다'고 고백했다고 치자.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근시 상태가 되어 현 상황인 '상대방을 향한 감정'에만 몰입되어 있다. 그래서 그냥 호감이 있는 상태인데 '너어어무 사랑한다'고 할 수도 있고, 맨 정신이었다면 그냥 '사랑해'인데 만취상태에서는 '너 없으면 안 돼. 죽을 만큼 사랑해. 제발 나를 받아줘'가 될 수도 있다. 





술은 친구일까 적일까?





술은 때로는 약간의 흥분과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하지만 조금만 과해지면 수많은 이불킥과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한다. 

술 한잔에 용기를 내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술 한잔에 용기를 낸다는 게 자칫 경계를 넘게 된다면 손해가 막심하다. 


우리는 술이 흡수되는 속도와 뇌에 전달되어 영향을 미치는 단계를 눈으로 낱낱이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술이 과해지는 수준'의 경계를 명확하게 알 수 없고 '주량'을 통해 추측해볼 따름이다. 








술을 친구로 둘지 적으로 둘지는 결국 자신의 선택이다. 

경계선을 지킬 자신이 있다면 술은 기쁨과 슬픔에 함께할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결국은 '순간'을 사는 사람으로 만드는 무섭고 달콤한 적이 될 것이다.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술을 마시면 그동안 못했던 말을 하고, 못했던 행동을 할 수 있기에 '나에게 술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위험한 착각이다.

술을 마시면 대범 해지는 그 사람은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든 알코올이 주는 마법에서 깨어나면 연기처럼 사라질 존재다.
















참고 자료

Claude steele and Robert A.Josephs, "Alcohol Myopia: Its Prized and Dangerous Effects," American Psychologist 45, no.8(1990):921-33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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