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생각 좀 해봐라.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상대방이 너무 답답한 소리를 하면 우리는 흔히 '상식적'으로 좀 생각해보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본 후 생각을 고쳐먹고 '네 말이 옳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상식이란 사람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을 말하는데
말 그대로 보통, 그러니까 보편적으로 다들 알아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면 왜 내 앞의 이 사람에게는 상식이 먹히지 않는 걸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라는 나의 간곡한 부탁에도 상대와 내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아서가 아니다. 상대방도 분명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려는 노력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상식은 상식인데 그 상식이 바로 (자신만의) 상식이라는 데에 있다.
삶에 모든 문제에 상식이라는 것이 마치 어떠한 사회적 규범처럼 정해져 있다면 참 쉬울 텐데 세상엔 답이 없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가 가진 상식사전을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명절에는 당연히 부모님 댁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라. 누가 아침에 일어나서 연락도 안 하냐?
- 상식적으로 지금 하나 내일 하나 어차피 할 건데 왜 내일로 미뤄?
과연 이런 문제에 상식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걸까?
즉, 나의 생각은 보편적으로 다들 동의할만한 아주 상식적인 선이라고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정말로 내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까? 이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사람들의 이러한 착각을 심리학 용어로는 허위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라고 한다.
허위 합의 효과를 설명해 줄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심리학자 리 로스는 1977년 학생들에게 “샌드위치는 조스에서!”라고 쓰인 큼직한 간판을 샌드위치맨처럼 앞뒤에 걸치고 30분간 교정을 돌아다닐 수 있는지 묻는 ‘샌드위치 광고판 실험’을 했다. 조스 식당에서 파는 음식의 품질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었으니, 그것을 메고 다니는 학생들이 우습게 비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수락 여부에 관계없이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이 수락할 것인지 예측하도록 요청한 결과,
- 광고판을 걸고 돌아다닐 수 있다고 답한 학생들: 다른 사람들도 약 60퍼센트가 수락할 것이라고 예측
- 광고판을 걸고 돌아다니지 않겠다고 답한 학생들: 평균 27퍼센트만 수락할 것이라고 예측
어떤 이유로 실험을 수락하고 거부했든,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출처: 감정독재, 2014, 강준만)
우리가 이렇게 허위 합의를 일으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며 수많은 경험을 하고 살아왔을 것이며 이 중 많은 부분은 가족이나 가까운 주변 지인들과 함께 했을 것이다. 가까운 사람들끼리는 서로 생각하는 방식이나 생활양식들이 닮은 경우가 많다. 특히 가족의 경우 더 그렇다. 그들과 지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모두가 인정할만한 상식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상대방도 그 나름의 상식이 존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저 정답이 없는 문제인데 우리는 허위 합의 효과에 따라 내 말이 더 보편타당하다고 착각하고 있을 가능성도 많다.
내 생각엔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라면 이렇게 마음먹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이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전적으로 동의할리가 없다. 그것은 당신이 만들어낸 허위 합의일 가능성이 꽤 높다. 그렇다면 너무 답답해 속이 터질지라도 한 템포 쉬고 '상식적인 선'이라는 것은 내가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한번 떠올려보자.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상대방에겐 그동안 살아온 방식, 함께한 사람들에 따라서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의 변화는 타인을 이해하고 관계를 개선하는데 튼튼한 기초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