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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새인 Oct 23. 2021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린다.

정보 수집의 오류에 대하여

똑같은 상황을 보거나 들어도 같은 자리에 있었던 다른 사람의 기억과 나의 기억이 다를 때가 있다. 누가 본 게 맞고 누가 들은 게 맞을까? 운동 경기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을 때 느린 속도로 비디오 판독을 하듯 함께 겪었던 상황을 리플레이해볼 게 아니라면 누가 맞는지 끝까지 알 수 없이 넘어가게 된다. 물론 각자는 끝까지 '내가 맞다.' 고 생각하겠지만. 


분명히 같은 상황이라도 왜 내가 본 것과 남이 본 것에 차이가 발생하게 될까? 




어머, 우리 애 영재 아니야?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이 '영재가 아닐까?'라는 기분 좋은 기대를 한 번쯤은 한다. 똑같이 아이를 보더라도 다른 아이의 탁월한 면은 집중되지 않지만 내 아이는 나 자신보다 더 아끼는 존재이기에 좋은 면을 찾으려고 늘 애쓴다. 그러다 보니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을 찾으면 그다음부터는 정말 그런지를 검증하기 위해 더 집중하게 된다. 집중하면 할수록 더 많이 찾을 수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똑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내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결국 내가 집중하고 있는 것이 더 잘 보인다. 이러한 선택적 정보 수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수 능력이다.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황에 똑같은 비중으로 집중하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나에게 중요한 정보에 더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은 당연하다. 




못한다 못한다 하면 더 못한다.


하지만 이런 효율적 정보 수집은 선택적이기에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 내 아이를 영재로 보는 것처럼 좋은 면에 집중하는 건 객관적이지 않더라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는 것처럼 기대가 현실이 되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선입견을 갖게 된 정보가 부정적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어떤 기대를 하느냐가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에 따라 부정적이라고 믿으면 믿을수록 상대방은 점점 부정적 측면을 강화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부정적 상황에서의 자기충족적 예언은 낙인효과(스티그마 효과)라고도 한다. 한번 찍으면 지울 수 없는 낙인처럼 나의 기대가 상대방에게는 낙인 역할을 함으로써 그 기대에 부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반 학교에 적응이 어려운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입학시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좋은 선택이다. 단지 '다를 뿐'인데 일반 학교에서 '문제아'라고 낙인을 찍게 되면 진짜 문제아로 성장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



첫인상이 중요하듯 사람은 초기의 정보를 더 신뢰도 있는 정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초기의 정보에 일치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면 결국 '진짜' 정보를 받아들일 기회가 차단된다. 


한 실험에서는 대학생들에게 상대방이 내향적(또는 외향적) 성격의 사람인지 알아보게 했다. 

면접 전에 모든 대학생들에게 26개의 질문을 보여주면서 그중에서 면담 시 활용할 질문 12개를 선택하도록 했다. 흥미롭게도 내향적 성격인지를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은 대학생들은 내향적임을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주로 선택하고 외향적 성격인지를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은 대학생들은 반대의 질문을 주로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ex)
· 내향적 성격 확인 : 당신은 파티를 좋아하지 않죠?
· 외향적 성격 확인 : 당신은 파티를 좋아하죠?



재미있는 건 둘 중 어떤 질문을 받느냐에 따라 답변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의 답을 주려고 한다. 그래서 파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좋아하지 않죠?'라고 물으면 당연히 그렇다고 하지만 '좋아하죠?'라는 질문을 받으면 '뭐 가끔은 즐긴다.'는 답이 나올 수 있다. 그럼 질문을 던진 사람은  '이거 봐.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이라며 자신의 가설을 확인했다고 믿을 것이다. (Sydner&Swann, 1978/ 한규석 저 사회심리학 참조)







안경을 벗어야 진짜가 보인다.



내가 믿는 게 확실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그 사람을 인식하고 있을까? 동일 인물일지라도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각 사람들 마다 다 다를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진짜 별로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누군가는 칭송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럼 누가 맞을까? 

글쎄. 객관적 평가표도 없는데 누가 맞고 틀리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아마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일거야'라고 세운 최초의 가설이 서로 다를 것이라고 유추해볼 수 있다. 최초의 가설의 차이로 인해 서로가 각자 다른 정보를 꾸준히 선택적으로 수집해온 결과 이처럼 서로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그려놓게 되었을 것이다. 



내가 어떠한 선입견으로 미리 설정해놓은 가설을 두고 이를 확인하려는 정보 탐색은 가설을 확증하는 쪽으로 편향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안경을 벗어야 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투명한 하늘을 눈에 담아내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세운 가설이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을 바탕으로 세워진 건 아닌지, 그리고 그렇게 세운 가설을 확인하기에 최적화된 렌즈를 장착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생각해보자. 나도 모르는 사이 선택적으로 수집하고 있는 어떠한 정보로 누군가를 낙인찍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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